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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프레보스트 추기경 선출돼
시카고 출생,페루 빈민가서 사목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길”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로버트 프란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이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신자들에게 축복을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미국 출신으로 남미 페루에서 사목(司牧) 활동을 해온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투표)를 통해 267대 가톨릭 교황으로 8일 선출됐다.첫 남미 출신이었던 프란치스코에 이은,최초의 북미 출신이자 미국인 교황이다.교황은 즉위명으로‘레오(Leo) 14세’를 선택했다.

새 교황은 콘클라베 이틀째 오후에 추기경 133명 중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 선출됐다.그는 이날 신자 15만명의 환호 속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와 이탈리아어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이라고 첫인사를 건넸다.지난달 21일 선종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여러 번 언급하며 “(이 평화는)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그리스도의 평화이자 무기를 내려놓는 평화,겸손하고 인내하는 평화”라며 “우리 모두 하느님 안에 하나가 되어 손잡고 걸어가자”고 했다.

바티칸 안팎에선 새 교황의 과제로 확산 조짐을 보이는 세계적 무력 분쟁의 평화적 해결,프란치스코 전임 교황이 추진해 온 교황청과 교회 개혁 계승 등이 거론되고 있다.그는 2023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으로 임명했다.새 교황은 이날 “교회를 다리를 놓는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다리를 놓는다’는 말은 전임 프란치스코가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해 “벽을 세우지 말고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말하며 쓴 표현이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은 1955년 미국 시카고에서 프랑스·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스페인계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어린 시절부터 사제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성(聖)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운영하는 미시간의 신학 고등학교에 입학했다.1977년 이 수도회에 입회하고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1985년 남미 페루로 가서 낙후된 지역에서 수십 년 사목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일했다.그가 걸어온 길과 따뜻한 성품 때문에‘빈자(貧者)의 친구’로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계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2014년 페루 북서부 치클라요의 주교가 됐고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면서 교회 내 인사 전반을 총괄하는 주교부 장관으로 발탁돼 교황청에 진출했다.올해 3년 차‘신참 추기경’이지만 주교부 장관을 맡은 덕분에 교황청 내 유력자 및 세계 각국의 많은 추기경과 자주 소통해 왔다.CNN은 “외부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추기경들 사이에선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다”고 전했다.그는 모국어인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라틴어·독일어도 능숙하다고 알려졌다.교황 선출 후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메시지를 이야기할 때 앞부분은 이탈리아어,뒷부분은 페루와 남미 신자를 위해 스페인어로 말했다.

특히 태생은 미국인이지만 줄곧 남미에서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목 활동을 하며‘글로벌리스트(세계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온 점이 콘클라베의 추기경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페루 정부는 그가 페루에서 사목한 지 20년이 되는 2015년 그의 헌신을 인정해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래픽=양진경
레오 14세는‘은둔의 수도원’이라고 불리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답게,바티칸 내의‘조용한 개혁가’로 불려왔다.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해 온 교회 개혁 작업에서 핵심 실무 역할을 맡으며 교회 내 권위주의를 경계하고,평신도와 여성의 역할 확대를 중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한편으론 여성의 사제 임명이나 동성애·성소수자 관련 이슈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신학적으론 중도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BBC는 “레오 14세는 전임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즉위명‘레오’는 라틴어로 사자를 뜻한다.용기와 강인함을 갖춘 교황으로서 프란치스코의 교회 개혁을 계승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워싱턴포스트는 “과거 레오라는 이름의 교황은 개혁가들이었다.특히 앞서 같은 이름을 쓴 레오 13세(1878~1903년 재위)는 인간과 노동의 존엄성을 다룬 회칙(回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그는 이를 통해 가톨릭 사회 교리의 토대를 만들고,포커 페이스 자막노동자와 약자 보호,사회 정의 실현을 강조했다.

한편 미국인 교황이 당선되면서 가톨릭 교황에 두 번 연속 비(非)유럽이자 미주(美洲) 성직자가 즉위하는 이변이 일어났다.아울러 1978년 즉위한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 이전에 455년에 걸쳐 51연속 교황을 배출한‘전통의 강자’이탈리아는 요한 바오로 2세,베네딕토 16세(독일),프란치스코(아르헨티나)에 이어 네 번 연속 다른 나라 교황의 즉위를 지켜봐야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