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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둔 청년 54만 명,필요한 건 여유.30분 한강 뛰자 머릿속도 정리되는 기분【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나는 '이십춘기'를 겪고 있다.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우리 세대가 만든 단어다.20대 후반의 고통,제2의 사춘기.사회 초년생이 되기 전,혹은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이들이 느끼는 막막함과 혼란을 가리킨다.나는 그 불안을 스물여섯에 마주했다.

20대 초반에는 이 정도 나이면 인생의 방향이 어느 정도 잡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실제 나의 26은 조금 달랐다.사회는 스펙과 경험을 요구하지만,정작 그런 걸 어디서 어떻게 쌓아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어렵게 간 면접에서는 "경험이 부족하네요"라는 말을 듣고,주변에서는 "취업은 했어?","회사 어때?"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그때부터 다른 사람들 만나는 걸 좀 피하게 됐다.SNS를 열면 다들 바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왜인지 나는 제자리에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나만 그런 것 같아 괜히 몸도 마음도 위축되고,어느새 밖에 나가는 일조차 줄었다.

그래서 오늘은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이십춘기가 무엇이든 간에,오늘 하루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예전의 내가 좋아했던 일들을 떠올려 본 뒤,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  피아노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 ⓒ 옥윤서
먼저,근처 피아노 연습실로 향했다.오랜만에 건반 앞에 앉는 기분은 조금 쑥스럽지만 반가웠다.예전에는 학교에 비치되어 있는 피아노를 가끔씩 치곤 했는데,지금은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것조차도 사치라고 생각돼 피아노는 그저 머릿속 어딘가에만 남아 있었다.

내가 고른 곡은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익숙하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멜로디였다.한 시간쯤을 그렇게 건반 위에서 보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토록 좋아했던 걸,카지노 손석구 패션이렇게 쉽게 잊고 살아왔구나.여유가 없어서라기보단,스스로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몸이 조금 풀린 나는 조용히 연습실을 나와 근처 한강으로 향했다.

▲  뚝섬 한강공원 ⓒ 옥윤서
오랜만에 찾아온 한강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어디서 그렇게 모여드는지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했다.그리고 자전거,산책,피크닉…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 분주함과 활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조금 들떴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끈 건 러닝 하는 사람들이었다.아무런 근심도 없는 듯 뛰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이고,부러웠다.나도 모르게 가방을 내려두고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뛰어서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머릿속도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복잡했던 생각이 잠시 멈추고,오랜만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두 다리에만 집중했다.그렇게 30분 정도 뛴 후,실시간 링크판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  빔프로젝터로 넷플릭스를 보는 모습 ⓒ 옥윤서
평소 같으면 집에 돌아오자마자 취업 사이트부터 들여다봤을 것이다.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그 대신,미뤄뒀던 넷플릭스 드라마를 틀었다.정육점에서 사온 고기로 육회를 만들고,편의점 하이볼 하나를 곁들였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내 앞날도 여전히 막막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덜 복잡해도 괜찮았다.잠시라도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도 괜찮다고,하루 정도는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4 청년의 삶 실태 조사'에 따르면,거의 집에만 머무는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전체 청년의 5.2%,약 54만 명에 달한다.불과 2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관련 기사: 정부,'고립·은둔 청년' 1903명 즉시 지원.54만 명 추정 https://omn.kr/26qu4 ).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의 어려움'(32.8%)이었다.일터에 발을 딛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점점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설문에 응답한 청년 중 82.2%는 "탈은둔을 원한다"라고 답했다.고립 상태에 머무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없다.이들은 단지 집 밖으로 나가기 싫은 게 아니라,나가는 게 무섭고 막막한 것이라는 얘기로 이해할 수 있겠다.

비슷한 또래로서,나는 그런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이 시기는 원래 좀 그런 것 같다고.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자고,우리에게 숨을 고를 시간도 조금은 필요하다고.어쩌면 우리만의 '이십춘기'가 끝날 무렵,청춘은 조용히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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