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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⑦] 광주 5·18민주광장의 기수 나수하씨"'광장에 선 여자'가 디폴트값이라고 한다면,우리의 질문은 '왜 여자는 광장에 서는가'를 넘어서 '왜 여자는 정치적인가'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책 <다시 만날 세계에서> 중) 책임지지 못할 저런 말을 써놓고,도박 배당률 계산자주 저 뜻을 머릿속으로 굴려 봤다.세상이 광장에 나온 2030 여자들에 놀라고 기특해할 때,메이저 카지노사이트 우리카지노 도메인나는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세상이 몰랐던(혹은 자주 잊었던),이 '정치적인' 여자들의 기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광장을 바꾼 여자들을 만나 들은 말들을 싣는다.<기자말>
광주,우리 시대에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그런 KIA 타이거즈가 7년 만에 프로야구 챔피언에 오릅니다.
지난해 10월 28일,2024 프로야구가 기아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으로 막을 내릴 당시 한명재 MBC스포츠플러스 캐스터의 우승 콜이다.전남일보는 우승 이튿날 기사에 이렇게 썼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이후로 가슴 속의 한을 풀지 못하고 삼켜야만 했던 지역민에게 있어 타이거즈는 남도 기개의 상징이자 야구는 한을 풀어주는 살풀이 굿판이었고,치유되지 않고 있는 아픔을 잊게 해주는 위안이었다.(타이거즈 우승 "광주,우리 시대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2024.10.29.)
우승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인 12월 3일 밤,윤석열에 의해 비상계엄이 선포됐다.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44년 만의 계엄이었다.광주 챔피언스필드를 물들였던 기아 타이거즈의 머플러와 유니폼,응원 배트를 들고 광주 시민들은 5·18 민주광장으로 나왔다.광장에서 그들은 '타이거즈~ 소크라테스'로 시작하는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의 응원가를 '우리 모두~ 촛불을 들자'로 개사해 불렀다.
프로야구 천만 관중 시대를 견인한 2030 여성들은,야구장에 가던 그 차림 그대로 집회에 나왔다.윤석열 퇴진 광장에 깃발과 응원봉 다음으로 야구 응원 배트와 유니폼,점퍼가 많았던 이유다.광주의 5·18민주광장에서,기아 타이거즈 로고 위에 '시민은 도청으로'라는 44년 전 구호를 칠한 깃발의 기수로 섰던 나수하(26)씨를 지난달 27일 줌으로 만났다.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기아 타이거즈: 시민은 도청으로' 깃발 기수이자 병원 영양사로 근무하고 있는 나수하입니다."
전일빌딩에 새겨진 245개의 탄흔이 생각나던 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수하씨는 영양사 국가고시를 불과 열흘 남짓 앞둔 수험생이었다.여느 밤처럼 잘 준비를 하던 그때,갑작스레 들려온 소식에 가족들 모두 밤새 TV 중계를 보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전남 담양이 고향인 엄마,나주 출생의 아빠는 계엄의 엄중함을 모를 리 없었고,광주에서 나고 자란 수하씨도 마찬가지였다.무섭고 두려운 밤이었다.
"광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계엄이나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많은 교육을 받거든요.당시에 참혹했던 현장 사진들,영상 같은 것들도 많이 보고요.광주는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더라고요.'나도 내가 봤던 사진들처럼 무력과 무자비한 폭력에 당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떠올라 두려웠어요."
현재도 광주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무시로 지나치던 금남로에서 본 탄흔이 생각나는 밤이었다.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가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난사한 흔적 245개를 기려 그곳은 이름도 '전일빌딩245'다.
시험 마치자마자 달려간 광장,거기서 만난 타이거즈
수하씨가 5·18 민주광장으로 처음 달려간 것은 지난해 12월 14일,국회에서 두 번의 시도 끝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이었다.그날은 수하씨의 영양사 국가고시 시험일이기도 했다.시험 준비를 위해 줄곧 도서관에 있었던 수하씨도,이날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간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털어내고자 광장으로 향했다.
"전에는 민주노총 같은 단체나 정당 깃발이 많고 조금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들었는데,그날은 개인 깃발 기수분들도 많았어요.서울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고요.광주라는 지역 특성상 아무래도 5·18을 직접 겪은 세대,유가족분들이 많았어요.응원봉을 든 여성들도 정말 많았고요.금남로 일대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모여서 전광판 화면을 보는데,가결이 되던 순간의 환호와 함성이 '광주는 조금 다른 곳이다.좀 더 민주주의에 예민하고 더 많이 마음을 쏟는 곳이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가 처음 광장에 들고 나갔던 것은 '기아 타이거즈' 깃발과,전구를 연결해 불을 밝힌 플라스틱 응원 배트였다.깃발은 수하씨가 야구에 처음 '입덕'하던 2021년,광주챔피언스필드에서 받은 거였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던 수하씨 눈에 어느 날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들어 왔다."나도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친구를 따라 나섰는데,'희로애락이 있는 스포츠'라는 점이 곧 맘에 들었다.코로나 여파로 텅 빈 관중석을 그나마도 '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 타이거즈에서 나눠 준 것이 깃대만 1m 남짓의 조그만 타이거즈 깃발이었다.
그에게 광주에서 야구와 기아 타이거즈가 갖는 의미를 묻자,예의 그 전두환의 3S 정책이 먼저 나왔다.군사 독재로 인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섹스,스포츠,스크린으로 돌리고자 했다는 이야기.그렇게 3S의 하나로 1982년 프로야구가 탄생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수하씨의 답변은 시작됐다.
"국민들이 자신의 독재에 대한 비판도 좀 줄였으면 좋겠고,정치적인 관심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들여온 게 프로야구잖아요.사실 광주를 (광주의 아픈 역사를) 조금 잊게 만들려고 들여온 거였는데,아이러니하게도 광주 사람들은 야구장에 가서 슬픔이나 울분을 표현할 수 있었거든요.호남과 광주,억압받았던 정체성을 풀 수 있고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어서 기아 타이거즈 깃발을 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수하씨는 쭉 기아 타이거즈에 담긴 호남 야구의 지역색을 설명해 줬다.야구장에서 불리기엔 많이 구슬픈 노래 '목포의 눈물'이 응원가로 쓰였고,'비 내리는 호남선'으로 시작하는 '남행 열차'가 8회 승리를 목전에 두고 부르는 응원가로 자리매김한 것 등을 말이다.나는 머릿속으로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무등 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김대중'을 연호하던 모습.야구장에서 야구 경기 보다가 정치인 이름을 부르는 게 연출이 아닌 실화인가 싶어,오랜 타이거즈 팬에게 물어봤더니 정말로 본인이 어렸을 때 그랬다고 전해줬다.
이토록 태생부터 정치적인 스포츠인 야구가 광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타이거즈의 최대 팬 카페인 네이버 'V13을 위하여 응원하는 타이거즈'는 내란 국면에 정치적 내용의 게시글은 금지한다는 기존 규정에 예외를 둔다는 공지를 올렸다.'이번 비상계엄 시국 관련 사항을 정치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이곳은 계엄에 관해 마음의 빚이 있는 광주가 홈구장인 기아타이거즈 팬카페입니다.'
44년 만의 '시민은 도청으로'
수하씨의 깃발에 검은 눈물로 아로새긴 듯한 '시민은 도청으로'가 등장한 것은 지난 2월 8일 금남로에서 열린 극우 집회 때문이었다.여느 주말처럼 응원 배트를 들고 5·18 민주광장으로 향하던 수하씨는 그날 전일빌딩 앞에 모인 60여 명의 극우 세력을 봤다.
"'광주여 깨어나라,언제까지 속고 살 것인가'라고 마이크를 들고 외치더라고요.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지워버리고자 하는 게 느껴졌고요.저희가 했던 많은 일들을,마치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속아서 한 것처럼 무시한다고 느껴져서 모욕적이었어요.
그리고 5.18 민주광장은 5시 18분이 되면 예나 지금이나 종소리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와요.저희가 그날도 집회를 하다가 5시 18분 '땡' 하면서 노래가 나오면 다 같이 묵념을 했거든요.엄숙하고 조용하고,토토 가상계좌 수수료슬픔을 위로하는 그런 시간이잖아요.근데 극우 집회에서 그 시간에 큰 소음과 함께 신나는 노래를 틀기도 하고,마이크로 발언도 하더라고요.'저 사람들은 절대 광주를 위해서 온 게 아니다.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모욕을 주기 위해서 온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집으로 오는 길에 수하씨는 평소 타이거즈 팬 계정으로 쓰던 'X'(구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렸다.일주일 후인 15일,탄핵 반대 세력이 금남로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서였다.45년 전 5·18 당시 수하씨 또래의 여성들이 "광주시민 여러분,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며 가두방송을 했던 것처럼(<광주일보>,"광주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잊지 못할 그날,2022.5.18.).
518 민주도시 광주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중략) 불법계엄과 내란을 옹호하는 극우주의자들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반드시 2월 15일 탄핵촉구집회에 자리해 주심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날 올린 글은 조회수 139만회에 1만 2000회 이상 공유가 됐다.그는 아끼던 타이거즈 깃발에 래커로 '시민은 도청으로'를 써넣었다.
"광주에 내란 옹호 세력 집회가 열리게 되면서,시민분들한테 좀 부디 도청(5·18민주광장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이다)으로 모여달라고 호소할 일이 생겼는데,그때 생각이 난 게 '전 시민은 도청으로 집결'이었어요.'시민은 도청으로'가 5·18 민주항쟁 당시 가장 많이 통용됐던 문장으로 알고 있거든요.집회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모일수록 안전해지고 강한 힘을 발휘하니까… '그래서 1980년 5월에도 다들 여기로 모이라고 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탄핵 반대에 앞장선 개신교 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대규모 집회를 연 15일,수하씨는 처음 깃발을 들고 나섰다.금남로 일대의 교통이 통제되는 바람에,금남로5가에서 내려 민주광장까지 1.2㎞가량을 걷는 사이 세이브코리아 집회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했다.당시 세이브코리아 주최 탄핵 반대 집회에는 1만명 가량(주최 측 추산)이,100m 거리를 두고 차 벽으로 분리된 탄핵 찬성 집회에는 2만 명가량이 참석했다.
"(세이브코리아 집회) 무대 앞을 지나가는데,당시에 마이크 들고 계시던 분이 '광주 빨갱이들 다 어디 갔느냐.우리가 무서워서 도망갔느냐'라고 말하더라고요.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빨갱이'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비하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고,광주에서는 정말 금기시 되는 단어거든요.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바카라 윈절대 쓰지 않고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데 그걸 너무 쉽게 입에 올리더라고요."
분해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며 길을 뚫는 와중에,그의 깃발을 알아본 많은 시민들이 환호했다.
"특히 5·18을 겪은 세대,중장년층에서 제 깃발을 좀 보시더라고요.'멋있다'고 많이들 그러셨고요.그리고 그날 '시민은 도청으로'라고 쓰인 현수막을 건 레트로 버스(내란 국면에서 서울 여의도와 한남동,광화문 등의 광장을 순회한 시민항쟁버스)가 왔는데요.버스 앞에서 제 깃발을 빌려서 사진 찍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탄핵 광장을 지나… 깃발의 기수로,노조원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은 수하씨의 많은 것을 바꿔놨다.일단,수험생에서 영양사가 됐다.'기아 타이거즈: 시민은 도청으로' 깃발의 기수가 됐으며,집회의 시민 발언대에 두 번 올랐다.내란 국면에서 조직된 전국민주일반노조 누구나노조지회에도 가입했다.누구나노조지회는 기업·산업 등을 떠나 프리랜서,취업준비생,자영업자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제 친구가 누구나노조지회는 노동을 하고 있지 않은 시민들,혹은 저처럼 따로 노조가 없는 사람들도 가입할 수 있다 해서 저도 가입하게 됐어요.언젠가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함에 연대하고 싶어서요."
지난 3월 27일,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한 날 그는 집회 발언대에 올랐다.'1000억이 넘는 돈을 들여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강행했지만 산불진화대원들에게 월 4만 원의 위험수당은 줄 수 없고,남태령에서 농민을 트랙터에서 억지로 끌어내리는 경찰은 있지만 불타는 산에서 대피 지원을 할 경찰은 없다'라며 국내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회상을 꼬집었다.
지난달 4일,파면 선고 당일에도 발언자로 나섰다.선고가 나던 그날 오전,수하씨는 직장인 병원이었다.환자들 밥을 챙긴 후,할 일을 끝내고 밥을 먹는 사이 동료 직원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어요.'끝났다','해냈다' 이런 생각이 좀 들었고요.12월부터 추운 겨울 내내 했던 투쟁이,나의 노력이,무력하거나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밥을 먹다가 눈물이 나서,울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날 저녁,파면을 축하하는 집회의 발언대에 서서 그는 말했다.
"계엄은 우리를 공포스럽게 했지만 우리는 두려움에 지지 않았고,(계엄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그 혼란에도 벽을 허물고 옆사람과 한걸음 가까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전 시민은 도청으로 집결!"
수하씨는 지난달 26일에서야 올 시즌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다.1년에 20회 이상 야구장을 찾는 수하씨로서는 늦은 개시였다.'최애'인 타이거즈의 투수 이준영의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스필드 앞에서 찍은 사진에 친구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너 야구보니까 ㅈㅉ(진짜) 탄핵된 거 같다."
약자들이 지켜낸 곳으로서의 '광장'
고 백남기 농민을 겨냥한 물대포에 분노해 서울 가는 버스에 올라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9년 뒤 '시민은 도청으로'를 깃발에 내건 새내기 영양사가 되었다.9년 세월을 건너 수하씨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일까.
"광장은 여성과 장애인,성소수자,노동자 같은 약자들이 지켜내는 곳이잖아요.광장을 지켜낸 사람들이 절대 잊혀서는 안 되겠죠.우리가 지켜낸 광장이고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니까요.내란 청산은 당연하고,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살피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생활동반자법,차별금지법도 제정이 됐으면 좋겠고요."
정치권에서 선거 때만 되면 '호남 민심을 잡아야 된다'는 얘기들을 하고서는 막상 호남을 위한 공약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약자들을 위한 공약과 정책도 매한가지라는 얘기를 덧붙였다.그는 향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투쟁이나 가장 아래로 향하는 폭력인 동물권 유린에 반대하는 집회 등에도 연대할 예정이다.
오는 5·18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다.그에게 5·18은 "눈물과 피로 쓴 민주주의의 바탕"이자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스로의 정체성과 맞닿은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야구는 거기서 피어난 '희로애락'이자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원천이라고,수하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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