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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 정해룡 다룬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를 다시 읽고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문예중앙,김민환)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건 지난 1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 거북정을 다녀온 뒤다.몰락한 호남의 명문가 가문이지만 나라의 운명과 함께 한 봉강(鳳崗) 정해룡(1913~1969)의 우국(憂國)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평소 책을 많이 보는 것도 아닌데,한번 읽었던 소설을 다시 꺼내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이다.처음 읽은 것도 아니건만 여전히 그 울림이 무겁다.마지막 장을 닫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어떤 슬픔이 한없이 밀려와다.
몇 년 전 처음 읽을 땐 일제 식민지,해방정국,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이승만,박정희 정권 등 격동의 시대에 맞서 굴곡진 삶을 살다 간 정해룡 선생의 삶을 중심으로 살폈다.특히 그의 인간의 풍모에 깊이 빠져들었다.
고난의 세월 함께 겪어 온 뭇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 느껴져
이번에는 처음에는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보인다.굴곡진 세월에 모진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야 했던 가족,일가친척,그 밖에 불의한 시대에 맞서 같이 했던 사람들,특히 거북정과 시간을 함께한 노속들,이름 없이 사라져간 남녘 땅 뭇사람들한테도 눈이 머문다.
저자는 봉강 정해룡만이 아니라,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깊은 공을 들인 것 같다.생각해 보면 한 시대 상처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새겨질 리 없다.그 시대를 함께 겪어야 했던 뭇사람들의 애환과 고통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아프게 다가온다.아마도 그것은 야만의 시대를 부대끼며 쓰러져 간,삶과 죽음이 늘 경계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기도 할 것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 400년 내려온 정씨 집안의 짱짱한 내력
보성 회천 출신 정해룡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을 지낸 그의 13대조 반곡 정경달로부터 시작해,정유재란,병자호란,가깝게는 일제식민지,해방 정국,남북 분단 상황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 나라와 민족이 위태로울 때마다 몸소 나섰던 영성 정씨 집안의 내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그러다 남북이 둘로 나뉜 분단 체제에서 끝내 멸문지화를 겪어야 했던 정씨 가문의 비극에 대해 몇이나 알고 있을까?
소설에서 주인공 정해룡은 결코 어떤 비범한 사람이 아니다.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널리 알려진 인물도 아니고,시대를 호령했던 위인도 아닐 뿐더러,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도 아니다.그런데도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이 가볍지 않다.
작가는 봉강 정해룡에 대해 애써 절제해 표현했다.오직 알 수 있는 것은 그와 시대를 같이 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그리고 그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봉강이라는 인물의 면면이 비로소 드러날 뿐이다.
처절한 실패의 연속.그런데 이렇게 깊게 빠져들게 하는 원천은 무엇?
뚜렷한 족적은커녕 그의 삶은 어떻게 보면 좌절과 처절한 실패의 연속이다.그럼에도 이 소설의 감동과 울림이 작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실패와 좌절뿐인 어느 한 사람의 굴곡진 삶에 이렇게 깊게 빠져들게 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흔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즉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바로 봉강이라는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 그는 선대로부터 나라에 공을 세워 물려받은 토지와 재산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와 명예를 한 손에 모두 가졌다.어떤 사람은 그에 안주하거나 세상이 혼탁해지는 것을 틈타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큰 부와 권력을 취하려 할 수도 있지만,그는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한때 3천석 지기였던 호남 명문가의 종손 봉강 정해룡은 어쩌면 그 스스로 가난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다.그는 일제 식민지 시절 지역민들이 재난 등 어려움에 놓일 때마다 창고 문을 활짝 열었고,1936년 무상교육 기관 '양정원(養正院)'을 설립해 민족교육의 터전을 마련했으며,남몰래 항일독립운동에 자금을 대거나,해방 직후에는 노비해방에 솔선수범했다.그 이후에도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반독재투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놨다.
단순히 가산만 턴 것이 아니었다.그와 그의 동생 정해진,집안 형제들까지 일제의 폭압 아래에서는 항일독립운동에,해방 뒤 남북이 둘로 나눠질 위기에는 분단 체제를 막기 위해,이승만,박정희 정권에는 독재에 맞서 직접 그 한 복판으로 뛰어들었다.그러나 반공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는 분단 체제에서 그것은 적지 않은 상처와 희생을 낳았다.빨치산 활동,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겪는 동안 6촌 이내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만 여덟 명에 이른다.
인간의 품격을 갖춘 사람,양반 중의 '진짜' 양반
무엇보다 각별한 것은 정해룡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고매한 '품격'이다.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조부로부터 일찍이 한학을 공부했지만,그의 세계관은 봉건적 관습을 과감히 뛰어 넘었고,그것을 몸소 실천했다.그 스스로 몸을 낮추는 사람이었다.아무리 아랫사람이라고 하대하지 않았다.길거리에서 누구라도 보면 나이 낮은 사람이라도 먼저 고개 숙여 인사했다.해방 직후에는 세상이 바뀌었다면서 노비 17가구를 해방하면서 일일이 전답까지 따로 떼어서 내보냈다.덕망과 인간의 품격을 갖춘 사람,양반 중의 '진짜' 양반이었다.
그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을 겪어야 했다.끝내 남과 북 둘로 나뉘고,몇 년 뒤 터진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회복할 수 없는 더 깊은 골을 내고 말았다.이승만,박정희 시절에는 직접 혁신 운동에 뛰어 들었지만,돌아온 것은 거듭된 낙선과 모진 시련뿐이었다.
말년에 막내 아들 중학교 납부금도 제때 못내.간첩단 사건에 풍비박산
3천석 지기 가산은 어느새 쌀독에 쌀이 떨어지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납부금을 제때 내지 못해 중학교 정학을 반복하던 막내 아들 길상은 결국 학비 걱정을 덜어도 되는 목포해양고등학교에 진학해,겨우 고등학교를 마쳐야 했다.
미처 뜻을 다 펴지 못한 채 정해룡은 1969년 57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그러나 모진 풍파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봉강 사후 11년이 지난 뒤 터진 일명 '보성간첩단' 사건이 그것이다.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겪은 사람만 서른일곱 명.
그중 장남 정춘상은 사형(1985)을 당하고,토토왕뚜껑야산대 활동 중 일찍이 양쪽 두 눈 시력을 잃은 집안 당숙 정종희는 징역 12년,막내 아들 길상은 징역 7년 형을 받았다.그뿐만이 아니었다.'빨갱이' 집안으로 낙인찍히고,연좌제에 의해 한동안 정씨 집안 자손들은 공직에 발을 딛거나 출셋길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표변하고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시대
부와 명예,권력을 쫓는 것이 더 이상 흠이 되지 않는 시대다.정치인들 또 어떤가?마치 손바닥 뒤집듯 어제 말 다르고 오늘 말 달라도 전혀 거리낄 것 없다.물결치면 물결친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사는 것이 어쩌면 삶의 지혜라고 강변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표변하고,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시대에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이런 비루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람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다시 한번 깊은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레이크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