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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감독(사진)은 1월19일 서울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진보 성향 창작자인 그는 취재 목적이라고 항변했으나 수사기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윤석 감독(43)은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 경내에 들어갔다.극우 세력이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항의해 법원을 무단 점거한 사건,1·19 서부지법 폭동 현장이었다.경찰은 현장에서 정 감독을 체포했다.검찰은 2월10일 그를 포함한 63명을 기소했다.수사기관이 보는 정윤석 감독은 폭도다.정 감독이 그날 모여든 극우 집회 참가자들과 뜻을 같이하며,그들과 힘을 합쳐 법원 안에 들어갔다고 여긴다.정 감독 주장은 완전히 다르다.다큐멘터리 감독인 그는 시위대를 촬영할 목적으로 그곳에 갔을 뿐이라고 말한다.
검찰 공소장에서 정 감독을 포함한 49명은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묶여 있다.공소장에 적힌 정 감독의 범죄 사실은 이렇다.“2025년 1월19일 오전 3시경 윤석열 구속 반대 취지의 집회·시위를 진행하던 중,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항의한다는 명목으로,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고,경찰에 의해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고 있던 법원 후문을 강제로 개방하여 무단으로 법원 경내로 들어갔다.(중략) 정윤석은 법원 경내로 들어간 다음 본관 건물 뒤쪽까지 진입하였다.” 특수건조물침입은‘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불법으로 건조물에 침입하는 행위이다(형법 제320조).공소장에 따르면 정 감독은,윤석열 구속에 항의해 시위하다가 법원을 점거한 극우 세력의 일원이다.
‘정윤석은 누구인가’라는 논점은 중요하다.사실관계를 따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2025년 1월19일 이전 10년간 행보는‘정윤석은 왜 그곳에 있었나’를 설명하는 주요 단서다.정 감독과 마찬가지로 “폭동에 가담하지 않았고 촬영만 했다”라고 항변하는 극우 유튜버들이 있다.그들과 비교해 정윤석 감독의 이력은‘카메라를 들었을 뿐인 폭도’가 얻기 어려운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정윤석 감독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그러나 독립영화계에서는 뚜렷하고 일관된 족적을 남긴 감독으로 이름이 높다.용산 참사,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 등 한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기록해왔다.2014년 개봉한 그의 첫 장편영화는 〈논픽션 다이어리〉다.지존파 사건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함께 다뤘다.그해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정 감독은 “(영화에서 다룬) 세 사건이 199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몰락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이 영화는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다.
12월4일 새벽 국회에 뛰어간 사람
2017년 내놓은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2000년대 한국 청년 세대가 소재다.2인조 인디 밴드 밤섬해적단을 찍으며,레드 콤플렉스를 다뤘다.이 밴드 프로듀서였던 박정근씨의 국가보안법 재판이 등장한다.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작품에 별 4개를 주고,토토 회원가입 처벌“2017년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았다.최대한 보수적으로 말해 정윤석 감독은 신원이 확실한 인물이며 이제까지 공개된 그의 창작 활동은 극우 세력의 주장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굳이 더 간단하고 거칠게 표현하자면,그는‘좌파’에 속한다.
정 감독은 12·3 계엄 직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그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내 작품은 모두 한국 사회의 중요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왔다”라고 말했다.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이 사태를 자신이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 그는 정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고 했다.계엄 선포 직후‘이게 무슨 일인가’싶었다.“영화로 비유하자면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급히 뉴스를 찾아 읽고 시청했다‘정치가 이렇게 망가져 있었나’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12월4일 새벽 곧바로 국회에 가서 계엄군이 깨트린 국회의사당 유리창부터 찍었다.이후 국회의장실이나 방송사들과 협업해,국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촬영을 이어나갔다.정 감독은 “국회의사당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회하는 모습을 유튜브 라이브로 보았다.그 사람들이 너무 부럽고,그곳을 촬영 못하는 게 너무 슬펐다”라고 말했다.탄핵소추안 1차 표결이 부결되는 등 국회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돌아가 현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정윤석 감독은 한남동 관저 쪽으로 이동해 촬영을 이어나갔다.윤석열이 경호처의 비호를 받으며 체포에 불응하는 상황,관저 앞에서의 극우 세력 집회 모습을 주로 찍었다.1월 초 등장한‘Stop the steal(스톱 더 스틸,도둑질을 멈추라)’구호를 보며 폭력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을 했다‘스톱 더 스틸’은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을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먼저 쓴 구호다.
그리고 1월19일,정윤석 감독이 서부지법 폭동 현장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43분이다.밀린 촬영 소스를 확인하고 있는데 뉴스 속보가 뜨고 극우 유튜브에서 폭동을 중계하기 시작했다.새벽 3시쯤이었다(이 대목에서 정 감독이‘오전 3시경 윤석열 구속 반대 취지의 집회·시위를 진행’했다는 검찰 공소장은 사실과 다르다.그는 출발·도착 시각이 찍힌 택시 영수증을 갖고 있다).정 감독 말에 따르면,당시 그는 법원 주변 폭력 상황과 법원 내 대치 상황을 살피고 주변을 보았다.몇몇 언론매체 기자들을 만나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5시20분쯤 카메라를 들고 법원 후문 경내로 들어갔다.들어간 지 3분여 만에 주변 시위대와 함께 경찰에 붙들렸고 20분 만에 체포가 완료됐다.
체포 후 정 감독은 자신이 금방 훈방될 줄 알았다.그는 체포될 때부터 경찰에 “나는 취재 중”이라고 말했다.담당 경찰관에게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프로필,윤석열 탄핵 찬성 영화인 연대에 참여한 기사를 내밀었다.방송사 특집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기록도 보여주었다.정 감독은 이때까지 경찰관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1월19일 영등포경찰서에서 작성한‘피의자 신문조서’에 따르면,경찰은 정윤석 감독에게 왜 법원 안으로 들어갔는지 물었다.정 감독은 “시위대들이 위법적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저는 그런 것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시위대들의 위법적 행동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들어갔던 것입니다”라고 답했다.경찰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피의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한 행동을 보이기 위해 법원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고,그런 시위대의 불법적 행동을 카메라로 촬영하기 위해 들어갔다는 말인가요?” 정 감독은 제 의도를 전달했고,경찰도 이를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다.
조서를 쓰고 정윤석 감독은 유치장에 입감됐다.1시간30분쯤 지난 뒤 강력팀 형사들이 찾아와‘촬영 소스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정윤석 감독은 이미 그날 촬영한 영상을 제출하기로 했기에(이 대목 역시 피의자 신문조서에 남아 있다) 순순히 메모리카드를 챙겨 형사들을 따라갔다.정 감독은 “그날 촬영물이 오히려 폭도가 아니라 취재원이라는 신분을 증명하는 자료이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같은 시각,같은 현장을 찍었어도 극우 유튜버의 영상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폭도들이 사람을 때리거나 기물을 부술 때 렌즈를 가리거나 화면을 돌린 다른 이들과 달리,정 감독은 영상에 그들의 죄상 전반을 그대로 담았다고 했다.경찰관들은 영상을 한동안 살피고 캡처하고,마트 토토사이트정윤석 감독과 문답을 주고받았다.이때도 분위기는 호의적이었다고 정 감독은 주장했다.
“경찰이 진술 묵살하고 혐의 바꿨다”
이상한 일은 이다음부터 생겼다.이윽고 경찰관이 그에게 내민‘압수 목록표’에서 그의 혐의는 바뀌어 있었다.단순히‘법원 경내에 들어갔다’는 의미인 일반주거침입이 아니라‘공동으로 범행했다’는 뜻인 특수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정 감독은 “‘내가 폭도란 말이냐,내 영상 어디에 내가 폭도란 증거가 있느냐’라고 항의했다”라고 말했다.경찰은 그의 말을 묵살하고,다시 유치장에 입감시킨 뒤,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검찰은 그를 기소했다.따로 조사는 하지 않았다.
정윤석 감독은 자기 사건을 JTBC 사례와 견주는 게 썩 달갑지는 않다고 말했다.그는 법원 후문 쪽 앞마당에 3분 정도 있었다.JTBC 취재팀은 1월19일 새벽,정 감독보다 훨씬 더 긴 시간 서부지법 건물 내부에 들어가 시위대의 행태를 취재하고 보도했다.이 일로 취재기자가 유치장에 갇히거나 기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대신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정윤석 감독은 JTBC 사례를 들어 자신의 처벌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게,자칫‘마이너스 게임’이 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그러면 언론도 출입시키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상을 받을 정도로 너무 잘한 취재다.사회적 의미가 그만큼 깊고 보도 가치가 있는 사건이다.그런데 왜 예술가는 이걸 다룰 때 차별받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싶다.”
정윤석 감독 주장이 사실이라면,굳이 예술가의 권리를 논하기 전에 혐의를 벗을 방법은 있다.수사 절차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그러나 1월19일 체포부터 4월 초에 이르기까지 정 감독은 언론에 적극적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법정에서도 수사 과정의 하자를 크게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타당하지만 동시에 매우 뜻밖인 이유를 들었다.자신이 나서 수사기관을 흔들면 다른 폭도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사실 내 사례는 간첩단 조작 사건과 별반 다를 게 없다.그런데‘수사가 엉망이다’라고 말해버린다면,검찰이 피고인 63명으로 묶어버린 공소장 전체의 신뢰성이 깨지는 결과로 이어질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윤석열 탄핵이 인용돼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 여길 정도의 불안전성이 해소될 때까지 참았다고 말했다.재판부에 무죄판결을 요구하기에 앞서 검찰에 공소 취소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검찰이 실수를 인정해야 재판부가 검증의 부담을 던다.더 소신 있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검찰에서 먼저 옥석을 가리라는 것이다.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는 경우는 드물다.정윤석 감독은 재판부에 재판 분리를 신청했다.검찰이 공소를 유지하는 경우 무죄선고를 전제로,그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63명으로 묶여 있으면 내 사건의 의미가 축소된다.단독 판결문이 나와야 한다.” 시민 1만5000여 명이 재판부에 정윤석 감독의 무죄선고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박찬욱 감독,변영주 감독 등 저명한 영화인들도 이름을 올렸다.정 감독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단독 판결문이 그들과 다른 예술인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영화를 만들 예정이냐고 물었다.정윤석 감독은 웃으며 “다들 그걸 물어본다.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대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판결문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구체적으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적용된 판결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어차피 나는 기록을 남기는 사람 아닌가.그 판례가 영화 이상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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