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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폭력적이다.트럼프는 “무역적자는 악이다.관세는 무역적자를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다른 나라는 무역적자를 내고도 패권을 휘두르는 미국의 힘을 부러워한다.미국 무역적자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세계경제 질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문제는 트럼프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심지어 깨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나 어느 정도 자립할 필요는 있다.공급망 대부분을 외부에 의존하는 것은 경제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하지만 완전 자립만이 해답은 아니다.아니,이 세상 어느 국가도 그것은 불가능하다‘자립’의 정도를 정하는 것 역시 어렵다.
정치인들은‘완전 자립’이란 불가능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형용모순이다.트럼프는 세계 질서를 일시에 바꿀 수 있다는 듯 행동하지만,그 어떤 질서도 하나를 얻으면 그만큼을 내줘야 한다는 당위에 기초함을 망각하고 있다.미국은 관세를 통해 얻는 게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보다 소중한 뭔가를 잃을 수 있다.미국의 패권이 상대를 압도적으로 억누르는 힘으로만 가능했다고 믿는 순간 미국의 시대는 저물 것이다.
미국 적자의 본질
데이터에 집중해보자.상품 부문을 보면,미국은 다른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산다.이 차이가 바로 무역적자다.1970년대부터 거의 매년 적자를 보고 있다.그 특징을 보면,의외로 침체기에 감소한다.미국의 적자는 소비자지출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해준다.미국민 소비의 결과가 무역적자로 나타난다는 것이다.(무역적자가 계속되는데도 소비가 가능하다.이게 바로 미국 힘의 원천이다.이 부분은 나중에 설명하겠다.)
무역적자가 수출 감소로 인한 것이라면 문제다.공급망 자립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어서다.하지만 미국의 수출은 외려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물론 수출보다 수입 증가 폭이 더 커 추세적으로 무역적자가 늘고는 있다.미국은 많은 상품을 수출한다.2024년에는 2조달러(약 2850조원) 이상을 수출했다.이 금액은 거의 매년 증가하고 있다.어떤 정의에 따르든 미국은 수출 강국이다.
서비스 부문은 어떤가?흑자다.미국은 금융 서비스,관광,교육,기술 서비스 등 분야에서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한다.2023년 기준 1조2500억달러 이상의 서비스를 수출해 약 278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2024년에는 흑자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처지에서 보면,상품과 서비스를 합치더라도 여전히 무역적자란 사실을 강조할 수 있다.그래도 미국이 주요 수출국이란 점은 바뀌지 않는다.상품보다 서비스 부문에서 우월한 수출국이다.이것이 바로 고전적 용어인‘비교우위’다.미국의 강점은 상품이 아닌 서비스 부문에 있다는 것이다.미국 기업과 노동자는 소프트웨어,슬롯 랜드영화,음악,티브이(TV)쇼 등을 만드는 데 능숙하며 세계는 이를 필요로 한다.기꺼이 구매한다.
동전의 양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미국의 구매력은 달러의 힘에 기초한다.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면 미국의 소비는 지속될 수 없다.무역적자는 재앙이 됐을 것이다.사실 많은 나라가 미국처럼 되기를 원한다.무역적자가 누적돼도 달러가 곳간에 쌓여 있다면 걱정할 게 없다.미국처럼 찍어낼 수 있다면 이들도 얼마든지 풍족한 부를 누릴 수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간과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미국의 힘이 강해서든 아니면 세계가 그것을 용인했든 미국은 세계의 돈인 달러 발권국이다.미국만이 생산할 수 있다.달러로 미국은 원하는 것 대부분을 얻을 수 있다.다른 나라는 피땀 흘려 달러를 모아야 살 수 있는 것들을 미국은 거의 공짜로 인쇄해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주권국가는 자체 통화를 발행한다.하지만 모든 통화가 동등한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이 또한 자연법칙이다.같은 사과라 해도 원산지에 따라 생산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듯 모든 통화의 가격은 서로 다르다.그중 가장 우월한 통화가 있다.이것을 우리는‘글로벌 준비 통화‘기축통화’라 부른다.1944년 이후 달러는 이 같은 위상을 갖게 됐다.각국 중앙은행은 달러를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대부분의 국제 거래는 달러로 결제된다.세계는 많은 달러가 필요하고 미국은 이를 공급해야 한다.이는 기축통화국의 운명이자 의무다.그래야만 세계경제는 돌아간다.미국이 만든 질서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의도한 대로 미국이 공급망 자립을 통해 흑자를 내기 시작한다면,나머지 세계는 달러에 굶주릴 것이다.달러 수요는 갈증으로 번져 달러 가치가 급상승할 것이다.달러가 급등하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은 훼손될 것이다.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나머지 세계는 새로운 준비 통화를 찾게 될 것이다.이때부터 달러 수요는 급감하고 달러 가치가 무너진다.트럼프 진영에서 이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결국 미국은 군사력 등을 이용해 달러 시스템 파열을 막으려 할 것이다.하지만 달러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 이탈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불가능하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나라가 직면하는 모순인‘트리핀 딜레마’는 기축통화국의 숙명이다.미국은 상품을 수입하고 같은 양의 달러를 수출한다.달러는 미국의 최대 수출품이지만 이는 미국을 영구 채무자로 만든다.나머지 주요 수출국은 과도한 저축을 하게 된다.시간이 흐를수록 불균형은 커진다.미국 쪽에서는 이런 불균형이 불만일 수 있다.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기축통화는 분명 특권이라는 사실이다.미국은 달러를 글로벌 시스템에 적정하게 투입해야 한다.적자를 내야 한다.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기축통화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이는 정책이 아니라 수학이다.
기축통화국에 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나머지 국가들은 무역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적절한 흑자를 내지 못하면 달러 부족으로 극심한 통화 절하를 겪을 수도 심지어 외환,달러 위기에도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우위론을 무시해선 안 되는 이유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비교우위론’은 아직도 유효하다.모든 국가는 자신들이 경쟁력 있는 것을 생산해 수출하고 잘 만들지 못하는 것을 수입해 서로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으면 된다.물론 이 이론엔 여러 가지 결함과 함정이 있다.특정국은 타국에 비해 거의 비교우위를 갖지 못할 수 있다.강점이 있어도 정치와 외교 등 능력 부재로 그것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강대국의 억압으로 무역이 제한받을 수도 있다.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결과다.적자생존은 불가피한 자연 원칙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표현대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뉴욕을 1950년대 봉제 도시로 회귀시킬 수 없다.의류는 베트남,방글라데시에서 만드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봉제업이 신흥국으로 옮겨간 게‘악’인가?뉴욕으로 봉제업이 돌아온다고 미국 노동자들 삶이 현재보다 더 풍요로워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방글라데시,베트남 노동자들에겐 계층을 오를 수 있는 일자리지만 미국 노동자들에겐 강제노동이 아닌 한 참여할 수 없는 일자리다.
“시장이 결정한다.미국의 비교우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민간 기업의 몫이다.정부의 개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정부 개입을 완전히 멈추라는 게 아니다.크루그먼은 미래 산업,특히 첨단 기술을 포함한 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 정책도 써야 하며 제한된 범위에서 다른 수단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들 분야에서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타국 기업들의 무분별한 진출은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무엇보다 반도체 등 안보에 치명적인 품목은 엄중해지는 지정학적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대만에 반도체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미국으로선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전면적이다.관세가 미국을 해방할 것이라 생각한다.대체 미국이 무엇을 얼마나 타국에 착취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어쨌든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과연 그의 이런 믿음이 미국을 구할 수 있을까?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다 해도 그 후폭풍은 심각할 수 있다.문제는 일방적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전쟁은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상흔을 남긴다.미국은 상품 교역에서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던 바를 얻을지도 모르지만,서비스 부문의 타격은 각오해야 한다.무엇보다 미국을 향한 세계의 의심이 깊어질수록 달러의 미래엔 어둠이 드리울 수 있다.과연 미국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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