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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농촌에서 1년 살기.변하는 자연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숙소 창 너머로 펼쳐진 푸른 밀밭이 아침 안개에 덮여 몽환적이다.
지난 3월 초 이곳에 입주할 때에는 아직 어린싹이던 밀이 어느덧 이삭을 피워내 다음 달이면 수확기에 접어든다.시간이 흐르는지 내가 흘러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자연이 변해가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지는 않는 것 같다(관련 기사: 퇴직 후 농촌에서 1년 살기를 시작합니다 https://omn.kr/2cgoa )
늦서리 피하기 위해 늦어진 고추 정식
5월 7일 오후에는 전날 비가 와 촉촉해진 채소밭에 고추를 심었다.정식기를 훨씬 넘긴 모종은 웃자라 20㎝가 넘게 컸다.정식이 늦어지면 좁은 포트에서 오랫동안 버티느라 뿌리가 몇 겹으로 겹쳐 자란다.그래서 노지에 옮겨 심으면 잔뿌리가 없어 뿌리 활착이 늦어진다.
그러나 이곳은 5월 초에도 늦서리가 내리는 경우가 있어서 일찍 정식을 할 수가 없단다.고추는 고온성 작물이라 서리에 치명적이라고 한다.인근에서 고추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직접 우리가 머무는 센터를 방문해 고추재배 요령과 정식방법을 알려줘 한결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고추밭은 감자 재배할 때처럼 세대당 한 이랑씩 배정되었다.농기계로 미리 정지 작업을 잘해 둔 이랑에 비닐 멀칭을 하고 30~40㎝ 간격으로 모종을 심었다.한 이랑당 70주 내외를 심을 수 있었다.정식이 끝난 후 네 그루 간격으로 지주대를 세우고,그 사이로 비닐 노끈을 왕복으로 이어 고추 모종을 지지해 주는 것으로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진행은 더디고 시행착오도 많지만,수확을 꿈꾸며
▲ 고추 모종을 심은 후 지주대를 세우고 노끈을 이어 모종을 지지해 주는 세대원들 ⓒ 임경욱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서툰 작업이라 모두들 진행은 더디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일을 마치고 나니 뿌듯하다.주위는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개인 사정 때문에 작업에 참석하지 못한 세대의 몫까지 챙겨주다 보니 더 늦어진 것 같다.하지만 참석하지 못한 세대의 이랑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공동생활의 좋은 점이 이렇게 빈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주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내 텃밭도 다른 일이 있어 며칠씩 집을 비우면 이웃에서 물을 주고 관리를 잘해준다.참으로 고마운 이웃들이다.3월 말에 하우스에 심은 상추,청경채,비트,적겨자 등 쌈채소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다 따먹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성하다.
이번에 심은 고추는 1개월 후부터는 풋고추를 따먹을 수 있단다.첫서리가 내리는 10월 말까지 수확이 가능할 만큼 생육기간이 길다.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추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되는 채소도 많지 않을 것이다.가을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해 태양초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장마철을 거치며 각종 병해충에 취약해 관리를 잘해주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운 작물이다.특히 병해충은 전염성이 강해 세대원들이 다 같이 관리를 철저히 해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우리는 이래저래 일심공동체이다.
봉사활동,탑 클리어 슬롯누군가의 마음에 하는 빗자루질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세대원 10명이 '천 개의 향나무숲'에서 봉사활동을 했다.우리 센터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천 개의 향나무 숲'은 본래 향나무 농장이었으나,2014년 안재명 대표가 인수해 카페가 있는 정원으로 리모델링한 곳으로,현재는 전라남도에 민간정원으로 등록되어 있단다.
▲ 봉사자들이 거동이 불편한 어른신들을 부축해 안으로 모시고 있다.ⓒ 임경욱 
이날 봉사활동은 구례가 좋아 2년 전에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구례군 농업창업교육센터를 거쳐 현재는 구례에 정착해서 이곳 '천 개의 향나무숲'에서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엄기호 선생님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 성사된 일이다.이날 행사는 구례 관내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세 곳의 어르신 200여 명을 모셔놓고 과일과 빵,떡,음료 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봉사자들은 오전 10시에 행사장에 도착해 어르신들이 앉을 탁자와 의자를 배치하고,산책로를 청소하는 것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향나무향이 그윽하고 온갖 꽃들과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책로를 따라 대빗자루질을 하면서도 누군가의 마음에 빗자루질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내 마음도 이렇게 누군가가 빗자주질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버스킹 공연에서 즉석 사진까지
이번 행사는 '천 개의 향나무숲'에서도 처음 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점심시간이 되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테이블마다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을 세팅하고,몰려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부축해 모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 60세가 넘은 봉사자들이 80세가 넘은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우리가 고령화 시대를 살고 있구나,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어르신들이 다과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다.ⓒ 임경욱 
어느 정도 비운 그릇에 음식을 다시 채워드리는 사이에 엄기호 선생님이 직접 버스킹 공연을 해 주고,어떤 사진작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촬영해 현장에서 사진을 인화해 주기도 했다.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한 어르신들은 한없이 푸르고 맑은 5월의 하늘 아래서 키 큰 향나무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앉아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하셨다.
지금은 우리가 이 분들을 위해 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다지만,벳365 보너스코드우리가 이 분들처럼 나이가 들면 우리를 위해 봉사해 줄 사람이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것은 줄어드는 인구 때문인가.아님 변해가는 세태 때문인가.내 쓸데없는 걱정 너머로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산들바람이 땀에 젖은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