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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지음
김병화 옮김
김영사 / 912쪽│4만7000원
역사의 '정해진 길'은 환상
다채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
인류학자와 고고학자가 쓴
유럽 중심주의 역사 비판서
우리는 문명이 순서대로 발전했다고 배운다.교과서는 역사가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중세에서 근대와 같이 일정한 방향을 따라 흘러갔다고 가르친다.그 사이 사이에 농업혁명,산업혁명과 같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그럴 때마다 마치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처럼 문명이 단숨에 진보했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인류학자와 고고학자의 합작품이다.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예일대와 런던정경대 등에서 인류학 교수를 지낸 인류학자다.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한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공동 저자 데이비드 웬그로는 농경과 문자의 기원,꽁포 토토고대 예술,초기 국가를 연구한 고고학자다.
책은 두 저자가 던진 “인류의 불평등은 어디서 시작됐나”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두 저자는 이 질문이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결론에 도달한다.이들이 진행한 고고학과 인류학 연구는 모든 인간 사회가 고정된 길을 따라 똑같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환경에 처했던 선조들은 제각각 다채롭고 복잡한 사회 형태를 발전시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존의 단선적인 사회 진화 이론은 인류가 과거로 돌아갈수록 더 미개하고,단순하고,야만적이었다고 본다.두 저자는 이는 편견이라고 말한다.선사시대 수렵과 채집으로 생존한 조상들도 현대인과 같이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지역마다 다양한 사회 체제가 발전했고,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선조들은 주어진 환경과 시대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적 구조를 형성하며 살았다.
책은 농업혁명도 신화라고 주장한다‘혁명’이라는 단어는 한순간에 급격한 변화가 일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지만,현실은 달랐다.책은 증거로 브라질 남비콰라족의 농업 방식을 제시한다.이들은 수렵채집을 하면서도‘취미 농사’의 형식으로 농경 생활을 이어갔다.인간이 어느 순간 단번에 농업사회로 바뀐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연하고 느슨한 형태의 농경을 실천했다는 증거다.
현대 대부분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와 자유·평등의 이념은 흔히 유럽의 계몽주의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책은 이런 이념들이 사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회 체제에서 시작됐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현대 멕시코 틀락스칼라주 일대에 자리했던 연맹국가 틀락스칼라는 유럽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전부터 민주적 사회 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이들 삶의 방식이 스페인 침략자들을 통해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고,이를 계기로 유럽에 민주주의 이념이 꽃피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기존의 사회 진화 이론이 역사적 근거와 들어맞지 않음에도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뭘까.책은 그 원인이 유럽 중심주의에 있다고 보며,유럽의 사상가들이 역사를‘물질적 진보’의 이야기로 포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인간 사회는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룩했다.책은 이 성공 때문에 서구 중심의‘상업적 문명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회 모델로 받아들여졌고,그 과정에서 세계 각지에서 선조들이 형성한 다채로운 사회와 역사가 잊혔다고 지적한다.
두 저자가 통념을 거부함으로써 도달하는 낙관적인 결론이 흥미롭다.책은 단순히 사회 진화 이론을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근거로 현재의 불평등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과거에 다양한 사회 체제와 삶의 방식이 있었던 만큼,현대의 우리도 얼마든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두 저자가 품은 희망의 근거다.
인류 역사에 대한 통념을 과감히 뒤집는 시각이 강점이다.인류가 스스로의 능력과 가능성을 과소평가해 왔고,과거의 다양한 사회 형태에서 배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신선하다.주장을 과감하게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900쪽이 넘는 페이지에 걸쳐 수천 년 인류 역사를 망라하는 고고학적 근거를 탄탄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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