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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증시 4만6000엔대,방일 해외관광객 3510만명,경상흑자 27조엔(약 1800억달러)'.
경제전문가들이 분석하는 2024년 일본 경제 전망이다.각종 수치가 수직상승하고 있다.흔히들 말하는 '잃어버린 일본 30년'은 '대국굴기 중국 30년'과 일치한다.바꿔 말하자면,일본이 내리막일 때 중국은 상승세였다.그러나 팬데믹과 함께 중국이 추락하면서 거꾸로 일본 전체가 훈풍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국민성 차이지만,낙관적인 한국과 달리 일본의 미래관은 항상 어둡다.지진,쓰나미,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상화되면서 유전자 자체가 비관적으로 변한 탓이다.위기 시 일사불란 문화로 대응하지만,그 과정에서 떼죽음도 목격하게 된다.'남에게 피해주지 말라'는 말이 어린이 대상 훈령 1호다.
'더 이상 버블 이후가 아니다'
집단적 피해망상도 남다르다.열도 전체가 아예 바닷속으로 침몰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기묘한 발상'도 일본 내에서 나왔다.2023년 합계출산율만 보더라도 한국은 0.72명,일본은 1.20명이다.워낙 큰 사건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 한국에서 인구문제는 가끔씩 등장하는 '강건너 불'로 비친다.일본의 경우,인구 관련 대책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의 영순위 국정과제다.한국이 보면 일본의 절박한 심리를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과장과 '뻥'에 익숙할 경우,호들갑 공화국으로 그쳐버린다.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전부 보는 것은 아니다.한국 미디어들이 범하는 '지속적인 오류'지만,어두운 것만 열거하는 일본인 말만 듣고 '열도 침몰 초읽기'로 해석하기 십상이다.엔저로 인해 일본이 당장이라도 망할 듯 보도한다.그러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는 사실은 간과한다.도쿄 여행에 나선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한국 물가는 이제 일본을 눈아래로 본다.이미 부분적으로 시작됐지만,'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보다도 일본 물건이 더 싸다.필자 판단이지만,2024년 일본은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알차고 단단하다.짜고 또 짜서 이미 마른 수건이 된,거품 하나 없는 건강한 나라로 변해 있다.
'더 이상 버블 이후가 아니다.'
지난 2월 2일 일본 닛케이 주식시장이 3만9098을 기록할 당시 일본 신문들의 헤드라인이다.35년 전 버블경제 당시의 최고기록인 3만8915를 넘어서면서 터져나온 탄성이라고나 할까?당일 신문 호외까지 나왔다.저물가,부동산 침체,내수 부진으로 고생하던 잃어버린 30년이 '마침내' 종료됐다는 일본발 '버블 최종 사망선고'라 볼 수 있다.호외 발간 후 5개월이 지난 7월 초 또 하나의 '사망선고'가 전 세계에 뜰 예정이다.'더 이상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아니다'라는 선언이다.1984년 이래 무려 40년이나 통용됐던 후쿠자와 초상화의 1만엔 지폐가 사라지고 새로운 초상화의 돈이 발행된다는 뉴스다.바로 7월 3일 등장할 신화폐다.우연인지 필연인지 잃어버린 30년이란 길고 긴 '동면(冬眠)'에서 벗어나는 순간 선보일 국가적 이벤트인 셈이다.1만엔 5000엔,1000엔권 세 종류의 지폐가 주인공이다.
신화폐 100억달러 경제효과 창출
이미 올해 초부터 시작됐지만 신화폐 등장에 따른 갖가지 준비가 열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다.현재 사용 중인 지폐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일단 신화폐 대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준비가 급선무다.일본은 자동판매기 대국이다.전국 298만대 자동판매기 교체,소프트웨어 교환에 따른 비용만도 6000억엔이 필요하다.정부와 지방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으로,신화폐 등장에 따른 첫 번째 경제효과로 열거된다.
은행의 ATM 기기도 교체대상이다.전부 3700억엔이 소요된다.신화폐 발행 덕분에 전체적으로 약 1조6000억엔(약 100억달러) 정도의 경제효과가 창출될 전망이다.신화폐는 경제효과만이 아니라 위조지폐 방지와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에도 주목하고 있다.오렌지주스와 지폐를 보면 그 나라 과학 수준을 알 수 있다.비슷한 듯하지만,조금만 자세히 보면 수준차를 알 수 있다.필자 판단이지만,신화폐는 글로벌 최첨단 지폐가 될 전망이다.일본이 자랑하는 첨단기술 압축판이라 볼 수 있다.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해 보는 각도에 따라 지폐 속 인물의 얼굴이 달라진다.시력이 안 좋거나,야구용품 백화점아예 시각장애인을 위한 입체 도안도 포함돼 있다.
3종류의 신화폐 발행과 함께 3명의 지폐 속 주인공들이 재조명되고 있다.거의 매일 지폐 속 초상화에 대한 역사 공부가 신문·방송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1만엔권에 등장하는 '근대 일본경제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5000엔권의 일본 최초 미국 유학에 오른 여성 쓰다 우메코(津田梅子),1000엔권의 파상풍 치료법을 개발한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가 주인공들이다.신화폐 주인공 3명은 전부 20세기 초 전후의 인물들이다.메이지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에 성공했던 시대의 위인들이다.상상에 기초한 초상화가 아니라,당대 최첨단 기기인 카메라를 써서 사진을 남겼다는 것도 3명의 공통점 중 하나다.무성영화는 물론 20세기 초 개발된 녹음기를 통한 육성(肉聲)도 만날 수 있다.
신화폐 주인공 3명 메이지시대 위인들
필자가 보면 화폐 속 인물들에 관한 기사와 방송 프로그램은 어른보다 어린이들을 위한 최적의 역사 공부 소재로 느껴진다.상상력을 북돋아 줄 만화기법이라고나 할까?스토리텔링의 나라답게,역사라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구체적인 각론과 주변 상황을 기초로 한다.후추,달걀,소시지 가격의 추이를 통한 고대로마 이해법 같은 식이다.민족,이념,도덕과 같은 장엄하고도 무거운 주제를 통한 접근이 아니다.돈의 얼굴이 된 3명의 유년기와 청년기,장년기,노년기에 얽힌 다양한 얘기와 당대의 상황이 신화폐 발행에 맞춰 거의 매일 열도에 울려퍼지고 있다.보통 신화폐 등장이라고 하면 '경제효과의 규모'부터 떠오를 듯하다.2024년 일본 신문·방송 현황을 보면,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는 역사공동체 소재이자 주제로서의 신화폐 등장으로 느껴진다.
7월 초 신화폐 발행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1만엔권 주인공 시부사와에 관한 얘기다.3개의 새로운 지폐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2024년 올해의 인물'에 오를 만한 위인이기도 하다.1만엔권 초상화가 시부사와로 결정됐다는 소식은 1년 전에 들었다.1만엔권 초상화는 일본 경제 얼굴에 해당한다.미국 100달러 지폐 속 주인공을 보면,250여년 역사의 카우보이 나라가 추구하는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을 읽을 수 있다.돈은 성경,코란 나아가 공산당 이데올로기와 무관하다.신념·이념이 아닌 현실로서의 증거가 바로 돈이다.고대에 탄생한 물물교환 수단을 넘어선,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속과 욕의 상징'이 바로 돈이다.미국의 100달러,일본 1만엔 지폐 모두 '불타는 인간 욕망'의 최종 목적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주의할 부분이 하나 있다.인간 모두가 여름철 부나방처럼 100달러나 1만엔 지폐로 몰려가지만,정작 100달러나 1만엔권 지폐 안에 그려진 인물은 속과 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일확천금 부자나 수십여 채 아파트를 거느린 건물주가 아니라 벤자민 프랭클린과 시부사와가 미국,일본을 대표하는 속과 욕의 상징물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두 사람의 공통점이지만,사적으로는 비즈니스도 벌이면서 공적으로 부를 분배한 인물들이다.돈의 화신 미다스(Midus)에 해당될,존 록펠러나 미쓰비시그룹 창설자가 최고단위 지폐의 주인공이 아니다.속과 욕으로 점철된 세계에 살지만,결코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은 인물이 프랭클린과 시부사와다.속과 욕은 추구하되,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100달러,1만엔권 지폐라는 의미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500여 기업 창조한 자본주의의 개척자
필자가 보면 중국 위안(元)화는 공산당 멤버십 경연대회 같은 느낌이 든다.위대한 지도자만이 최고단위 지폐를 차지할 뿐,국가의 주인이라는 인민들의 모습은 최저단위 지폐에 몰려 있다.한국 원화도 위안화와 비슷하다.공산독재를 대신한 주자학 세계관이란 점만 다를 뿐 근본발상은 똑같다.한국 지폐 최고단위 5만원권 주인공 신사임당을 보자.속과 욕의 세계와 신사임당의 모습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프랭클린과 시부사와는 돈의 현실과 이상을 적당히 나누면서 살아간 인물이다.신사임당은 '자식 잘 키운 어머니'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인간 본능이 부딪치는 돈의 세계와는 무관하다.중국 위안화를 독점한 마오쩌둥,중동국가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성직자 모습과 너무도 비슷하다.
필자가 시부시와란 존재에 눈을 뜬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도쿄 황거(皇居) 주변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시부사와 청동입상과 만나게 됐다.긴 코트에 지팡이를 짚고 선 모습으로,청동 특유의 깊은 맛이 밴 인상 깊은 입상이었다.한국은 형(形),즉 뭔가 얽매이는 것에 반발한다.좋게 보면 자유롭고,나쁘게 보면 기승전결이 없이 곧바로 결론이다.일본은 형을 '가타치(かたち)'라 부른다.차 한잔을 마셔도 특별한 예법과 전통을 그대로 재현해야만 한다.일본인 스스로도 말하지만,일본 문화의 출발점은 가타치에서 시작된다.필자 판단이지만,모든 가타치의 정점에는 천황이 있다.천황과 연결시키면서 가타치의 정통성과 권위가 전승될 수 있다.
"왜 위치가 여기인가."
시부사와 청동입상을 만났을 때의 첫 번째 의문이었다.도쿄 여행에 나설 경우 황거 주변을 자세하게 관찰하기 바란다.대략 10여개의 입상들이 황거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들이나 에도시대 이전 인물들이 대부분이다.가타치의 나라답게 입상 그 자체가 아닌 위치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가타치 상식이지만,황거에 가까울수록 권위도 올라간다.일본 내 글로벌 기업의 본점은 '지요다구(千代田区)' 주소로 시작되는 황거 주변에 모여 있다.시부사와 입상은 황거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들어서 있다.다른 입상에 비해 너무 멀다.필자가 관찰한 결과,황거 주변 10여개 입상 가운데 근현대를 살아간 20세기 일본인은 딱 두 명에 그친다.20세기 초의 시부사와,20세기 후반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다.요시다 입상은 황거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시부사와는 비즈니스를,요시다는 정치를 대표하는 20세기 인물로 천황을 지키는 셈이다.
정치가 요시다에 비해 경제의 시부사와가 황거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 있다.그러나 주변 환경을 살피면서 의문이 풀렸다.시부사와 입상은 황거를 등 뒤로 하면서 100m 앞 건물 하나를 주시하고 있다.바로 구 일본은행이다.니혼바시(日本橋) 바로 옆에 들어선,근대 일본자본의 출발점인 일본은행 건물이 시부사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다.천황에 충성한 정치가도 중요하지만,시부사와는 황거가 아닌 국민을 향한 일본은행에 한층 더 주목한다는 의미일 것이다.이념으로서의 천황도 중요하지만,국가번영의 요람인 일본은행을 우선시한 인물이 바로 시부사와다.
아스카야마공원(飛鳥山公園)은 도쿄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휴식처 중 하나다.곳곳에 운동장도 있고,어린이들을 위한 오락시설들도 많다.시부사와 기념관은 아스카야마 한가운데에 들어선 또 다른 명소 중 하나다.요즘 신화폐에 시부사와가 등장한 것과 관련해 각종 행사가 기념관 내에서 펼쳐지고 있다.신화폐에 활용된 얼굴 모습을 중심으로,청년기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의 시부사와 삶이 사진전으로 펼쳐져 있다.공원에 들른 부모와 어린이의 관람 행렬이 이어진다.흑백사진 속 역사가 시부사와를 통해 재현된 듯하다.
1840년 출생한 시부사와는 91세로 세상을 뜬 1931년까지 무려 500여개의 기업을 창조해냈다.그는 사무라이와 무관한 농민의 아들로,15살 때 우연히 막부 수행원으로 프랑스 만국박람회에 파견됐다.파리에 막 등장한 열차를 탔다가,철도의 돈줄이 된 주식회사라는 개념을 이해한다.돌아온 뒤 경제 관련 일을 하다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기업들을 창조해낸다.은행,섬유,음료,조선,제지,보험,광산,병원….전부 일본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전국에 설립된다.경제의 아버지,일본 자본주의 개척자라 불리는 이유다.
시부시와가 추구한 '논어와 주판'의 세계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은 시부사와에 따라붙는 수식어다.시부사와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이 수집해 출판한 책이다.초판은 1916년 출간됐지만,개정판 해설판이 등장하면서 현재 '논어와 주판'이란 제목이나 부제목을 단 책이 무려 200여권에 달한다.책만이 아니라 만화,애니메이션,영화,심지어 게임도 있다.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각 분야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신화폐에 맞춰 나온 책도 이미 70만부 판매 대기록에 올라서 있다.시부사와와 관련된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대환영이다.책의 내용은 간단하다."인간답게 바르게 사는 것과,돈을 열심히 버는 것은 결코 적대가 아닌 조화로운 관계에 해당한다." 시부사와는 인(仁)이 관통하는 공동체 경제를 공자로,현실적인 부의 창출은 주판으로 표현했다.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모두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국가적 번영이 시부사와가 추구한 '공자와 주판' 세계인 것이다.시부사와는 만년에 양로원 같은 자선단체를 만들고,공익기금도 주도해 스포츠 문화 예술 단체와 개인을 도왔다.지난해 인도 뭄바이 방문 당시 타고르 기념 사진전에서 봤지만,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물심양면 지원한 인물도 바로 시부시와였다.무려 4번이나 타고르를 일본에 초청해 인도문학과 사상을 널리 알렸다.타고르와 시부사와가 인도·일본 두 나라 공식 환담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징적 의미지만,7월부터 일본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탈아론(脫亞論)을 주창하며 중국과 조선을 멀리한 후쿠자와를 대신해,중국 원류 공자를 경제로 연결시킨 시부사와가 1만엔권 주인공으로 나서기 때문이다.중국이 하향길에 접어드는 순간 거꾸로 공자를 앞세우며 '인(仁)의 경제'에 주목하는 셈이다.가까운 시일 내 한국도 10만원권 지폐를 만들지 모르겠다.유감이지만,한국 지폐를 보면 봉건시대 위인들이 대세다.투철한 반일정신 덕분이겠지만,야구용품 백화점근현대 위인 대부분이 친일파로 매도되면서 지폐의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일본이 '가타치'라 할 때 한국은 '중구(衆口) 문화 퍼스트'로 느껴진다.'자식 잘 키운 어머니'보다 배나 비싼 10만원권 주인공으로 과연 어떤 인물이 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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