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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그리스 철학자 작품‘악덕에 관하여’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불탄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
카이사르 장인의 별장에 묻혔다가 18세기 발굴
X선 영상과 AI로 두루마리 안의 글자 밝혀내
2000년 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때 불에 탄 고대 문서가 그리스 철학자가 썼던 작품으로 밝혀졌다.두루마리처럼 말린 이 문서는 18세기에 발굴됐지만,불에 타 숯덩이 상태여서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억지로 펼쳤다가 가루가 될 형편이었다.
과학자들이 X선으로 문서를 층층이 촬영하고 이를 컴퓨터에서 하나하나 풀어 안쪽에서 인공지능(AI)으로 잉크 자국을 찾아냈다.글자를 해독한 결과 기원전 1세기‘쾌락주의’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인 필로데모스가 쓴‘악덕에 관하여’중 일부로 밝혀졌다.의료 영상 AI 기술이 2000년 전 과거를 되살린 타임머신이 된 것이다.
베수비오 챌린지(Vesuvius Challenge)는 AI 머신러닝 분야의 두 연구자가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숯이 된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제목과 저자를 최초로 밝혀낸 공로로 6만달러의 상금을 받았다고 6일(현지 시각) 밝혔다.
서기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던 폼페이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폼페이 인근 도시 헤르쿨라네움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제정(帝政) 로마의 문을 연 율리우스 카이사르 황제의 장인이 소유했던 고급 빌라와 서재에 있던 문서들도 모두 화산재에 묻혔다.
이번에 저자와 제목이 해독된 두루마리는 1752년 카이사르 장인 빌라의 서재에서 수백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와 함께 발견됐다.모양이 바나나를 닮았다고‘바나나 소년(Banana Boy)’이란 별명으로 불렸다.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고대로 가는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화산 폭발 당시 고열에 두루마리들이 숯처럼 탄화(炭化)됐기 때문이다.두루마리를 펼쳤다가는 재가 돼 사라질 형편이었다.
베수비오 챌린지 수상자인 독일 뷔르츠부르크 율리우스 막시밀리안 대학교의 마르셀 로스(Marcel Roth)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인터넷 보안회사 그레이 스완 AI의 미차 노박(Micha Nowak)은 의료 영상 분석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AI 모델로 두루마리의 글자들을 해독했다.
미국 게티 박물관의 유물 큐레이터인 케네스 라파틴(Kenneth Lapatin)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이 작업이 고대 로마 도시 헤르쿨라네움의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두루마리를 판독하려는 노력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켄터키대 컴퓨터과학과의 브렌트 실즈(Brent Seales) 교수와 실리콘 밸리의 후원자들은 2023년 100만달러 상금을 걸고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두루마리를 해독하는 사람을 찾는 베수비오 챌린지 대회를 열었다.냇 프리드먼 전(前) 깃허브 최고경영자(CEO),클루 보드게임 가격대니얼 그로스 세이프 수퍼 인텔리전스 창업자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과 학자들이 뜻을 모았다.
이번에 저자와 제목을 밝힌 로스와 노박은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보들리언 도서관에 소장된 두루마리를‘다이아몬드 광원 연구소’의 입자가속기로 스캔했다.X선으로 인체 내부를 보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두 사람은 두루마리 안에서 발견한 잉크 자국에 수작업으로 주석을 달고,잉크가 있거나 없는 부분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AI 모델을 훈련시켰다.여러 차례 훈련 끝에 AI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잉크를 골라낼 수 있었고,원고 제목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번에 해독된 두루마리는 필로데모스의‘악행’시리즈 제1권으로 추정됐다‘혼란‘공포‘혐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가 포함됐을 뿐만 아니라,은유나 일화의 일부로 향수와 이발소에 대해 언급한 것이 그 증거로 제시됐다.베수비오 챌린지 심사위원인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파피루스 학자 마이클 맥오스커(Michael McOsk) 교수는 “연구자들이 곧 두루마리 전체를 읽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작업 속도가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켄터키대의 브렌트 실즈 교수는 X선 촬영을 통해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의 내용을 2015년 처음 밝혔다.그동안 탄화된 두루마리는 영국 최대 과학 시설인 다이아몬드 광원 연구소의 입자가속기에서 수천 장의 X선 이미지로 촬영됐다.한 두루마리당 용량이 11테라바이트(11조바이트)에 달하는 대규모 데이터다.
다음 과정은 사람 몸의 내부를 CT(컴퓨터단층촬영) 영상으로 보는 것과 같다.두루마리 단면을 찍은 X선 이미지들은 컴퓨터에서 합쳐져 가상의 3D(차원) 이미지로 재구성된다.이 과정에서 AI는 잉크와 파피루스의 밀도와 화학적 특성 등을 구분해 실제 글자들을 찾아낸다.그러면 사람들이 글자를 판독하고,고대 문헌과 비교해 의미를 해석한다.
베수비오 챌린지는 지난해 2000자 이상의 문자를 해독한 대학·대학원생 3명이 2023년 대회 수상자로 선정돼 70만달러를 받았다고 밝혔다.이 문건 역시 철학자 필로데모스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는 두루마리에 “음식의 경우처럼,희소한 것이 풍족한 것보다 우리를 반드시 더 즐겁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썼다.수상자 중 한 명은 2023년 두루마리에서‘보라색’을 뜻하는 첫 그리스 단어를 찾아내‘첫 번째 글자상’4만달러를 받았다.
참고 자료
Vesuvius Challenge,https://scrol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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