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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경제의 속살 ㅣ 완벽하게 닮은 한국 면세점과 한국 경제
현대면세점이 2025년 7월까지 동대문점을 폐점하고 무역센터점은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현대면세점은 시내면세점이 2곳밖에 없다.하나를 폐쇄하고 하나를 축소하면 사실상 시내면세점 사업을 접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현대면세점은 2016년 처음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해 2018년 무역센터점,2020년 동대문점을 열었다.면세점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현대백화점그룹이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면세점 업계는 코로나19 이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한때 면세점을 가득 메웠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고 매대를 싹쓸이해 가던 보따리상(다이궁)도 이제 면세점을 찾지 않는다.
현대면세점의 2024년 매출액은 9721억원으로,2022년 2조2571억원에서 반토막이 났다.면세점 열풍의 막차를 탄 현대면세점은 개점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현대백화점은 “중국 시장 및 소비 트렌드 변화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경영 상황 개선과 적자 해소를 위해 경영효율화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0년 전엔 면세점 면허 경쟁 치열
10년 전만 해도 면세점은 대기업들이 권력에 로비해서라도 뛰어들고 싶은 사업이었다.사실 면세점은 이전에는 그리 매력적인 사업이 아니었다.2015년 정부는 시내면세점 3곳을 신설하기로 했는데,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그만큼 그동안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당시 3곳을 신설하기로 했는데 7개 기업이 도전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중소기업에 할당된 1개 특허에는 14개 기업이 뛰어들었다.에이치디시(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가 2곳을 차지했고,인터넷 도박 예방 교육중소기업 면허는 에스엠(SM) 컨소시엄이 취득했다.
기업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같은 해 11월 서울 시내면세점 면허 2개를 추가로 신설했고 신세계와 두산이 취득했다.그다음 해인 2016년 10월에도 3개의 신규 면허가 추가로 주어졌고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특허를 땄다.6곳에 불과하던 시내면세점은 2019년 13곳으로 늘었다.
면세점 특허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정경 유착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면세점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쪽에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신 회장은 2016년 3월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신규 특허를 취득하기 위해 케이(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도 워커힐 면세점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로비했지만 뇌물을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해서 처벌되지 않았다.재벌 회장이 대통령에게 청탁할 정도로 면세점은 면허만 받으면 돈을 버는 사업이었다.
면세점의 쇠락은 2017년 사드 배치 보복으로 시작된 중국의 한한령 때문이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하지만 실제로 면세점이 몰락한 시점은 2017년이 아니라 2020년이었다.면세점 매출액은 2012년 56억달러(약 8조원)에서 2016년 106억달러로 급증했고 2019년 213억달러까지 상승했다.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줄었지만 면세점 매출은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면세점 매출은 2020년 코로나19로 132억달러까지 감소한 뒤 2024년 103억달러로 급감했다.중국 관광객이 오지 않아도 매출이 늘어났던 이유는 면세점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중국 유통상(다이궁)이었기 때문이다.
면세점은 백화점,마트처럼 물건을 사는 유통업처럼 보이지만 산업적 관점에서는 관광업에 가깝다.롯데면세점은 롯데쇼핑이 아니라 호텔롯데의 사업부이고 신라면세점은 신라호텔의 사업부다.관광객이 늘어야 사업이 번창하는 구조다.신세계,한화갤러리아 같은 유통기업이 면세점에 뛰어들게 된 것은 본업의 확장이라기보다는 돈이 될 것 같은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세점이 무역상이 된 것은 중국과 관련이 깊다.면세점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중국 무역상들이 중국에 국외 제품을 납품하는 유통 채널이 됐다.다이궁은 중국 사람에게 국외 상품을 사다 주는 대리구매상이다.대신 사다 주고 수수료를 받는 게 주업이다.중국에는 워낙 가품,불량품이 많기 때문에 국외 제품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많았고,다이궁은 국외 제품 구매를 대행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다이궁 규모가 커지면서 대리구매와 국외 상품 수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중국 정부가 세금 탈루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자 다이궁은 대리구매 업자에서 수입 유통업체 기업으로 대형화됐다.
괴물이 된‘송객수수료’
일반적으로 여행사들이 단체관광객을 면세점 등에 데려오면‘송객수수료’를 받는다.국외 패키지여행을 갈 때 저렴한 여행 상품에는 쇼핑 코스가 많이 포함된다.여행사가 쇼핑 매장으로부터 송객수수료를 받고 여행 상품 가격을 낮추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여행사가 개인 다이궁을 한국 면세점에 데려오는 조건으로 송객수수료를 받았다.개인 다이궁 규모가 커지자 면세점은 개인 다이궁에게 제품 가격을 할인해줬다.기업형 다이궁으로 진화하자 면세점은 현금 리베이트를 지급했다.사드 보복 이후 관광객도,개인 다이궁도 줄어들자 면세점은 소수의 기업형 다이궁에게 의존했다.면세점 수요를 소수의 다이궁이 독점하게 됐고 매우 강력한 협상력을 갖게 됐다.
상황은 이상하게 변질됐다.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국 기업들은 너도나도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고,한국 정부는 그에 맞춰 면허를 대폭 늘렸다.한국 면세점 업계는 대량 구매를 지렛대로 삼아 글로벌 화장품,명품,전자제품 회사들을 대상으로 협상력을 높였다.
다이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그들에게 지급하는 송객수수료도 높아졌다.2014년 5486억원이던 송객수수료는 2018년 두 배가 넘는 1조3181억원을 기록했다.2021년에는 3조8748억원으로 치솟았고,2022년에는 여기서 또 두 배가 뛰어 7조1526억원을 기록했다.송객수수료율은 20%대에서 50%대로 높아졌다.물건을 팔면 절반은 다이궁에게 줘야 한다는 의미다.
외국인 한 명이 면세점에서 사용하는 금액,객단가는 2013년 313달러(약 44만8천원)였다.이 객단가가 2021년 2만2313달러(약 3100만원)로 높아졌다.한국인 1인당 면세 한도는 110만원이다.그런데 외국인은 한 명이 평균 3천만원이 넘는 상품을 구매했다는 게 정상적인가?
한국 면세점이 몰락한 이유는 명확하다.면세점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이다.관광업 육성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좀더 규제를 완화하기도 한다.한국 면세점은 중국 내수시장에 제품을 납품하는 유통업 역할을 하면서 기형적인 성장을 했다.중국 정부가 자국 면세점을 육성하고,글로벌 브랜드가 직접 중국 시장에 진출하자 한국 면세점의 역할이 없어졌다.어쩌면 기형적인 시장 성장의 정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면세점 업계 1위인 호텔롯데의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는 기업형 다이궁에게 면세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통보했다.매출이 급감하더라도 지속 불가능한 상황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김 대표는 2025년 1월 신년사에서 “과거 면세점이 볼륨 중심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수익성 중심 경영 활동을 추진할 시점”이라고 못 박았다.면세점은 중국 경제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고,중국 경제 때문에 망할 지경이다.이제 비정상적인 성장을 끊고 면세점 본연의 성장,관광업과 함께하는 성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 시대는 끝났다
면세점의 몰락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자유무역의 시대는 끝났다.자유무역 시대에 중국은 글로벌 생산 기지로 역할을 맡게 됐고 글로벌 2위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다.한국은 미국의 동맹,중국의 중간재 공급 국가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이제 중국은 서구의 경계 대상이 됐고,수출길이 좁아진 중국은 내수시장을 다른 국가에 양보할 생각이 없다.자국에 필요한 물품은 자국에서 생산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중국에 중간재를 납품하며 성장했던 철강,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요 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중국 경제와 뗄 수 없는 면세점 산업은 3년 전 영광을 되돌릴 수 없다.이런 상황이 면세점 산업만의 문제가 아닌,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같은 상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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