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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주체’평가마저 남성 통하는 현실
고졸 생산직,“TK의 딸”,“술집 여자” 등
2030 여성 당사자들,전국 13명 인터뷰 지난해 12월22일‘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를 몰고 상경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을 경찰이 서울 남태령고개에서 막아서자 밤새 현장을 지킨 청년 여성들과 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김혜윤 기자 “(윤석열이) 대통령이란 사실만으로도 정신을 공격당하는 느낌”이 들어 “몰두할 게” 필요했던 민지씨는 2년간 밤마다 뜨개질을 했다.지난해 12월3일 밤에도 뜨개질을 하다 비상계엄 선포 뉴스를 보고 “등줄기가 저릿”해진 그는 트위터에서 만난‘10년지기 덕질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집회 현장을 찾아다녔다.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농민들이 남태령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12월21일 밤엔 광화문 집회를 마친 뒤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갔다.어딘지 모를 곳에 내려 “스산”하고 “경찰만 쫙 서 있는” 인도를 통과하며 두려움에 떨던 민지씨는 저 앞에서 집회 동료들을 발견하고 크게 안도했다. 
“도착하니까 여자들이 엄청 많았어요.순간‘여기 여자 되게 많다,스포츠 실시간 중계 사이트 벳 피스트 놀 검소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회 장소의 불빛을 보고 느낀 안도감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12월3일 밤 방 청소를 하며 “내일부터 정말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부산의 대학생 혜수씨도 그날 이후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삶을 살게 됐”다.가장 먼저 한 일은 “집회 이동용으로만 쓰는 교통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무서운 것보다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 게 싫어” 서울 가는 가장 빠른 표를 끊었다.남태령 현장에선 자유발언자로 나서 “나는 제일 앞에 서 있을 거고 제일 늦게 빠질 거”라며 공개 다짐 또는 약속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고 권고사직당한 간호사 은영씨는 SNS 가족 대화방에서 계엄 소식을 접했다.특히 많이 울고 불안해하는 외할머니를 보며 그동안 몰랐던 가족사를 알게 됐다.1980년대 이모와 삼촌은 사회운동을 하다 기무사로 끌려갔고 할머니는 그 앞에서 자식들 석방을 요구하며 “데모”를 했다.가족들은 “일상을 살아야 하니까 자자”는 글을 올려 할머니를 안정시킨 뒤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남아서 할머니를 돌봤던 은영씨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기획한‘의료 부스’에 결합했고 간호사들을 조직해 집회 참가자들을 진료했다.경찰이 차량 진입을 막은 남태령엔 “약품이랑 의료 물품을 이고 지고 들어”갔다.
남태령으로 “당장 달려갈 수 없어 연대 물품이나 음식을 보낸 사람들” 중엔 부산에 거주하는 유진(가명)씨도 있었다.“트랙터 타고 올라가신 농민분들 우리 부모님뻘일 텐데 혈당 떨어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다 친구와 모금을 시작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배달 가능한 가게를 찾아 닭죽을 보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삶을 꾸려왔던 그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각 각자의 방식으로 남태령에 있었다.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나 서로의‘있음’을 느끼며 힘을 얻고 “우리가 이긴다”는 믿음을 얻었다.
‘백날 지워봐라,우리가 사라지나’는 탄핵 광장에 나온 2030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들 스스로 기록한 책이다.제목은 비유가 아니었다.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불법 촬영물 편파 수사로,엔(N)번방 성 착취로‘페미’낙인과 사상 검증으로,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사라졌던 그들은 탄핵 주체로서의 평가에서마저 누군가를 통해 설명되는 현실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언어를 모았다.
“12·3 계엄의 밤이 지나고 젊은 여성들이 탄핵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많은 이가‘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스포츠토토 분석법언론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양 선두에 선‘2030 여성들’을 앞다퉈 호명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을 향한 이 추앙의 물결에 정작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정치’의 남성 중심성은 여성의 정치 행위에 대해 말하는 그 순간에도 또다시 남성의 입을 빌렸다.(…) 2030 여성이 왜 광장에 나오는지는 우리‘2030 여성’의 발화를 통해 온전해질 수 있다.”(프롤로그) 백날 지워봐라,우리가 사라지나 l 최나현·양소영·김세희 지음,오월의봄,2만1000원 청년 여성들은 내란 이후 탄핵 광장으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다.“지난 10여년간 한국사회에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강력히 요구하며 스스로 진지를 구축”해온 그들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있는 시공간”이라며 “여성 개개인의 삶이 광장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프롤로그)를 시작했다.탄핵 이후 쏟아진 광장의 말들을 가장 빠르게 정리해 출간한 책이 그들의 언어란 점도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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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저자 3명은 부산의 청년 여성들이다.지역성은 그들의 핵심 지향이기도 했다.“여성이 지워지는 문제만큼 비수도권 여성의 경험이 세상에 제대로 기재되지 않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며 서울을 벗어나 경기,경남,대구,부산,서울,인천,충남 등 전국의 집회 참가자 13명에게 마이크를 쥐여줬다.이 시도는 한국에서 정치·사회·경제적 위치 자체가 변방이었던 청년 여성들이 서울과 지방,다수와 소수,가부장과 딸로 틀 지워진 세계를 깨고 다시 짓는 일이기도 했다.거리에서 각자의 소수자성을 확인한 여성들은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광장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확장되는 느낌”을 얻는다.책은‘어리다’는 이유로 지워진 청소년들(예문여고 시국선언을 이끈 3명)부터 혐오와 차별에 노출돼온 다양한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담아낸다.
‘전국 정신질환자 수면패턴연구협회’와‘아동학대 생존자 모임’깃발을 만들어 들고 나간‘고졸 생산직 노동자’예지씨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 한강진 집회 자유발언 무대에 선다.탄핵 이후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함께하며 장애인들과 함께 들려 나가고 있다.그에게 광장은‘내 편’을 찾는 과정이었다.그렇게‘내 편’을 발견한 청년 여성들이 “연대를 받았으니 나도 연대를 돌려주어야겠다”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과 호텔 해고노동자들을 찾아간다.대학생 혜수씨는 한화오션 앞에서 농성 중인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조합원이 된다.
남태령으로 닭죽을 보낸 유진씨는 12월11일 부산 탄핵 집회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로 자기를 소개하며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호소해 주목받았다.발언 뒤 토론회에 초청받거나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성소수자와 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한다.“그걸 보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길 바랐다.
편집자와의 집담회에서 저자들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 사실은 저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한다.그리고 “윤석열한테 한마디 하고 싶”다며 덧붙인다.
“자기만의 방에서 조용히 글만 쓰던 나를 꺼내줘서 고오맙다.탄핵을 계기로 우리는 급속도로 조직했고,정치에 참여했고,새로운 세계를 열었다.자,이제 더 첨예하게,더 구체적으로 논의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