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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단상집 '소중한 보물들' 펴내
16년 전 대장암 수술로 시작된 '명랑 투병'
'무자식 상팔자' 툭 던지는 말,관계도 상처
[서울경제]
“역경과 시련을 그냥 마주하는 것만으로는 아까우니 이것을 오히려‘역이용’해서 축복의 기회로 삼아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올해 팔순에 들어선 이해인 수녀가 수녀원 입회 60주년을 맞아 그간의 생각을 모은 단상집‘소중한 보물들’을 펴냈다.
이 수녀는 18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6년 전 대장암,직장암으로 대장 30cm를 절개하는 암 수술을 받고 암 환자로 살아오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보게 됐다”며 수도 생활에서 깨달음의 계기가 된 순간을 전했다.
“저도 제가 감상적인 사람인 줄 알았어요.그런데 막상 투병을 하니까 그렇게 씩씩하고 명랑할 수가 없더라고요.수녀가 아니었다면 행사를 기획하거나 방송국 피디했으면 잘했겠더라고요.”
높은 톤의 고운 목소리에 소녀 같은 웃음 소리와 더불어 완벽한 반달이 되는 눈은 팔순이라는 물리적인 나이를 잊게 했다.60년의 수도 생활에 쌓인‘소중한 보물들’의 흔적은 도처에 있었다.수녀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적어 내려간 시와 단상들이 벌써 184권 분량의 노트가 됐다.수녀의 길을 먼저 간 언니가 그를 위해 적어준 말씀 글귀 노트,그를 다녀간 이들이 남긴 편지와 흔적들까지.
밝은 모습으로 투병 생활을 받아들이는 이른바‘명랑 투병’에도 원칙이 있다.먼저 기도다.그는 “이전에는 무엇을 구하는,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다”며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다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동시에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대신 영성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그러고 나니 모든 당연한 것들에 놀라워졌다는 것.그는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경상도 땅에서 살다 보니‘호들갑이야’이런 태도를 취하기 쉬운데 광안리 바다도,대박집 관악구백일홍 꽃도 처음 보는 것처럼 당연한 것들의 당연함에 놀라워하는 감성을 키워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그는 “제가 성직자이다 보니 제 투병도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된다”며 “그것도 좋은 측면”이라고 말했다.성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하면서도 해인 글방을 운영하고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내어준다.
60년째 수도 생활을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를 비롯해 사람이 제일 힘들다.가끔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무자식이 상팔자야”라고 툭 던지는 말에 상처도 받는다.
“아이를 키우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것을 느끼는데 저는 그런 모성도 포기하고 수도생활을 하는 거잖아요.다음부터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죠.” 대신 이모나 엄마로 불리는 건 좋다고 했다.그는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엄마라고 불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엄마한테 못 하는 말 이모한테는 할 수 있으니 이모라 불려도 좋다”며 웃었다.제일 아끼는 애칭은‘흰구름천사’다.자신의 세례명 클라우디아에서 딴 건데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는 구름 천사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그는 “아직도 한 사람이라도 더 따뜻하게 대할걸,건성으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고 했다.
그는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머리도 물들여보고 화려한 스커트도 입어보고 싶다고 했다.그러면서 지금의 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수도 생활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으니까 후회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