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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저수지 화물차 추락 사건 재심 재판부가 사건을 재현했다.검찰과 변호사가 현장에서 사고 당시를 되짚었는데,결과가 제각각이었다.검증 실패는 아니다.이유가 있다.
송정저수지 화물차 추락 사건 재심 현장검증이 6월3일 오후 진행됐다.재판부와 검사,재심을 청구한 박준영 변호사가 함께 도로 구조를 살펴보고 있다.©시사IN 조남진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날이었다.하얀 안개 사이,도로를 따라 드문드문 서 있던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움직였다.두 사람을 태운 화물차의 전조등이었다.화물차는 도로를 따라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를 향해 달렸다.교차로를 지나,도로를 벗어나고 수풀 속 세워진 표지판을 치고 지나치면서도 화물차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화물차는 그대로 저수지에 추락했다.
가라앉기 시작한 화물차 옆에서 한 남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남자는 스스로 도로변을 향해 헤엄쳐 나왔다.함께 있던 다른 한 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화물차에 남아 있던 다른 한 명이 구조돼 뭍으로 올라왔을 때,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탈출한 남자와 숨진 다른 한 명,둘은 부부다.운전을 했던 남편 장동오씨만 화물차에서 빠져나왔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배우자는 차와 함께 가라앉았다.2003년 7월9일 밤 8시39분께,전남 진도군 의신면 송정저수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화물차 추락 직후 장동오씨는 졸음운전을 했다고 주장했다.차량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라고 판단해(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 검찰에 송치했다.그러나 검찰은 살인 혐의로 장동오씨를 재판에 넘겼다.검찰은 추가 수사 결과,그가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화물차를 저수지에 추락시켜 배우자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법원은 검찰 판단을 받아들였다.무기징역을 선고했고 2005년 9월28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계획 살인인가,졸음운전인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7년,충남 서산경찰서 소속 현직 경찰관이던 전우상 전 경감이 자체 조사를 벌인 끝에 과거 수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전 전 경감 주장을 다시 검증했고,2021년 장동오씨를 대리해 재심을 청구했다(〈시사IN〉 제773호‘사건인가 사고인가 19년 전 그날의 진실’기사 참조).그리고 올해 4월 재심 첫 재판이 열렸다.
〈사진 1〉(왼쪽) 재심 재판에서 검찰 측이 주장하는 화물차의 이동 경로.장동오씨가 고의로 화물차 운전대를 좌측으로 틀어 저수지에 추락했다고 주장한다.〈사진 2〉(오른쪽) 박준영 변호사가 제시한 화물차의 이동 경로.직선 도로를 그대로 직진하면 추락 추정 지점에 닿는다고 주장한다.©시사IN 조남진 송정저수지 화물차 추락 사건은 무기징역이 선고된 살인사건이다.그러나 살인 혐의를 입증할 직접증거는 없었다.도로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차량 블랙박스도 없었다.화물차 추락 당시 목격자나 오가던 차량들도 확인되지 않았다.화물차가 완전히 가라앉아 저수지 바닥에서 발견되며 인양 후 추락 직전 모습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의자인 장동오씨뿐이지만,그는 살인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이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도 판결문을 통해‘판단의 전제’로 “이 사건은 직접증거가 없으므로 간접증거에 의하여 피고인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라고 밝히고 판시했다.
법원이 인정한 유죄의 핵심 간접증거 중 하나는 화물차 추락 직전 정황이다.장동오씨가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에서 고의로 화물차 운전대를 좌측으로 틀어 화물차를 추락시켰다는 것이다.바닷일을 오래 해 수영 실력이 뛰어난 장동오씨가,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저수지에 화물차를 빠뜨린 뒤 혼자만 탈출했다는 뜻이다.과거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보면,이 정황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현장검증을 하고(2004년 7월),이후 재판 중 재판부가 직접 현장에 나가 검찰 및 변호인과 함께 검증(2004년 11월)해 확인했다고 적혀 있다.
법원이 유죄의 간접증거로 인정한 법원 현장검증 조서(2004년 11월)에 따르면,당시 현장검증은 사건이 발생한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에서 실제 차량을 운행해 두 가지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장씨가 주장한‘졸음운전으로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았을 경우’와 검찰이 주장한‘고의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틀었을 경우’다.검증 결과,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으면(장씨 주장) 추락한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 검증 차량이 도착했다.반면 운전대를 좌측으로 조작하면서,삼거리 교차로 앞에 그려진 삼각형 안전지대와 황색선 사이를 그대로 따라 주행했을 경우(검찰 주장)에는 추락 추정 지점과 일치하는 곳에서 검증 차량이 정지했다(〈사진 1〉 참조).
과거 검찰 측은 재판에서,장동오씨가 운전을 처음 시작한 지점부터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5.4㎞ 구간을 보면 졸음운전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반복되는 좌굽이,우굽이 구간과 2~3차례 나오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쳐야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에 닿을 수 있는데,만약 장씨 주장대로 졸음운전을 했다면 저수지 도착 전 이미 사고가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이다.올해부터 시작된 재심 재판에서도 검찰은 과거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심을 청구한 박준영 변호사는 과거 검찰과 법원 현장검증이 객관적 중립성,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과거 수사기록을 보면,검찰과 법원이 현장검증 과정에서 차량을 출발시킨 지점은 추락 추정 지점에서 70~80m 떨어진 곳이었다.이 지점은 삼거리 교차로가 시작되는 곳으로,
프로야구 ssg 연고지도로가 이미 좌굽이 구간에 들어서 있다.좌측으로 운전대를 틀어야만 추락 추정 지점에 도달했던 과거 현장검증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차량이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에 진입하려면 우선 350여m 거리의 직선 도로를 달려와야 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박준영 변호사는 주장한다.이 직선 도로를 따라 실선을 그어보면 정확히 추락 추정 지점에 닿는다는 것이다(〈사진 2〉 참조).좌회전이 아니라 직진을 해야 추락 추정 지점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이는 장동오씨가 2003년 화물차 추락 직후부터 이어온 졸음운전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박 변호사는 재심 청구서에서 “과거 검찰과 법원 현장검증 속 검증 차량 출발 지점인 교차로 시작 지점보다 더 뒤인,추락 추정 지점 135m 떨어진 지점에서 직접 차량을 운행해본 결과,운전대 조작 없이도 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2003년 7월 송정저수지에 추락한 장동오씨의 화물차가 인양되고 있다.©해남지방법원 공판기록 과거 장동오씨 배우자를 구조하고 저수지 바닥에 가라앉은 화물차를 인양했던 이용범·박은준씨의 진술도 화물차가 직진해왔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민간 잠수부로 활동했던 이들은 2003년 사고 당일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박은준씨는 5월22일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화물차 추락 추정 지점 부근에서 2인1조로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차량을 수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사고 전 직진해왔다고 가정하고,나침반을 통해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방향을 잡고 수색을 시작하자 사고 차량이 발견됐다.수중에서 확인한 차량 앞머리도 직진으로 주행한 방향이었다”라고 증언했다.
21년 만에 열린 세 번째 현장검증
검찰과 변호인 측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맞부딪히자,변호인 측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화물차 추락 현장에서 재판을 열고,재판부와 검찰,변호인이 모여 검찰 주장(운전대 좌조향)과 변호인 주장(직진 주행)을 동시에 재현해보자는 것이었다.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사건 발생 21년 만에 세 번째 현장검증이 이렇게 열렸다.
6월3일 오후 2시 전남 진도군 의신면 송정저수지 앞.경찰이 통제한 삼거리 교차로 앞에 재판부와 검찰,변호인이 모였다.검증을 위한 화물차는 변호인 측이 준비했다.사고 당시 장동오씨가 몰던 화물차 기아 와이드봉고는 단종된 탓에 비슷한 제원의 현대 포터 모델을 섭외했고,
프로야구 ssg 연고지검찰이 지정한 정비소에서 현장검증 전 차량을 점검해 기록을 남겼다.추락 추정 지점은 과거 현장검증 사진과 현장검증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앞서의 민간 잠수부 박은준씨의 증언,검찰이 사전 답사를 통해 확인한 지점 등을 종합해 특정했다.
재판부는 추락 당시 장동오씨의 차량 주행속도인 시속 55㎞로 달리게 했다.삼거리 교차로 앞에서 운전대를 좌측으로 조작한 경우(검찰 주장),직선 도로를 따라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고 직진하는 경우(변호인 주장) 두 가지 가능성을 재연하면서 도달하는 지점을 측정했다.검증 차량의 출발 지점은 이날 특정한 추락 추정 지점에서 350여m 떨어진 곳이었다.
검증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제3자가 검증 차량을 운행해야 한다는 검찰 측 주장에 따라,법원 관계자가 먼저 화물차에 올라탔다.법원 관계자는 총 3차례 검증 차량을 운행했지만 검증에 실패했다.직선 도로를 달리면서 운전대를 조작하거나,출발 지점에서부터 중앙선을 넘어 달리는 등 과거 유죄의 간접증거인 법원 현장검증과 다른 형태로 검증 차량을 운행했기 때문이다.
6월3일 현장검증에서 검증 차량은 법원 관계자 3회,검찰이 2회,변호인이 1회 운행했다.©시사IN 조남진 이 때문에 변호인과 공판 검사가 직접 각자의 주장에 맞게 검증 차량을 주행하기로 했다.검찰 측은 총 2차례 검증 차량을 주행했다.삼거리 교차로에서 삼각형 안전지대와 황색선 사이를 따라 운전대를 좌측으로 조작한 경우와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고 직진으로 주행한 경우다.변호인 측은 직선 도로를 따라 직진해온 경우로 한 차례 주행했다.
어떤 경우든 검증 차량이 저수지 방향으로 향했지만,도착 지점은 제각각이었다.특히 같은 조건이었던‘운전대를 조작하지 않고 직진해온 경우’에도,검찰과 변호인이 각각 운전한 결과 도달 지점이 2~3m가량 차이를 보였다.검찰이 운전대를 좌측으로 조작한 경우에도 검찰이 앞서 사전 답사를 통해 특정해둔 지점에 닿지 못했다.
현장검증은 수사 내용을 범죄 현장에서 재현해 피의자의 주장이 진실한지,수사에서 누락된 증거는 없는지 다시 확인하는 절차다.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현장검증의 취지다.그러나 이번 현장검증은 검증 차량을 누가 운행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검증 차량 운행 후 추락 추정 지점에 도달한 모습이다.©시사IN 조남진 현장검증을 해석하는 데 대해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도 갈린다.검찰은 “원심(과거 법원 판단)과 동일하다.피고인 장씨가 고의성을 가지고 운전대 좌조향을 해,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한다”라며 “사고 발생 지점 이전까지의 도로 여건상 졸음운전으로 사고 지점까지 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현장검증 신청 취지는 재심 재판에 증거로 들어와 있는 2004년 검찰과 법원 현장검증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검찰과 변호인이 각자의 주장에 맞게 운행하기 위해 고도로 집중해 운전대를 잡고 똑같은 도로를 달렸는데도 큰 차이가 났다.과거 현장검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입증됐다고 판단한다”라며 “졸음운전 사례는 너무나 다양한데 추락 지점까지 무사히 도달했기 때문에 졸음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검증 결과와 해석은 왜 제각각인가
검증 결과와 해석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화물차 추락 지점부터‘추정’이다.과거 수사했던 경찰과 도로교통안전공단 등이 작성한 교통사고 관련 보고서에서도 추락 지점이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고,화물차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뒤에도 20m가량 움직였다는 기록이 있다.가라앉은 차량 모습 그대로 인양 되지도 않았다.인양이 어떤 방법으로 이뤄졌고,이 과정에서 차량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록 역시 없다.
장동오씨가 고의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조작했다고 가정하더라도,운전대를 얼마나 틀었는지에 따라 차량 이동 동선과 추락 각도 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시속 55㎞로 달리던 차량이 좌측으로 운전대를 조작해 표지판을 치고 추락하면서,충돌 또는 입수 지점에서 기울거나 넘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직진으로 차량을 운행했을 경우에도 여러 가능성이 나온다.도로 중앙 쪽 황색선,또는 도로 우측에 그려진 흰색선 등 어느 쪽에 붙어 주행했는지에 따라 저수지 도달 지점이 달라질 수 있다.
2004년 7월 이뤄진 검찰의 현장검증 기록 일부.당시 검찰은 장동오씨가 고의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틀어 저수지에 추락했다고 판단했다.재심 재판에서 검찰도 과거 수사 검찰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해남지방법원 공판기록 최근까지 대법원 판례로 인정되고 있는 졸음운전의 양상도 다양하다.운전대를 조작하거나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도 졸음운전이 인정된 사례들이 적지 않다.장동오씨가 어떤 시점에 어떤 형태로 졸았는지,또는 졸지 않았는지 현재는 물론 당시에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이 사건은 도로 CCTV나 차량 블랙박스,목격자 등이 없다.당시를 다시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건 관계자는 장씨뿐이었지만,그는 재심 첫 재판을 보름 앞둔 4월3일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과거 현장검증 조서와 검찰 수사기록,법원 판결문에는 위에 언급한 여러 가능성들에 대한 검증도,고려도 없었다.도로 구조,사고 차량의 교차로 진입 전 진행 방향,사고 차량의 입수 방향,사고 차량이 수중에서 발견된 지점,졸음운전의 다양한 양상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현장검증이었다.2024년,21년 만에 세 번째 현장검증이 이뤄진 이후에도 여전히 여러 가능성들이 제기되는 이유는 과거 현장검증이 완벽하게 객관적이지도,과학적이지도 않았다는 결론으로도 이어진다.이 같은 현장검증 결과가 유죄의 핵심 간접증거로 채택되어 피고인은 무기징역형을 받아,수감 중 재심 개시 결정으로 형 집행이 정지된 당일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서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장검증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과학적·객관적 검증 방식,수사도 범죄 혐의에 예단을 가지고 실행할 경우 얼마든지 심각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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