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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별세
2003년 6월 5일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장.로런스 서머스 총장이 경영대학원을 호명하자 MBA 과정 졸업생들이 일제히 달러화(貨)를 높이 들고 흔들었다.그 순간 참석자들 사이에서 놀랍다는 반응이 웃음과 함께 나왔다.이어서 케네디 행정대학원(HKS)을 부르자,졸업생들이 각각 지구 모형의 파란색 비닐 공을 번쩍 들어 보였다.한 지구,한 세계에서 공익을 추구하며 조화롭게 살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지폐와 지구 모형이 잇달아 하늘을 덮은 장면은 그해 하버드대 졸업식의 상징적 광경이 됐다.
이날 HKS 졸업생들이 지구 모형을 들어 보이도록 기획한 이는 조셉 나이 당시 학장이었다.그는 HKS 학생들 앞에 서서 “우리 학생들이 달러 대신에 지구 모형을 흔든 것이 자랑스럽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제사회에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는‘소프트 파워’개념을 제시한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6일 88세로 별세했다.그는 프린스턴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 로즈(Rhodes) 장학생으로 유학했다.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64년 하버드대 교수가 된 후,무료 보너스로 내기학문과 공직을 병행했다.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방부의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그는 무질서와 약육강식이 판치는 국제사회에 군사력 위주 하드 파워와는 구별되는 소프트 파워를 1980년대에 제시했다.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문화·가치·외교 등을 통해 타국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소프트 파워는 2000년대‘네오콘’이 장악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 정책으로 전 세계에 반미(反美) 감정이 확산될 때,군사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가치와 사회문화적 요소를 활용해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소프트 파워론이 확산됐다.
그렇다고 그가 군사력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나이는 국가의 힘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결합한 스마트 파워(smart power)가 작동할 때 최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스마트 파워’개념은 오바마 정부의 외교 정책으로 채택돼 미국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그는 올 초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약화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접근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훼손하고 중국과 같은 경쟁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1990년대 중국의 부상을 내다보고 지난달 사망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24년에 걸쳐‘아미티지-나이 보고서(Armitage-Nye Reports)’로 알려진 정책 제안서를 냈다.이 보고서는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총 6차례 발간돼 미일 동맹은 물론 한미일 3국 협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특히 한미일 3국의 정보 및 방위 협력을 중점적으로 다룬 5차 보고서는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 회의의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일본만큼 한국을 중시한 지한파였는데,요슬롯 만화HKS에 유학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토토 가상계좌 신고박진 전 외교부 장관 등 한국인들과 자주 교류하며 한국 사회에 큰 관심을 보였다.최형두 국회의원(국민의힘)은 “2001년 HKS 신입생 환영회에서 나이 학장을 처음 만났는데,그가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탈세 수사를 언급하며‘언론 탄압 아니냐‘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는 한일 관계 개선이 동북아 역내 소프트 파워를 강화한다며 양국 학생의 친선 우애를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나이는 최근엔‘K컬처’가 갖는 소프트 파워를 주목했다.2021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회의에서 “한국은 막대한 소프트 파워를 가졌다”며 “올바른 투자와 노력을 통해 앞으로 더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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