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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There is no neutrality in the face of human suffering.)

2014년 무더웠던 여름,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습니다.교황은 그해 봄 침몰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애도하는 의미의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방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그리고 출국일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중립적이지 않게 보일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합니다.인간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고,카지노 이동휘 선글라스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삶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깊이 애도합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교황과 와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단순히 미사 때 쓰이는 성찬용 와인 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어떤 교황은 와인 한 잔에 시대를 담았고,어떤 교황은 신념을 담았습니다.와인은 그들에게 신앙과 인간성,그리고 권력과 겸손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었던 셈입니다.

오늘 와인프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기리며,와인을 특별히 사랑했던 역대 교황들과 그들이 선택한,혹은 그들과 어울리는 와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당시 이들에게 와인은 단순히 미각의 문제라기보다 신념과 시대정신,교황청의 정치적 환경과 깊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지난 4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전 모습.1305년 프랑스 출신의 클레멘스 5세(재위 1305~1314)는 로마 대신 아비뇽을 교황청으로 삼았습니다.왕권이 교황권을 앞서기 시작한 그 유명한‘아비뇽 유수’의 시작입니다.

클레멘스 5세는 마침 보르도 귀족 집안 출신이었고 당연하게도 와인에 조예가 깊었죠.로마로 가지 못한 교황은,아비뇽 근교 론 밸리가 와인 생산에 이점이 있다는 점을 눈치챕니다.그리고 보르도의 와인 메이커들을 불러들이는 등 론 밸리 와인에 집중적인 투자를 합니다.

이러한 교황청의 후원으로 론 밸리 와인 산업은 급성장했습니다.특히 클레멘스 5세가 별장을 짓고 포도원을 조성한 곳은‘교황의 새 성’이라는 뜻의 샤또네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줄여서 CDP)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현재는 이곳에서 나는 와인 역시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샤또네프 뒤 파프는 최대 10개 이상의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들어냅니다.진득하고 힘 있는 맛과 향을 자랑하고,긴 숙성 가능성을 보장하죠.아비뇽 유수로 잃어버린 교황권을 되찾고자 했던 클레멘스 5세의 정치적 야심과 닮은 와인이 아니었을까요.

클레멘스 5세의 초상.보르도의 귀족 출신이던 클레멘스 5세는 교황권의 약화로 바티칸이 아닌 아비뇽에 머물면서 샤또네프 뒤 파프를 조성했다.문화와 예술을 적극 후원한 식스토 4세(재위 1471~1484)는 토스카나 지역의 키안티(Chianti) 와인을 무척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는 그의 재위기간과 르네상스 시대의 태동기가 겹치는 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르네상스 시기는 교황권 약화 이후 신을 찬미하는 데에 집중됐던 인류의 예술혼과 탐구심이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으로 옮겨가든 시기였죠.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에는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는 피렌체가 있었습니다.역사에 따르면 식스토 4세는 1478년 당시 피렌체 통치 가문이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으려다 실패한 파찌 음모 사건을 핑계삼아 피렌체에 군사적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을 감시하기 위해 피렌체 일대 키안티 지역의 수도원들과 긴밀이 소통했죠.아마도 식스토 4세는 이 과정에서 토스카나 수도원들을 통해 키안티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당시 각 지역의 대규모 포도밭은 대부분 수도원의 소유로 발전했기 때문에 와인 산업의 가장 선두에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키안티 와인과 당시 시대정신이던 르네상스는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키안티 와인 특유의 산도와 경쾌함은 르네상스의 생동감을 담았고,예술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던 바티칸과도 잘 어울렸다.

참고로 식스토 4세는 재위 중 인류사에 남을 여러가지 굵직한 유산을 남겼는데,대표적인게 바티칸 궁전 내 시스티나 경당 입니다.교황의 선종 이후 차기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의 비밀회의,콘클라베(Conclave)가 열리는 곳이죠.경당 내부는 산드로 보티첼리,피에트로 페루지노,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등 당시 최고의 화가들이 장식했습니다.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최후의 심판’은 후대에 추가됐습니다.

바티칸 궁정에 위치한 시스티나 경당.교황 식스토 4세가 지었다.시스티나는‘식스토의’라는 뜻이다.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입니다.예수회는 1534년 스페인 귀족 출신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of Loyola)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가톨릭 수도회입니다.군사 조직처럼 엄격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가져‘교황의 군대’로 불리기도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르네상스,종교개혁 시대 가톨릭의 방어와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핵심 역할을 했죠.예수회를 공식 승인한 교황은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였습니다.덕분에 예수회는 16~17세기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파견했고,우리나라에는 18세기 후반 이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바오로 3세는 불과 생긴지 7년 밖에 되지 않은 수도회를 공식 승인할 정도로 개혁적인 교황으로 꼽히는데요.이 외에도 가톨릭 교회의 교리 체계를 정립하고,성직자 교육과 교회 제도의 개혁을 추진했던 트리엔느 공의회(1545년)를 소집했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 인퀴지션을 설립해 난무하는 이단을 단속하고 교회의 교리를 수호하는가 하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예화를 금지하고 그들의 자유와 재산권을 인정한 교서를 발표했습니다.식스토 4세가 건설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미켈란젤로에 완성하도록 지시한 예술을 적극 후원한 교황이기도 합니다.

이런 바오로 3세는 당시 북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막 개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이탈리아의 샴페인,프란치아코르타(Franciacorta)를 즐겼을 겁니다.

프란치아코르타는 샴페인에 견줄 정도로 섬세한 거품과 세련된 풍미를 지녀 당대의 권력자들,특히 교회 고위층 사이에 빠르게 퍼졌는데요.교회의 개혁과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했던 바오로 3세의 취향을 저격한 와인이 아니었을까요.

바오로 3세의 초상화.그는 개혁적이고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교황으로 알려져 있다.성 베드로를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32년)한 교황 비오 9세(재위 1846~1878)의 와인은‘와인의 왕,왕들의 와인’이라고 불린 바롤로(Barolo) 입니다.

비오 9세는 이탈리아 중북부와 프랑스 아비뇽을 아우르는 교황령의 마지막 지배자입니다.비오 9세 이후 교황령은 바티칸 시국으로 축소됐습니다.이를 통해 알 수 있듯,비오 9세는 격동하는 시기에 교황으로 재위해 교황권 보존을 위해 힘썼습니다.

이 때문에‘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해 교황이 공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선언하는 교리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교황 무류성 선언’등 시대와는 동떨어진 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오 9세가 교황권 강화에 공을 들인 이유는 그의 재위 시기 이탈리아의 환경과 무관치 않습니다.19세기 이탈리아는 통일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교황청은 당시 사보이아 왕가 등과 정치적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던 시기입니다.

결국 통일 이탈리아가 건국되면서 왕가와 각을 세웠던 비오 9세는 교황령을 상실하고 바티칸 시국에 머물게 됐는데(바티칸 유수),이러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도 교황청은 전통과 권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한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강건하고도 복합적인 바롤로는 비오 9세가 지키고자 했던 교황청의 권위와 전통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실제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비오 9세는 바티칸 궁정에서 중요한 연회를 벌일 때마다 바롤로를 음료로 내놓도록 지시한 바 있습니다.

교황 비오 9세의 사진.비오 9세는 최초로 사진을 찍은 교황이기도 하다.프란치스코(재위 2013~2024) 교황은 특정 와인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최초의 남미 출신(아르헨티나) 교황이라는 점에서 와인을 즐겼고,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국가 품종이라고 불리는 말벡(Malbec)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특히 그는 와인에 대한 직접적인 감상과 평가를 여러 번 남기기도 했습니다.지난해 1월,바티칸에서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들과 비공개 회견을 하면서 “와인은 신의 선물”이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와인을 화려한 소비재나 사치품으로 보기보다 “노동과 자연이 함께 빚은 신의 선물”,“공동체를 잇는 기쁨의 상징”이라고 표현했습니다.와인 한 잔을 통한 인간 존재의 기쁨과 노동의 숭고함,안식 등을 언급한 것입니다.

또 “창조주는 우리에게 그것들을 맡기셨고,우리의 감수성과 정직함으로 그것들을 진정한 기쁨의 원천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와인이 단순한 술이 아니라,안전 토토사이트 목록 제로시대를 반영하고 인간의 신념을 담아내는 신이 맡긴 또 하나의 언어라는 설명입니다.

아울러 인간의 알코올 소비에 대해서도 “술은 공동체와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코인 바카라개인의 방탕이나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절제된 소비와 공동체적 나눔을 통해 삶과 조화를 이루는 진정성 있는 와인의 소비를 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이 와인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화려함이나 과시를 좇기보다,땅과 노동,그리고 함께하는 삶을 존중하라는 게 아니었을까요.와인을 고를 때,단순히 라벨과 가격이 아니라 그 와인 속에 담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와인은 진정한 기쁨과 연결의 언어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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