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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두 얼굴의 베트남-뜻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우리에게‘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최근 베트남에서‘먹을거리’의 벌크업이 문제가 됐습니다.무슨 소리냐고요?젊은 층 사이에 유행했던‘벌크업’즉,몸을 키우는 유행(?)이 베트남 숙주에도 나타난 겁니다.숙주는 베트남에서 흔히 먹는 식재료,이 숙주를 벌크업 시키기 위해 약품을 사용한 생산업자들이 잇달아 적발됐습니다.생산업자들은 “숙주를 약품에 담가 놓으면 잔뿌리가 적어지고,숙주 몸통이 통통해진다고 해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잔털 없이 굵은 몸집으로 키우기 위해 약품을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약품으로 키운 숙주 나물을 들어보이는 베트남 공안./베트남 공안
베트남에선 비상이 걸렸습니다.숙주를 데쳐 나물로 먹거나 볶아 먹는 우리나라와 달리 베트남에서는 생 숙주를 쌀국수에 넣어 먹거든요.작년부터 잇달아 적발된‘벌크업 숙주’에 쌀국수 먹기 겁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숙주뿐만이 아닙니다.약품으로 당도를 높인 두리안과 맹탕인 기능성 분유,무허가로 만들어 이름만 바꾼 식용유와 조미료,관절약까지 적발됐습니다.베트남 먹을거리에 비상이 걸린 겁니다.


약품에 절여진 숙주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작년 말에는 2020년부터 4년간 약품에 담근 숙주 2900톤을 팔아온 닥락성과 꽝응아이 지역의 업장 6곳이 적발됐습니다.이들이 숙주를 키우기 위해 사용한 약물은 6-벤질아미노퓨린(6-BAP 또는 벤질아데닌).식물 생장과 세포 분열을 촉진하는 사이토키닌 계열의 합성 호르몬으로 원예나 조직 배양에는 쓸 수 있지만 장기 복용할 경우 폐섬유증이나 선천성 기형,저체중 출산 같은 부작용이 있어 식품 제조에 사용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이들은 이 약품으로 키운 숙주를 매일 8~10톤씩 인근 지역에 판매해왔다고 진술했습니다.

유해물질로 키운 숙주를 적발해내는 베트남 공안./베트남 공안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들 중 한 업체가 숙주 포장지에‘화학물질 없음‘촉진제 미사용‘보존제 무첨가’같은 문구를 새겨 팔았다는 것입니다.유해 물질이 없다고 안심하며 산 고객을 속인 겁니다.이 문구를 보고 값을 더 비싸게 치른 손님이 있을 수도 있고요.

실제로 작년,닥락성에서는 숙주를 먹은 35세 여성이 구토와 호흡 곤란 증세로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가 이틀 뒤 폐섬유화 증세로 사망했습니다.경찰은 이 여성이 먹은 숙주에서 6-벤질아미노퓨린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은 응에안성 지역에서 숙주를 생산해 왔습니다.이들은 작년부터 3500톤의 숙주를 약품을 사용해 키워 왔다고 했습니다.작년에 적발된 업체들보다 더 많은 규모이죠.

꼬리꼬리한 냄새와 달리 부드럽고 달콤한 맛으로 인기가 많은 두리안도 불법 약물을 복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베트남 중부 닥락성 경찰이 태국에서 두리안 숙성·보존 약품을 밀수해 유통한 남성 2명을 붙잡은 겁니다.이들은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97억동 규모의 두리안 숙성 물질을 밀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두리안을 빠르게 숙성시켜 부드럽고 달콤하게 만드는 이 약품은 암을 유발할 위험이 높아 사용이 금지된 물질입니다.

두리안
한동안 베트남 두리안을 싹쓸이해가며 가격을 올리던 중국과 캄보디아 등이 베트남 두리안 수입을 제한하면서 베트남 두리안 가격은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1키로에 3만동 수준으로,남부 지역인 메콩 델타 지역에서는 아기 머리보다 큰 두리안을 5만~7만5000동에도 살 수 있지요.하지만 이런 두리안들은 채 익기 전에 낙과했거나 수출 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과일일 확률이 큽니다.싸다고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 나지요.


숙주와 두리안뿐이 아닙니다.최근 베트남에서는 당뇨병 환자와 신장 질환자,미숙아 등을 대상으로 비싸게 판매했던‘기능성 분유’가 사실은 가짜였다는 게 밝혀져 또다시 파문이 일었습니다.동충하초,무료게임 로블록스 바로가기연꽃씨,제비집과 호두 등이 들어간 고급 분유라며 유명인까지 동원해 팔았던 분유에 이런 기능성 원료가 들어있지 않았다는 거죠.4년간 5000억동(약 270억원)어치나 팔아치웠다고 합니다.

‘한 알로 채소 한 접시를 섭취할 수 있다’며 판매했던 야채 사탕도 가짜였습니다.야채 분말 함량이 터무니없이 적고,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에서 받았다는 인증도 가짜였지요.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뒤‘해외에서 직접 들여온 관절약’이라며 약을 판매해 온 일당도 붙잡혔습니다.작년 6월에는 한국 업체의 우황청심원과 삼성 장수환을 그대로 베껴 만든 대규모 공장도 적발됐지요.제품 사용 설명서와 자동 포장 기계까지 조직적으로 위조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캔디나 젤리 한 알로 한접시 분량의 야채를 섭취할 수 있다고 홍보하던 제품./아시아 라이프
이쯤 되니 좀 화가 납니다.아픈 아이나 부모의 건강을 기원하며 산 제품이 사실은 아무 효능 없는 제품이었단 말일 테니까요.아이나 임산부,고령자 등에게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먹여 도리어 건강을 악화시킨 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짜 비즈니스’가 성업하는 베트남을 보니 떠오르는 나라가 있습니다.바로,중국입니다.베트남 내에서도 얼마 하지 않는 숙주부터 값비싼 우황청심환 같은 제품까지 굳이 불법 유통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비슷해 보입니다.계란 한 알까지 가짜로 만들던 중국이 불과 십수 년 전 이야기니까요.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이런 가짜 비즈니스의 유혹이 강한가 봅니다.도심 지역이 먼저 발전하면서 이들의 소비는 급격히 늘어나고,아직 발전이 덜 이뤄진 시골 지역은 저렴한 인건비와 재료비를 이용해 물건을 만들어 팝니다.값싼 인건비와 재료를 이용해‘가짜 사치재’를 만들면 그 수익은 더 커지니‘가짜 비즈니스’가 성업하는 거지요.물론,파워볼예측사치재가 아닌 제품도 가짜를 만들어 팝니다.중국에서도 가짜 마늘과 호두가 등장했었지요.

중국의 가짜 계란과 진짜 계란을 비교한 모습.가짜 계란은 깨는 즉시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는 반면,진짜는 그대로 분리돼 있다./조선DB
아직 식품 위생 등에 대한 경각심이 크지 않은 데다 상표권 등에 대한 인식도 미비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겁니다.아직 이를 적발해내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요.그런데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말입니다.다들 먹고살자고 힘든 세상 살고 있는 건데,굳이 먹을거에 장난을 쳐야 할까요?

다행히 베트남 정부가 최근 가짜 식품 적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응우옌 도안 티 국가 부주석이 가짜 분유 사건을 두고 “대체 어느 부처가 관리를 해야 하느냐”고 비판한 만큼 불법·가짜 식품에 대한 시스템 정비도 이뤄질 거라 예상합니다.먹을거리 가득한 베트남 식탁에서 불안이 빠르게 거둬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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