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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호 민속주 금정산성막걸리
누룩 발효·건조 40일 넘게 정성 들여
뜨거운 열기·무거운 무게 견디며
쌀 320kg 찜통 담고 지은 고두밥
누룩과 잘 섞어야 특유의 시큼한 맛
15대째 가업 이어 지킨 부산 전통주
지역·세대 아우르는 국민 술 되길
[편집자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2위 항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산복도로까지.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다이내믹 한 풍경이 있는 만큼 부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들도 많습니다.이외에도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이러한 분들을 '기자니아' 영상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기자니아’는‘키자니아(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와‘기자’의 합성어로,기자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입니다.체험과 동시에 직업에 얽힌 부산만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담고자 합니다.영상들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 혹은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특유의 상큼하고 고소한 맛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금정산성막걸리.조선시대 초기 부산 금정산에 살던 화전민들이 생계를 위해 누룩을 만들고 빚은 술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이후 18세기 초 금정산성을 쌓기 위해 각지에서 모인 작업자들이 주민들이 담근 술을 맛보면서 전국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부산 군수기지사령관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찾은 막걸리로 유명합니다.대통령령을 통해 1979년 대한민국 1호 민속주 허가도 받았습니다.지금도 금정산 기슭에 자리한 산성마을에서는 전통 방식대로 발로 밟고,40여 일간 발효된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고 있습니다.
50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술,어려운 시절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진 고마운 술,부산을 대표하는 전통주 금정산성막걸리를 기자가 직접 빚어봤습니다.
부산 금정구 금정산 기슭에 자리한 산성마을 전경.이정 PD luce@■친근하지만 까다로운 술
지난달 14일 오전 9시,자동차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참을 굽이굽이 오르자,산성마을이 나타났습니다.이날 낮 최고 기온은 섭씨 13도.겨울치곤 온화했지만,이곳 공기는 산 아래 도심보다 확연히 차가워 쌀쌀함이 감돌았습니다.얇은 옷차림에 움츠러든 기자를 금정산성막걸리 유청길 대표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유 대표는 “오늘 힘쓸 일이 많은데 일꾼이 영 부실해 보여서 걱정”이라며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온몸에 땀이 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막걸리는 친숙하고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술이지만 제대로 만들기는 까다롭습니다.특히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경우 발효 과정에 따라 맛과 생산량이 크게 좌우됩니다.산성마을에 자리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하루 평균 6000병.1997년 대표에 취임한 유 대표가 생산 방식을 체계화하면서 이전까지 들쭉날쭉했던 생산량과 맛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산성마을에서 15대째 가업을 이어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유 대표는 발로 밟은 통밀 반죽을 40여 일동안 발효하고 건조해 누룩을 만드는 전통 방식에 현대식 공정을 결합했습니다.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적의 발효 기간,온도 등을 터득했고 2013년 우리나라 49호,막걸리 분야에선 최초로‘식품명인’이 됐습니다.유 대표는 “전통 방식으로 직접 만든 누룩을 활용해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대량생산하는 곳은 전국에서 부산 산성마을이 유일하다”고 밝혔습니다.
날씨도 막걸리의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입니다.더우면 발효 작용에 관여하는 미생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추우면 둔해집니다.너무 춥거나 덥지 않아야 발효되는 정도와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셈입니다.유 대표는 “날씨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아무리 시스템을 잘 갖춰도 전통 방식으로 일정하게 막걸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라고 전했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전통 방식과 현대화 공정이 결합돼 하루 평균 6000병 생산되고 있습니다.이정 PD luce@ ■발로 밟아 만든 명품 누룩
막걸리에 대한 유 대표의 짧은 강의가 끝난 뒤 곧바로 누룩 만들기 과정에 투입됐습니다.누룩은 술을 빚는 데 쓰는 천연 발효제입니다.누룩과 밥을 섞어 발효시킬 때 막걸리 원액이 나옵니다.이곳에서는 통밀을 갈아 뭉친 반죽을 둥근 모양이 되도록 발로 밟아 누룩으로 만듭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몸빼바지 차림에 흰색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 세 명이 누룩 반죽 위를 빙글빙글 돌며 밟고 있었습니다.이 중에서도 전덕순 씨는 73년째 산성마을에서 누룩을 만들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입니다.기자도 전 씨가 건넨 고무신으로 갈아 신으며 누룩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누룩 만들기,그중에서도 누룩 딛기는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집니다.먼저 보자기로 싼 통밀 반죽을 넓게 펴는 작업입니다.발뒤꿈치를 이용해 원형으로 돌면서 반죽의 가운데를 꾹꾹 밟아 펴줍니다.다음으로 발 앞꿈치로 테두리 안쪽의 울퉁불퉁한 반죽을 평평하게 다듬습니다.마지막으로 발바닥 전체를 활용해 반죽을 전체적으로 한 번 더 고르게 밟으면 테두리는 두껍고 안쪽은 평평한 피자 모양의 누룩이 완성됩니다.
누룩 딛기는 보기보다 쉽지 않았습니다.무엇보다 발 부위에 따라 섬세한 힘 조절은 기본이고 균형 감각도 필요했습니다.누룩 반죽 위를 쉼 없이 빙글빙글 돌며 밟으니 넘어질 듯 어지러웠습니다.게다가 전 씨가 빚은 고르고 완벽한 원형의 누룩과 달리 기자의 작업물은 표면이 울퉁불퉁했고 모양도 럭비공처럼 타원형이 일쑤였습니다.전 씨에게 격려와 꾸중을 번갈아 받으면서 비로소 기자가 빚는 누룩의 모양도 일정하게 유지되기 시작했습니다.작업을 마칠 무렵엔 발목은 물론이고 무릎,허리까지 아팠습니다.전 씨는 “옛날엔 집에서 직접 마실 술을 담글 용도였기 때문에 대충 만들어도 괜찮았지만,요즘은 판매하기 때문에 모양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보기엔 쉽지만,막상 해보면 정말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전통 방식의 누룩 딛기는 섬세한 힘 조절과 균형 감각이 필요한 작업입니다.전덕순(왼쪽) 씨에게 '누룩 딛기'를 배운 기자가 통밀 반죽을 밟아 둥근 모양의 누룩으로 빚고 있습니다.이정 PD luce@이렇게 빚어진 하루 평균 500장의 누룩은 별도의 방에서 1주일 정도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누룩이 발효되고 있는 방에서는 구수한 향이 났습니다.어린 시절 할머니 댁의 메주를 띄운 방에서 맡았던 향이 떠올랐습니다.발효가 잘 이뤄진 누룩엔 노란 누룩 꽃이 핍니다.곰팡이의 일종으로 나중에 밥과 섞여 발효되는 과정에서 막걸리 특유의 시큼하고 단맛을 냅니다.조금 전까지 말랑말랑하고 찰기 있던 반죽을 만져보니 콘크리트처럼 딱딱했습니다.발효를 마친 누룩은 2~3일 햇빛에 말린 뒤 다시 1달가량 건조합니다.누룩 제조에만 40일 이상 걸리는 셈입니다.
전덕순 씨가 누룩 곰팡이가 핀 누룩을 들고 있습니다.이정 PD luce@ ■쌀 320kg으로 지은 고두밥
누룩 향이 코끝에서 채 가시지 않았지만,다음 작업장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어른 키를 훌쩍 넘는 초대형 찜통 앞에서 5년 차 직원 유혜수 씨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이곳에서는 1시간 동안 불린 백미 320kg으로 밥을 지어야 합니다.커다란 고무 대야에 수북히 쌓인 쌀들은 삽으로 찜통 안에 아무리 퍼 담아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습니다.게다가 물을 잔뜩 머금은 탓에 더욱 무겁게 느껴졌습니다.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진 뒤에야 쌀들은 모두 찜통 안에 담겼습니다.
사실 유 씨는 유 대표의 아들입니다.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소주를 연구했습니다.이후 아버지의 공장에서‘밑바닥’부터 막걸리를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유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삽으로 쌀을 푸는 장면을 지켜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ㅇㅇㄴ사이트직접 해보니 정말 힘들었다”며 “아직 일을 배우는 단계이지만 가업이다 보니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고 밝했습니다.
기자와 유혜수(오른쪽) 씨가 물에 불린 백미 320kg을 찜통 안으로 퍼담고 있습니다.이정 PD luce@찜통에 담긴 쌀을 찌기 전,반드시 20여 분 동안 물을 빼야 합니다.막걸리 제조에는 수분이 거의 없어 푸석푸석한 고두밥을 사용합니다.고두밥은 수분이 없어 잘 쉬지 않고,
블랙잭 a밥알끼리 뭉치지 않아 누룩과 잘 섞이면서 발효도 활발하게 이뤄집니다.물을 완전히 빼고 난 뒤 50분 동안 밥을 찌면 고두밥이 완성됩니다.
50분이 지나 찜통 뚜껑을 열자,작업실 안은 하얀 수증기로 가득 찼습니다.뜨거운 열기 때문에 눈을 뜨기도 어려웠습니다.밥을 냉각판 위로 꺼내 식혀야 합니다.삽으로 뭉친 밥을 부숴가며 남은 수분도 날렸습니다.밥알이 뭉쳐있으면 누룩에 있는 균들이 밥알에 붙어 화학 작용을 일으키기 어렵습니다.고두밥을 한 줌 집어 먹어봤습니다.물기 하나 없이 푸석한 밥알의 식감이 독특했습니다.
■잘 섞어야 잘 익는다
이제 밥과 누룩을 섞을 차례입니다.부숴서 가루를 낸 누룩과 밥을 물이 담긴 큰 통에 차례로 부어줍니다.누룩이 둥근 상태에서는 밥과 섞이기 어렵습니다.그리고 원료들이 골고루 섞여 발효가 잘 이뤄지도록 온 힘을 다해 저어줘야 했습니다.
고두밥과 누룩,물을 잘 섞어야 발효가 활발하게 이뤄져 맛있는 막걸리가 만들어집니다.이정 PD luce@배합되고 뒤섞인 원료들은 일주일 정도 발효 시간을 거칩니다.발효 과정에서 누룩이 쌀에 있는 당분을 분해하면 알코올이 생성됩니다.앞서 발효를 시작한 통에서는 화학 작용으로 인해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왔고 열이 발생해 온기가 느껴졌습니다.이후 기계를 통해 원액에서 밥과 누룩 등을 걸러내고 물과 아스파탐을 배합하면 시중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됩니다.이렇게 생산된 금정산성막걸리는 플라스틱병에 담긴 채 유통돼 식당이나 마트에서 매일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막걸리가 친숙한 중·장년층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독특한 맛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나아가 전통주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젊은 세대를 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도수가 낮은 술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기호를 감안해 기존보다 도수가 3도 낮은 5도짜리 막걸리도 출시했습니다.유청길 대표의 아들 유혜수 씨의 아이디어였습니다.30여 년 전 유청길 대표가 생산 방식을 체계화해 금정산성막걸리의 기틀을 닦고 맥을 이었다면,이제 아들 유혜수 씨는 금정산성막걸리의 저변을 넓히고 있습니다.금정산성막걸리가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로,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술로 거듭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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