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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신간,인터뷰에 담지 않은 후일담,각종 취재기 등 이모저모.+α를 곁들여 봅니다.
시집‘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를 낸 시인 박준(42)을 최근 만났습니다.7년 만에 낸 시집이라 반가운 마음이 컸습니다.앞선 두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요.
박준 시인과는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에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요.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어요.2008년 등단한‘원조 1세대 문단의 아이돌’(시인은 H.O.T라고 농담하더군요)이니 팬이 많을 테고.여남은 이야기들이 궁금한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인터뷰를 문답식으로 정리해 구독자 분들과 나눕니다.
–요즘은 뭘 하고 지내시나요?
“‘요즘’이라고 하는 시간을 출간 이후로 잡으면,출간 직전까지 퇴고를 많이 하니까 시 쓰거나 글 쓰는 것을 다 늦춰놨어요.그런데 이제 출간을 했으니까 시를 써야 하는데 너무너무 억울한 거예요.커다란 마감을 했는데,또 써야 한다니(웃음).그래도 시인을 겉돌지 않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백지(白紙)구나,이런 생각을 했어요.다시 쓰고 새로 써야 하는 것을 분노하고 원망하면서도,그걸 또 반가워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백지’라고 하니까 궁금하네요.종이에 시를 쓰세요?
“적당히 제본된 노트에다가 시를 쓸 때가 있었고요.어느 순간부터는 기록하기 가장 편한 방식으로 메모를 해놓고,워드 프로세서 같은 프로그램을 써요.가장 편한 방식의 메모는 여전히 펜과 손바닥.그런데 그걸 시 한 편으로 만드는 과정에선 당연히 PC나 이런 걸 쓰죠.”
–이번 시집 얘기를 해보겠습니다.왜 이렇게 미안하실까.미안함의 비중이 크다고 느꼈어요.
“그 미안함이라는 게 내가 저지른 어떤 사건일 수도 있지만,삶의 많은 감정 안에 조금씩 들어있는 것 같아요.관계 속에서 늘 뭉근하게 가지고 있는 감정인 것 같고요.그런데 다만 그것이 극대화된 것은 지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를 비롯해서 제가 상주가 돼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직계 가족뿐 아니라 친한 친구,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상하게‘왜 이 사람은 나를 아껴주지’하는‘우리 식구’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세상을 떠났어요.인간이 커다란 사건을 겪으면 무릎이 꺾이는데,어떤 힘으로 무릎이 꺾이는지 잘 지켜보니,과거를 향해 있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후회가 인간의 무릎을 꺾는 것 같아요.그래서 미안한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죽음을 환기하는 시들이 많았다고 느꼈거든요.시집의 제목이기도 한‘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곱씹으며 그렇게 들이닥치는 것은 죽음인가,하는 물음을 가졌어요.
“죽음,상실,이별인데 장례처럼 생물학적인 죽음도 있고요.돌아가지 못한 시간으로부터의 죽음도 있고요.관계 속에서의 죽음도 있고.그런데 그것들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제가 시인이라고 해서 그것에 유난히 집중하는 것도 아니었는데,특정 시기에 너무 많은….”
–시‘손금’에‘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 앞에서는 그냥 양손을 펴 보일 거야’라는 구절이 있잖아요.양손을 펴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비뚤어질 거야,라는 것도 있고요.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도 있어요.그리고 직면할 거야,라는 의지도 있습니다.두 손 두 발 다 들고 지켜만 볼 거야.그런데 이것도 능동적인 태도인데,그래서 외면하지 않을 거야,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애풍의 시가 없어졌어요.
“맞아요.사실 독자들이 좋아하는 건 그런 시들인데….이번 시집이 각박한 것은 사랑기가 좀 빠졌어요.”
–왜 싹 덜어냈나요?
“당연히 지금도 사람을 사랑하고 사는데,쓰는 사람의 고통 같은 것인데요.그동안은 현실보다 시가 더 아름답기를 바랐어요.현실보다 시가 더 온전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채롭게 이미지도 쓰고,시에 서사를 넣을 때도 현실을 상회하는 아름다움을 쓰려고 했는데요.그러니까 꼭 그것이 실제로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연시풍으로 그 장면이 풀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그런데 너무 절박하면 나를 돌볼 수밖에 없는데요.절박한 상황에서 상대를 돌보거나 그런 게 좀 어렵더라고요.나를 돌보는 데 급급하면 시선이 발끝을 벗어나지 못하죠.”
–그래도 괜찮은 거죠?
“내가 시인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는데요.그러면 자꾸 이렇게 상처를 들춰볼 일도 없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런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도구도 시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 제 내부에서,제 마음속에서 시가 절실해지는….시로 말하기에 굉장히 부적절한 소재이지만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도 시다.그 통로를 통과하기 위해서 어떤 불필요한 것들을 쫙 뺀,담백한 시죠.아까 말씀드렸지만 이번에는 스스로를 돌보고,카지노 화이트 클라우드 프로모션이 통로를 통과하는 데 가장 큰 목표가 맞춰져 있어서 덜 말하고,더 말하고 싶은 걸 숨겨두고,그러면서도 여전히 대중적으로,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그런 일들을 동시에 하려고 했습니다.”
–많이 버리려고 애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저는‘마음을 미음처럼’이라는 시가 기억에 남는데‘진득하게 남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묽어져야 합니다’여기에 밑줄을 치고‘이 시집의 스탠스’라고 제가 메모를 해놨네요.
“오랫동안 이것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했어요‘마음을 미음처럼’혹은‘미음.몸져눕고 크게 앓고 나면 가장 순한 것부터 먹기 시작하잖아요.죽도 아닌 미음 같은 것을 먹기 시작하듯.풍파를 겪을수록 가장 맑고 묽은 것부터 시작하는데,제 개인적인 사건을 통과하는 태도도 그렇고요.비시(非詩)적이거나 반시(反詩)적인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지금 현실을 봐도‘마라맛’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흰죽이 필요하다.그런 의미도 같이 담고 싶었습니다.”
–아.사담이지만 회사 근처에 자주 가던 죽집이 있었는데요.그곳을 좋아했던 이유가 사는 게 지긋지긋하거나 너무 지독한 술자리가 연이어 있다거나 했을 때 혼자 거기서 죽 먹는 걸 좋아했어요.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그 시간이 좋겠네요.고요한 시간.물론 죽집에 있는 사람들 절반은 아픈 사람들인데,속이 쓰리거나.”
–마음이 아프거나(웃음).그런데 없어졌어요.폐업한다고 한동안 종이를 붙여 놓고 문을 닫았어요.
“배웅할 시간을 주는 없어짐이었네요.그런 건 좋은 것 같아요.그동안 감사했습니다,하고 심리적 여유를 주는 거.”
–과거 시집에선 요리하는 장면이 꽤 많았는데,이번 시집에선 그나마 미음 아니면 밥 할 때 쌀 씻는 거.아니면 장례식장 상차림뿐이더라고요.
“요리도 살만할 때 하는 거고요.살려고 하는 건 밥이고요.두 번째 시집 발문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돌봄으로서의 요리’이런 이야기를 했을 텐데,그것을 의식하진 않았지만,(이번엔) 살만할 때 하는 요리가 아니라 살려고 하는 밥이죠.”
–아무래도 요리를 하긴 어려웠던 시기였나요.
“극도의 감정에 휩싸였을 때 요리하기는 힘들죠.혹은 좋은 생각을 떠올리기도 힘들고,시인으로서는 시를 쓰기도 힘들고.다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내가 다시 안녕을 찾기 위한 몸부림.”
–‘공터’라는 시에서‘지우며 헐며 사는 일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믿음’이‘깨졌다’고 하거든요.막상 버리고 덜어내려고 했는데,그게 맞는가 고민하는 시라고도 읽었는데요.
“이것도 약간 비뚤어지는 건데.이렇게 살면 뭐해.스스로의 삶의 태도에 대한 저주 같은 것인데요.”
–종종 비뚤어지시는군요,이 시집에서는.
“마음을 단념하거나 굳게 먹는 상태예요.혹은 상처를 대하는 현명함.그런데 또 비뚤어지면 얼마나 비뚤어지겠습니까.다시 백지 앞으로 와야 하는데….내가 믿었던 것들이 우르르 무너질 때,무너지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다시 무너진 것들을 쌓아 올릴 수도 있지만,그냥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같아요.내가 믿었던 것들이 정말 맞았나?인간에 대한 태도,삶의 방식도 그럴 거고요.오히려 무엇을 믿는 것이 가장 편한 방식이었던 것이 아닐까?그러면 와르르 무너졌을 때 이걸 다시 쌓아 올릴지,주워다 버릴지,내가 떠날지 모르겠지만 어떤 맹목 같은 것에선 벗어나자.”
–‘섬어(譫語)’라는 시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사실 이 말을 잘 몰랐어요.그래서 국어사전에 찾아봤더니‘앓는 사람이 정신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그리고‘잠을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헛소리.전자의 의미라고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내가 누군가에게 한 말을 그가 가져간다고 생각하면,그 말들은 내가 한 말이지만 이제 나와 가장 멀어진 말이라는 표면적인 의미도 있고요.우리가 아플 때‘섬망’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헛소리하거나 잠꼬대하거나 이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시적인 상태,예술적인 상태인데요.내가 정한 나의 삶의 방식 혹은 사회가 정한 어떤 양식 같은 것에서 일순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게 하나의 해방처럼,돌파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또 별안간 서늘해지는 일상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그리고 어감이 예쁘잖아요.어감이 아름다우니까,섬에 혼자 사는 말[言] 같기도 하고,유배 보낸 말이기도 하고요.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말.관계 속에서 가장 친밀해지고 가까워지는,그리고 어느 순간 섬뜩해지고 멀어지는 말.이렇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저는 최근에 가장 멀어진 말이 뭐냐면‘맥주 한 병 더 주세요.금주,사실상 절주를 하고 있는데요.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면 좋아하는 것을 끊어야죠.”
–제일 잘 팔린 책이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인데,박준에게 시와 산문의 차이는?
“‘운다고…’가 26만부 팔려서 가장 많이 팔렸는데요.산문은 진실되게 쓰자.이 정도의 목표만 갖고 있어서 시와는 작동 방식이 아예 달라요.시를 쓸 때의 질료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죠.시는 진짜 잘 쓰고 싶거든요.산문은 제 내부에서 시적인 변형을 거치지 않은,시적 도약을 하지 않은 형태입니다.제 삶에 영향을 주는 건 시인(이라는 정체성)이고요.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글로 쓰는 좋은 에세이스트들도 많지만,나는 내가 시인이라서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경계가 불분명해 보일 수 있지만,경계를 구렁이 담 넘듯 그러면 안 되거든요.시인의 역할을 똑바로 해야 시인으로 사는 사람의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거지,그냥 비슷하다고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첫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64쇄를 찍고 22만부가 팔렸다(올해 4월 중순 기준).시집으로는 이례적인 판매량을 기록해 그를‘베스트셀러 시인’반열에 올렸다.두 번째 시집도 10만부 이상 팔렸다.그러나 박준은 “팔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면 한 글자도 못 쓸 것”이라고 했다.
“첫 시집이 워낙 많이 팔렸고 두 번째 시집도 상상하지 못한 부수인데 내면 낼수록 판매는 아무래도 덜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죠.제가 출판인(박준은 2014년부터 창비 편집자로 근무했고,2021년부터는 창비 편집위원으로 있다)이니까 당연히 예측 가능한 사실인데,각고의 노력을 하면 그보다 좋은 시를 쓸 수는 있는 거잖아요.그런 방식으로 욕망이 튀어 나갑니다.어제의 나보다 더 잘 써야지 뭐 이런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내다보나요?또 어떤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너무 지나치게 담백하고,지나치게 아린 내용들로 가득 채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애도하고 보내고 있으니 다음 시집은 꽃구경 가듯이 마냥 좋고 아름다운 것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그런 삶이 펼쳐지길 바란다는 염원도 있고요.내가 골칫거리를 소화 못 시키고 게워내는 혹은 앓고 있는 시가 아니라 누가 봐도 호시절이네,라고 하는 시.그런데 그건 저 혼자 그렇게 산다고 가능한 것은 아니에요.사회 현실도 그렇고요.제가 어딘가에 너무 깊이 분노하거나 슬퍼하면 그런 식으로 못 쓸 거잖아요.최대한 단장을 많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쓰는 게 다음 시집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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