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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 성악가(세종대 음대 교수)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직업이 몇이나 될까.목소리 하나로 누군가에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직업‘성악가.이들은 무대에 서기 위해 꽤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술과 담배는 물론,그 흔한 음식도 가려야 하고,때론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도 멀리한다.그들의 노력은 무대 위 찰나로 지나가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지겨울 정도로 수없이 반복하며 연습한다.
한국 클래식계 대표주자로 꼽히는 오은경 소프라노(세종대 음대 교수) 역시 한 평생 날 선 잣대를 기준으로 살아 온 음악인이다.환갑을 마주한 나이에도 꼿꼿한 그녀의 모습은 천상 소프라노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의 비결은 아마 그녀의 나이가 한 자릿수에 불과할 때부터 몸에 익혀 오던 습관 때문일 것이다.수십 년 간 지켜 온 국내 대표 소프라노 타이틀에서 글로벌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의 길로 인생 2막을 걷고 있는 오은경 교수를 만나‘성악가의 세계’를 들어봤다.
노래를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했으니 정말 오래됐네요.일곱 살 때 아동 콩쿠르에 출전해 상을 받은 것부터 시작하면 50년이 훌쩍 넘었네요.(웃음)”
그 시절 음악을 공부 했으면 집안이 꽤나 부유했나보군요.
“전혀 그 반대예요.어머니께서 노래에 대한 꿈이 있으셨어요.그때만 해도 6.25 사변 겪을 시대였으니 꿈을 펼치지 못하셨죠.근데 딸을 하나 낳았는데 재능이 있어 보이니 없는 돈에 뒷바라지를 하신 거였어요.”
어머니께서 노래에 대한 한이 있으셨군요.
“그랬으니 그 시절,경북 경주 시골서 버스타고 수 시간이 걸려 서울 콩쿠르에 나갔으니까요.제 자랑이지만 늘 1등이었어요.그러니 집에 쌀은 떨어져도 노래를 안 시킬 수가 없었던 거죠.”
어릴 적 학교에서도 유명인사였겠네요.
“그랬었죠.초등학교 때부터 합창대회나 방송에 나갈 기회도 많아 학교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당시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로 레코드판을 취입하기도 했으니까요.그때가 지금보다 더 유명했죠.”
어떻게 보면 어릴 적부터 성악가의 삶이 예견돼 있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랬던 것 같아요.주변에서 잘한다,잘한다 하니 예중·예고로 진학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정해진 길을 가야한다는 부담감이나 다른 분야의 호기심이 생길 법도 했을 텐데요.한 눈 판 적은 없었나요.
“고3때였어요.잘한다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1등을 해 온 제가 다른 친구에게 1등을 빼앗긴 거예요.저에겐 너무 충격이었죠.그 친군 저보다 덩치가 커 울림통이 장난 아니었죠.가만히 생각해보니 공부는 밤을 새고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르는데,노래는 밤새 연습을 해도 그 친구의 소리를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의 첫 고비였군요.
“그 길로 음악 선생님을 찾아가 “성악가 중에 날씬한 사람은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없어”라고 하시더군요.그때 또 충격이었죠.정말 진지하게 그만둘까 생각했었어요.그렇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해 오던 노래라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그래서 일단 대학을 진학하고 계속 할지,말지 결정을 미뤘죠.”
서울대 음대를 진학하고 보니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가요.
“대학가서 보니 날씬한 성악가들이 많더라고요.(웃음) 체격이 있고 울림통이 큰 친구들은 소리는 크지만,기교와 감성을 살리진 못한다는 걸 알게 됐죠.장르가 다른 거죠.권투에서 헤비급과 라이트급처럼요.”
대부분의 성악가가 어릴 때부터 노래를 시작하고,또 전문학교 또는 전문레슨을 받게 되는데,구체적으로 뭘 배우나요.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는 거죠.특히 클래식은 오랜 역사가 있는 외국 음악이잖아요.긴 음악사부터 심지어 가사도 이태리어나 독일어라 굉장히 어려워요.그리고 발성법과 같은 실기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거든요.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성악가의 배움의 깊이는 끝이 없답니다.”
현실적으로 無전공자는 성악가로 성장하긴 어렵겠군요.
“가능 할 순 있겠죠.폴 포츠(Paul Potts)처럼 아예 다른 일을 하다가 성악가로 전향한 사례가 있으니 불가능하다고 할 순 없지만 현실적으론 전공을 해야 한다고 봐요.타고난 실력으로 노래를 잘 부르거나 개인 레슨을 통해 노래의 기술을 배울 순 있지만 인문학적인 이론을 배우긴 쉽지 않거든요.대게 클래식 가사는 외국의 시로 만들어졌는데,그 뜻과 깊이를 이해하며 부르기 위해서는 전공자들이 유리하죠.”
성악가들 중에서는 유학을 많이 가잖아요.유학도 필수코스인가요.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에서 더 전문적인 학문적 지식을 쌓고,무대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성악가로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근데 최근 들어 한국의 성악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 굳이 유학을 가지 않고도 세계무대로 진출하거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성악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예전에는 유학이 필수코스였다면 요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어요.”
한국의 클래식 음악이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뭔가요.
“성악 전공자들에게 이태리나 독일 유학이 필수코스였던 적이 있었어요.한국의 철저한 교육시스템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클래식의 본고장인 나라에서 전문성을 익혀 국내 대학 교수로 임용 되는 게 자연스런 코스였죠.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그들의 실력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것도 세계 정상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 거예요.요즘 보면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한국 성악가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한국 클래식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 셈이죠.”
듣기론,중국 유학생들이 성악을 배우기 위해 세종대에 많이 지원한다고 들었어요.
“아마 2020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처음엔 두 명의 중국 유학생이 지원했었어요.당시엔 처음이라 통역 시스템도,레슨도 모두 부족한 시절이었죠.그 친구들이 다시 중국에 가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지금은 수십 배가 늘었죠.저흰 학기마다 학생들을 모집하는데,이번 학기엔 지원자(중국 유학생)가 100여명이 넘은 걸로 알고 있어요.”
중국 유학생들의 지원이 늘어난 이유는 뭔가요.
“말씀드린 것처럼,한국 성악가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수상을 많이 해서 위상이 아주 높아졌어요.국제 콩쿠르 수상자들 중 한국인이 많다는 걸 알고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난 거죠.유학생 유입이 조금씩 늘다 보니 학교 차원에서도 통역이나 시스템을 하나씩 갖춰나가고 있는 상황이고요.그리고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중국으로 가면 교수를 할 수 있는 메리트도 있고요.”
그럼 중국에서 꽤나 유명하시겠는데요.
“그럼요.그 친구들이 연습영상을 찍어 SNS에 많이 올리는데,들리는 소문으론 인기가 많대요.(웃음)”
성악가의 조건은 단연 노래 실력일 텐데요.그 다음 꼭 필요한 부분을 꼽자면 뭐가 있을까요.
“결국 성악가들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위한 노래를 해야 하는 사람이에요.연습 땐 잘하지만 무대 위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무대 위 자신을 비추는 조명이 무섭거나 떨린다면 성악가로선 자질이 부족한 거죠.그래서 대다수의 성악가들은 외향적 성격이나 대범한 면이 있어요.무대 위에 감도는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만이 성악가가 될 수 있거든요.”
일반적으로 성악 전공자들은 졸업 후 어떤 진로를 선택하게 되나요.
“합창단을 들어가거나 솔리스트로 활동을 하기도 해요.저처럼 학교로 들어가 성악을 가르치기도 하고요.요즘엔 아카데미나 개인 레슨으로 재능을 펼치기도 합니다.”
어릴 적부터 투자한 노력에 비해 취업문이 좁다 느껴지네요.
“그렇죠.일반 대학생들은 보통 4년 공부하고 취업시장에 들어가는데,음대는 의대만큼 길어요.그렇다고 합창단이 많지도 않아 평균 경쟁률이 20대1,30대1이니까요.그래서 성악가들은 무대에서 노래하기까지 무명의 시간이 길어요.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그 긴 터널을 견딜 수 있는 투지와 끈기가 있어야만 진정 성악가로 성장할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성악 전공자들이 가수나 뮤지컬로 영역을 확장하는 사례도 많이 볼 수 있어요‘크로스오버’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 같은 TV 프로그램에 성악 전공자들이 나오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죠.전공자들만 모아서 만든 프로그램도 인기였잖아요.요즘엔 그 친구들이 워낙 인기 있고,팬층이 두텁다 보니 오히려 클래식계에서 영입하려는 분위기도 있을 정도니까요.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요즘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왜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나요.
“예전 1세대 선생님들은 성악가가 가요를 부르는 걸 용납 못 하셨어요.정통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선이 있었던 거죠.제가 딱 그 중간에‘낀 세대’거든요.그런 선배들 밑에서 배웠고,크로스오버를 추구하는 후배들 사이에서 양쪽 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네요.(웃음)”
교수님은 정통을 지키는 것,아니면 클래식의 부흥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둘 다 필요하다고 봐요.다만,모두가 다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흥행이 된다고 모두 다 트롯을 부를 순 없잖아요.정통을 추구하고 지키는 이들이 있다면,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도 있어야죠.서로를 존중해주면서 말이에요.”
교수를 하신 지도 오래 되신 걸로 압니다.성악가로서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뭘까요.
“1999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으니 올해로 26년이 넘었네요.아이들한테 강조하는 건 너무나 많지만,하나만 꼽자면‘프로페셔널 싱어’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누군가가 내 노래를 돈을 주고,카지노가입머니시간을 내 들을 수 있는 가치가 있을 정도의 성악가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그러기 위해선 노래가 아름다워야 하죠.그리고 노래 이외에도 외모나 태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요즘엔 음식의 맛 만큼이나 플레이팅도 중요하잖아요.성악가도 마찬가지예요.스스로를 상품 가치가 있는 성악가로 만들라고 늘 강조한답니다.”
성악가의 직업적 비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요즘 클래식 음악은 가요와 뮤지컬과 같은 대중음악에 밀려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그들에 비해 연주료도 턱없이 적고,투잡을 하지 않고 성악가로서만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클래식은 날로 성장하고 있고,국내 성악가들이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어요.머지않아 한국의 클래식이 세계에 손꼽히는 날이 오면 클래식 시장도 더욱 커지지 않을까 기대해요.(웃음)”
[사진=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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