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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존재와 공유하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선물.부모가 되어 알게 된 내어주는 기쁨【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잠자리에서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어린이날 선물로 뭘 받았어?"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아이가 어린이날을 앞두고 받고 싶은 선물을 고르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 때였다.아이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내가 어릴 적에는 어떤 선물을 받았더라.서운할 정도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난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이날에 선물 받은 기억이 없네.엄마 어릴 적에는 엄마랑 큰이모,챔피언 토토작은이모,외삼촌까지,집에 아이가 넷이나 있었잖아.누구 한 명에게만 줄 수 없고 선물을 주려면 네 명 모두를 챙겨야 하니까.외할머니가 어린이날마다 아이들 선물을 챙기기는 어려웠을 거야."
내 말에 아이는 잠자코 수긍했고 이런 질문을 덧붙였다.
"그럼 어디에 놀러 갔어?여행 갔어?"
"응,외할머니 집이 어린이 대공원 근처잖아.엄마는 어릴 때 어린이 대공원을 자주 갔어.옛날엔 야외 수영장이 있어서 여름엔 수영장으로 쓰이고 겨울엔 스케이트장이 되었거든.거길 많이 갔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의 서랍장을 열어보는 사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 해 서운했던 기억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그 서랍 속에는 엄마 아빠와 같이 봄이면 꽃구경하러,메가밀리언 온라인 구매여름에는 수영하러,겨울엔 스케이트 타러 다녔던 기억이 빼곡했다.선물을 받고 기뻐했던 기억은 드물지만,부모님과 함께라서 아쉬움도 없었다.내 곁에 있어 줘서 충분한 시간,그것이 나의 엄마 아빠가 내게 준 값진 선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네 남매가 자라는 집이라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다는 걸 일찍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사춘기 전까지는 가족들 속에서 즐거운 시간으로 나의 유년은 풍요로웠다.아이가 건넨 뜻밖의 질문이 중요한 걸 알려주었다.우리에게 필요한 건 물질보다는 시간,누군가 내게 내어준 시간의 밀도라는 걸.
중요한 건 선물이 아닌,함께 보낸 시간의 밀도
3학년이 된 후 딸 아이는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선언했다.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엔 독립 수면에 대한 바람이 간절했는데 자발적으로 혼자 자겠다고 하자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앞섰다.몇 번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둘러대며 아이의 결심을 돌려세웠다.그러던 어느 날 결국 아이는 혼자 잠을 잤고 개운한 얼굴로 아침을 맞았다.
그 뒤로 애매모호한 논리로 아이의 잠자리를 안방으로 되돌려놓은 건 나였다.아이와 살결을 비비다 잠들고 아침에 눈을 떠 아이 몸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지금의 내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기쁨이기 때문이다.잠결을 휘감은 아이의 몸을 안고 있을 때면 귀한 것을 품은 기분이다.생명을 지녀 따스한 것,곱고 보드랍고 아름다운 것을.하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를 고요히 안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이 시간도 한정적이다.그러니 가능할 때 열렬히 누리고 싶다.
잠자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은 아이는 주말에도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얼굴 보기가 힘들 지경이다.드문드문 아무런 약속이 없는 주말이나 한가해진 저녁 시간이면,아이와 공기놀이나 보드게임을 하고,놀이터에 나가 줄넘기를 하거나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친다.그 잠깐의 시간엔 불필요한 걱정과 생활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접어 둘 수 있다.
그럴 때면 아이라는 안내자를 따라 놀이에 몰입해 아이처럼 순수한 기쁨에 닿는다.이 또한 아이가 크면 사라질 시간이라 귀하다.몇 년 전만 해도 아이에게 나의 시간을 온통 내어주기만 해서 힘들었는데,어느새 처지가 바뀌어 아이가 내게 시간을 내어주길 바라는 쪽이 되었다.
삶에서 귀한 것은 성취나 물질도,눈에 보이는 선물도 아닐 것이다.어떠한 생각의 방해 없이 순전한 기쁨에 잠기는 순간들,사랑하는 존재와 공유한 완벽에 가까운 찰나야말로 삶이 건네는 최상의 선물 아닐까.내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순간들'이라는 선물을,이제는 아이에게서 받는다.나 또한 아이에게 '순간들'이라는 선물을 내어주고 있길 바라면서.
나를 내어주는 일이 기쁨이 되는 순간
부모로 연차가 늘어갈수록 내어주는 일의 기쁨을 알아간다.희생이 내 몫의 삶과 시간,에너지를 잃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희생으로만 얻을 수 있는 대체 불가한 기쁨이 있음을 깨닫는다.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 나의 기쁨으로 돌아온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도 다다랐다.힘들게 무언가를 해도 그 결과로 아이가 기뻐하면 수고는 말끔히 잊힌다.아이가 무탈해야 엄마인 나도 괜찮을 수 있다.그런 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아이가 초콜릿 피낭시에가 먹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 일이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피낭시에를 구웠다.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짜잔-하고 아이 앞에 내어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상상하다 어느새 몸을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프랑스식 구움과자인 피낭시에(financier)는 프랑스어로 '금융'을 의미하는데 '금괴'를 만드는 직사각형 금형 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어디서든 금은 귀하게 여겨졌으니 과자에도 '금괴'의 모양을 넣어 고급스러운 의미를 부여했나 보다.파리 증권거래소 인근에서는 새해에 딜러들 사이에서 피낭시에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니,이더 리움 기반 rwa 코인금처럼 귀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거기엔 담겼을 것이다.
피낭시에는 구움과자의 일종인 마들렌과 유사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마들렌은 반죽에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부풀리기 때문에 식감이 가볍지만 피낭시에는 아몬드 파우더가 주가 되고 달걀흰자만 사용해 묵직하고 쫀쫀한 식감을 지닌다.약불에 녹인 버터를 사용하는 마들렌과 달리 피낭시에에는 버터를 갈색이 나도록 높은 온도로 태워 넣는데 그래서 버터의 풍미도 더 진하다.
피낭시에가 완성되자 집안에 농밀한 버터 향이 떠다녔다.아이를 위해 구운 피낭시에지만 나도 하나 맛보려 차를 우렸다.아끼는 잔을 꺼내고 고운 접시에 피낭시에를 담고,책을 펼쳤다.아이 때문에 짬을 내었는데 아이 덕분에 내게도 달콤한 휴식 시간이 돌아왔다.아이가 피낭시에를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을 걸 생각하니 날개라도 달린 듯 어깨가 가벼워졌다.문득 어린 내가 활짝 웃었을 때 나의 젊었던 부모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궁금했다.
당신들도 어린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면서 기쁘기도 했을 거라고 믿어도 될까?내가 풍요로웠다고 기억하는 나의 유년이 내게만이 아니라 젊었던 엄마 아빠에게도 풍요로운 한 시절이었다고 짐작해도 될까?
무언가를 희생하는 당신의 오늘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일지 모른다.무거운 당신의 어깨에 사랑하는 존재의 이름으로 때로는 날개가 달리기도 하는 시간.유한해서 더 귀한 오늘,농밀한 순간이라는 선물을 당신께 드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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