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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가 해준 갈비찜,이제는 내가 아들에게【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달,교환 학생을 갔던 아들이 귀국했다.아들의 귀국 전날 나는 갈비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기 핏물을 빼고 삶고,기름기를 정리하고,또 한편으론 갈비 양념을 만드느라 오랜만에 바빴다.평소 조용하고 한적하던 주방은 이것저것 늘어놓은 식재료로 꽉 찼고,냄비가 부딪히고 블렌더 돌아가는 소리에 늦게까지 소란스러웠다.남편이 어쩐지 흐뭇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아들이 오긴 오나 보네.당신이 갈비찜을 준비하는 걸 보니."
누구나 마음속에 특별 요리 하나쯤은 있다.나에게는 갈비찜이 그렇다.갈비찜은 대표적인 명절 요리이자 잔칫상의 단골 메뉴이다.하지만 내가 갈비찜을 사랑하는 이유는 명절과 상관없이 내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기념하고 싶을 때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이다.이번처럼 멀리 갔던 아들이 돌아올 때 나는 갈비찜을 한다.
작년에 부산에서 친정 부모님이 올라오셨을 때도 갈비찜을 했다.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종합게임 뜻가족 행사 때에도 갈비찜을 가끔 해서 가져가곤 했다.모두 나의 갈비찜을 칭찬했다.어깨가 으쓱했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좋았다.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갈비찜을 좋아한다.어린 시절 나에게 갈비찜은 요리의 왕이었다.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갈비찜만은 예외였다.푹 삶은 갈비찜 고기는 뼈에서 미끄러질 정도로 부드럽고 젓가락이 푹 들어갈 정도로 연해서 전혀 질기지 않았다.달콤 짭조름한 양념을 듬뿍 머금은 감자와 당근은 고기보다 더 별미였다.갈비찜 고명으로 나온 밤만큼 맛있는 밤은 없었다.고기와 야채를 다 건져먹은 양념 국물 또한 밥도둑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갈비찜의 유일한 단점은 원한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다는 거였다.갈비찜을 만드는 데는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하지만 어릴 때는 그런 걸 몰랐다.그저 자주 먹을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그래서 명절이 오면 좋았다.갈비찜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 한 번 나만을 위한 갈비찜을 먹은 일이 있었다.20살,타이 칸 카지노대학 진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서울 생활 초반에는 집이 그리워 자주 집에 내려갔다.그때마다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것 없냐고 물었다.그러면 나는 먹고 싶은 것 이것저것 말하곤 했다.그날도 같은 질문이었다.그런데 왜인지 이번에는 "갈비찜이 먹고 싶은데"라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는 "갈비찜,그거 시간 많이 걸리는데…." 라고만 할 뿐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집에 내려온 다음날,부산 서면 카지노식탁에 앉았는데 엄마가 갈비찜을 내왔다.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식탁에는 나 혼자였다.그날은 명절도,특별한 날도 아니었다.그 갈비찜은 오로지 나를 위한 갈비찜이었다.
나는 항상 엄마를 좀 무서워했다.엄마는 자식 사랑은 끔찍했지만 표현에는 서투른 분이었다.엄마의 사랑은 다정한 말보다는 야단과 잔소리로 종종 나타나곤 했다.철없던 시절에는 무서운 우리집 엄마보다 상냥한 다른 집 엄마를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갈비찜에서 엄마의 마음을 보았다.남들처럼 부드럽고 상냥한 말씨는 없지만 자식이 원하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워도 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갈비찜 위에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있었다.
나는 고기를 하나 집어 입에 물었다.푹 삶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그날 엄마의 갈비찜은 명절에 먹던 것만큼 부드럽지는 않았다.조금 질겨서 오래 씹어야 했다.하지만 상관없었다.나는 꼭꼭 씹어 고기를 삼켰다.
이제 나는 아들을 위해 갈비찜을 하고 있었다.아들이 이 갈비찜을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내가 엄마의 갈비찜을 기억하듯 아들도 내가 해 준 갈비찜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나는 갈비찜을 아주 푹 삶았다.그러면 아들은 젓가락으로도 고기를 부드럽게 찢을 수 있을 거였다.하지만 나는 조금 질긴 갈비찜 고기도 좋았다.그때의 식감은 여전히 내 입속과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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