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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장에 ATM 공급해온 효성티앤에스
10년 전 경쟁사 특허 침해.수입 금지 당해
美 당국에 맞섰지만 패소.특허사용료 지불
이후 특허료에 세금 매긴 韓 정부에 '불복'
조세심판서 국세청에 완패.행정소송 여부 주목 
국내외 ATM(현금입출금기)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효성 그룹이 과거 경쟁사 특허 침해로 미국 당국의 철퇴를 맞고 돈으로 수습한 사실이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효성은 계열사가 ATM 기술 특허권 침해로 수입 배제 등의 제재를 받자 미 당국과 상대 기업에 각종 소송으로 맞섰는데,줄줄이 패소하며 쓴 맛을 봤다.그러는 동안 미국 수출길이 막히는 등 피해가 누적되자 뒤늦게 특허 사용료를 내고 합의를 봤다.
효성은 이 특허료와 관련된 국내 소송에서도 패소했다.특허료에는 세금이 부과되는데,한국에서 납부한 세금이 부당하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조세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으로 마무리된 것.현재 효성은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다.약 10년에 걸쳐 패소를 거듭했던 효성 ATM 특허 분쟁의 '흑역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특허료 세금 돌려줘" 효성의 뒤늦은 항변,왜?
대기업이 미국에서 소송에 져 특허료를 뜯기고,이에 부과된 세금으로 한국 국세청과 다투다 또 패소한 이 사건의 전말은 올해 치러진 관련 조세심판을 통해 알려졌다.
이 심판 결정문을 보면,지난 2월 12일 조세심판원은 효성티앤에스가 제기한 법인세 환급 청구를 기각했다.효성티앤에스는 ATM을 제조·공급하는 효성 계열사로,옛 회사 이름은 '노틸러스효성'이었다.이 회사는 2021년 삼성세무서에 법인세 146억 원을 납부했지만,그중 일부를 환급해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조세심판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세심판은 국세청이 세금을 잘못 부과했다고 생각됐을 때나 환급 등을 요구했음에도 국세청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제기한다.
효성티앤에스는 2021년 미국 뉴욕거래소 상장사 디볼드 닉스도르프(Diebold Nixdorf)에 ATM 관련 특허 기술 사용료를 지불하고,이 금액의 15%를 법인세로 국세청에 냈다.효성은 이 법인세 과세처분이 부당했다고 주장한다.해당 세금을 거둘 권한이 애초 국세청에 없어 처분이 무효라는 게 효성 측 입장이다.
다시 말해 돈을 받은 디볼드가 아니라,돈을 준 효성이 세금까지 부담했다는 것이다.구체적인 특허료와 세금 액수가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효성은 본지 질문에 "디볼드와의 계약 때 비밀유지 서약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신제품 출시 시점에 '딱' 걸린 美 특허 소송
국세청과 효성이 부딪힌 건 해당 특허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 등록된 건이기 때문이다.국세청은 디볼드가 한국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으므로 국내원천소득으로 간주하고 법인세법에 따라 과세했다.그러나 한미조세조약에 따르면,미국에 등록된 특허에 따른 소득에는 오로지 미국 정부만 세금을 거둘 수 있다.
이처럼 특허 사용료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과세권 문제는 이견이 팽팽해 이전에도 여러 차례 기업과 국세청이 충돌한 바 있다.2016년 '특허 괴물'로 통하는 미국 기업 NTP 인코퍼레이티드가 미국 등록 특허 소득에 대한 한국 국세청의 과세에 맞서 승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효성도 이러한 전례에 기대서 불복에 나섰으나 고배를 마신 셈이다.
계열사의 법무를 도맡는 효성 그룹 법무팀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효성 측은 지난 2월 조세심판 결정 이후로 행정소송 등 추가 불복 절차를 검토해왔으나,아직껏 결론을 못 냈다.회사가 이 건에 앞서 디볼드와 미국 당국과의 특허 소송으로 출혈이 컸던 만큼,또다시 조세소송을 벌이는 것이 실익이 있을지 고민 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효성과 디볼드의 '악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효성티앤에스는 미국에 신제품 ATM을 출시하고 한창 판촉에 나선 상태였다.그런데 디볼드가 대뜸 "효성티앤에스가 우리 특허 6건을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고소하면서 영업에 본격 제동이 걸린다.효성의 ATM 제품을 뜯어보니,자신들 특허를 침해한 기술이 발견돼 미국 통상법 제337조 '불공정 수입'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이 중 디볼드의 '616특허'와 '631특허' 등 2건의 침해 피해를 인정했다.616특허(미국 특허번호 6082616)는 ATM 내부에 장착된 롤아웃 트레이에 대한 기술이고,631특허(미국 특허번호 7832631)는 수표의 자기 잉크 문자 인식(MICR) 데이터를 판독하는 기술이다.효성은 미국 내 ATM 수입 배제 명령을 받아 당시 고급 모델로 출시된 'MX 5200'를 비롯해 ▲Halo II ▲MX 5600 ▲MX 7600 ▲MX 7800 ▲MX 8200 ▲MX 8700 ▲MX 8800 등 제품의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수출 업계에서는 이렇게 제품이 공급 금지 대상에 오르는 것은 곧 기업의 공급 네트워크를 망치는 직격탄으로 통한다고 한다.대기업 특허 임원 출신의 한 전문가는 "미국에선 특허 침해가 인정되면 판매자는 물론이고 그 물건을 사간 고객도 사용한 죄를 물을 수 있다"며 "경쟁사인 디볼드 입장에선 효성의 영업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그런 전략적인 차원에서 소송을 걸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태평양 '특허 드림팀' 나섰지만.디볼드·ITC에 '완패'
효성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ATM 제품을 개조,특허 리스크 일부분은 벗고 공급을 재개했다.또 효성티앤에스가 보유한 미국 특허 4건을 디볼드가 침해했다며 맞소송(카운터 클레임)에 들어갔다.ITC의 특허 침해 판단 및 수입 배제 명령에도 소송으로 맞섰다.
이러한 송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지적재산권(IP)팀이 도맡았다.당시 태평양은 이 팀에 특허법원 판사를 역임했던 권택수 변호사를 비롯해 국내 최고의 지적재산권 전문가들을 영입해 강력한 맨파워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특허 공방은 효성 측에 대체로 불리하게 흘러갔다.디볼드의 616특허는 상급심에서 기각돼 한시름 놓았지만,수표 판독 관련 631특허 침해 혐의는 끝까지 효성의 발목을 잡았다.효성의 디볼드 측 특허 침해 사건의 항소심에서 효성은 또 패소하며 좌절을 맛봤다.2019년 6월 당시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효성은 "디볼드가 631특허에 대한 연구개발을 멈춘지 5년이 넘었다"며 해당기술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라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으나,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효성 측 특허는 4건 중 3건이 기각돼 재판에서 보호되지 못했다.ITC는 "디볼드가 효성 특허 1건을 침해했다"고 인정했지만,그러거나 말거나 디볼드는 계속 자기 제품을 팔았다.디볼드의 효성 특허 침해를 인정한 판결도 2018년 8월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혀 효성은 결국 협상력을 잃게 된다.버티다 못한 효성은 결국 송사 6년만인 2021년 11월,디볼드와 약정을 맺고 양쪽 소송 취하 및 양쪽 특허에 대한 사용료 지급에 합의한다.
■ 법원에선 이길 수 있을까
결국 '울며 겨자먹기' 합의로 부담한 특허 사용료에 세금까지 매긴 것은 효성 입장에서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런 속사정을 차치해도 이번 특허 사용료 과세에 법적인 잘잘못은 따져 볼만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한미조세조약은 국내법보다 우선하는 탓에 효성 주장처럼 한국 국세청에 과세권이 없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실제로 1991년 현대자동차가 제기한 법인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런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1979년 체결된 한미조세조약이 갖는 일종의 불공정성 때문에 한국의 과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본다.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정한 국제기준은 미등록 특허도 실제 사용된 해당 국가에 과세권이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오직 미국만 과거 조약 탓에 예외 대우가 계속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은 한미조세조약을 고치는 것이나,토토 지급정지외교상 우리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상대국에 내어줘야 하는 문제가 복잡해 손대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조약과 국내법이 충돌하는 상태가 40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특허 소송 및 조세 불복으로 떠안는 법적 절차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예를 들어 효성은 이번 건에서 조세심판 전 절차인 경정청구에서 삼성세무서의 기각 결정을 받기까지만 꼬박 2년 걸렸다.
보통 경정청구는 3~6개월 이내에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론을 내리게 돼 있지만 이 건은 국제 조약법이 복잡하게 얽혀 국세청을 오가며 전문적인 견해를 종합하느라 지연됐다는 후문이다.조세심판원에 국내 미등록 특허 관련 결정도 최근 5년간 매해 2~3건 꼴로 나와 크고 작은 기업의 불복 문제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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