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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7일 정부는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기존 4567명에서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교착상태에 놓였던 의정갈등에서 1년여 만에 정부가 백기투항을 한 것이다.이로 인해 의대증원을 둘러싼 갈등은 현장의 수많은 혼란만 남긴 채 원점으로 돌아갔다.증원계획이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의과대학생들은 수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투쟁의 이유가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모순된 정의,비겁한 정의
2023년 정부가 의대증원 계획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정부의 정책 철회를 위해 의과대학생들이 보여준 모습들을 다시 곱씹었을 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특히 증원이 확정된 혜택을 받으며 2025학년도에 의대 신입생이 된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모순된 정의,비겁한 정의를 엿볼 수 있었다.
25학번 의대생은 정부의 증원계획을 모르고 입학한 학생들이 아니다.이미 정원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고서 원서를 썼고,범퍼카 토토그에 맞게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다.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변경된 제도의 첫 수혜자인 셈이다.기존 제도대로라면 이들 중 약 1500명은 의대에 가지도 못했다.그런데 증원의 혜택을 받고서 입학한 이 학생들이 막상 합격한 후에는 "정부의 의대증원이 잘못됐다"며 수업 거부를 결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생각해보자.이들이 외치는 '부정의한 제도'란 무엇일까?아마도 의과대학의 증원일 것이다.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정작 자신들이 늘어난 정원의 혜택을 받고 입학한 불공정 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그렇다면 이 문제는 너무 쉽게 해결할 수 있다.사회 정의를 위해 4567명의 신입생 중 늘어난 1500명만큼 책임지고 자퇴하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부정의와 불공정을 목놓아 외치고 있지만 결국 문제의 중심에 그들 스스로가 있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대오 속에서 드러난 동상이몽
지인의 소개로 25학번 의대생을 만나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내부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해 답답해하던 나로서는 감사한 기회였다.첫 질문으로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건넸다.그는 "수업에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지만,감각에 둔해지지 않도록 조금씩 기존 공부를 복습하고 있다"고 했다.
원론적일 수 있지만,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질문도 했다.그는 "작년에도 수업을 듣지 못해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수능 공부에 매진해서 다시 의대에 진학했는데,인스타그램 토토 도메인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학생은 2024년도에도 다른 의과대학에 재학했다가 2025년도에 더 높은 성적의 상위 의대로 진학한 케이스였다.그는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가 알게 모르게 많다.어차피 1년 공부가 어렵게 됐으니 기회로 활용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의대생들이 집단휴학을 이어갈 동안 그 틈에서 상위 의대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시도는 꽤 두드러졌다.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도에 의과대학을 중도탈락한 학생은 총 389명으로 전년도 대비 2배에 육박한 수치를 기록했다.통상적으로 의과대학생의 중도탈락은 상위 의대로 진학하기 위한 자퇴 등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약 4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상위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의료계는 "학생들이 단일대오 속에서 강경한 투쟁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지만,의대 증원은 24학번 학생들에게도 기회였다.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지금의 강경 노선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올 법도 한데,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왜 그런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의료계의 폐쇄적 문화를 지적했다.한 번 튀는 모습을 보이면 동기들 모임에서도,나중에 전공의가 돼서도 선후배에게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한다는 것이 이유였다.워낙 업계가 전문적이고,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 만큼 좁은 구조라 소문도 빠른 편이라고 했다.
지난 3월 13일 건국대학교 의과대학의 본과 2·3학년 학생 6명이 수업에 복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이에 동급생들이 "수업 복귀자를 더 이상 동료로 간주하지 않고,향후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고 입장문을 냈다.교육부는 해당 입장문을 작성한 학생들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또한 의사들의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서는 의대 증원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사직 전에 병원 자료를 삭제하자고 제안하거나,웰컴드링크 사이트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동료 의사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조롱하는 등 폭력성을 앞세운 전체주의적 문화로 다른 의료인들의 복귀를 위축시키고 있다.
하나로 뭉치는 힘이 폭력이어서는 안 돼
이 폭력성의 중심에 누가 있을까.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박단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을 직격했다.박단 부회장은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지내며 의대생의 수업 거부를 주도한 인물이다.그는 연일 강경한 발언들을 일삼으며 의정갈등의 실마리를 스스로 제거하고 있다.수업 복귀를 희망하는 의대생들을 향해 "팔 한 짝 내놓을 용기도 없냐"고 말하는가 하면 현재의 투쟁 방식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을 향해 "교수라 불릴 자격도 없다"고 비판했다.
채동영 전 의협 홍보이사는 주간조선 인터뷰를 통해 "박단에 의해 사태 해결의 기회를 마련할 모든 논의가 가로막혀 있다"고 진단했고,임진수 전 의협 기획이사 또한 "박단은 책임지지 않는 장수다.병사에게만 목 내놓으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의료계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지도 못하면서 그 과정마저 폭력으로 제압하니 젊은 의사들은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른다.단순히 말이 세면 힘도 세보이니까.그러나 의료정상화를 참칭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박단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방식이 옳지 못했음을 증명당할 것이다.이 투쟁이 아래로부터의 태동이 아니라 박단을 비롯한 선배의사들의 권력을 이용한 '찍어누르기 식'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용기 내서 가장 현명했음을 확인해야
이미 2024년 교육부가 한 차례 특례를 제공했음에도 학생들은 지속해서 유급,제적과 관련한 제도적 특례를 요구하고 있다.지금의 비합리적인 투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다.각 학교마다 특성화된 '꼼수 전략'도 공유되고 있다.예를 들어 "무단결석이 1개월 이상이면 제적한다"는 건양대의 경우 연속 결석을 피하기 위해 하루이틀 정도를 출석하고 다시 장기 결석을 이어가는 식이다.
이들이 돌아온다고 한들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두 개 학년,당장 7000여명의 학생들을 동시에 수업할 수 있는 교수진과 강의실이 없다.의대 증원으로 수업 여건을 걱정하던 이들이 자신들이 우려하던 문제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학생은 마지막으로 "학교 가기 싫은 게 아니야.나도 신입생인데 왜 학교에 가기 싫겠어.예쁜 옷도 사고,노트북도 마련했어.다만 혼자 돌아가기가 무서울 뿐이지"라는 말을 건넸다.그는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혹시나 자신의 신원이 특정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그런 이들에게 돌아갈 용기란 단순한 결정은 아닌 듯 보였다.그러나 용기를 낼 수 있다면,수업에 복귀해서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지금의 자신이 가장 현명했음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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