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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게시로 거부감 자초,논란 일자 하루 만에 사라졌지만.현행법상 규제 어려워
현충일 내내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된 부산의 한 고층아파트 욱일기가 하루 만에 사라졌다.비판 여론이 쇄도한데다 '분쟁 공론화' 등 소기의 목적을 이루면서 욱일기를 거둔 것으로 보이지만,여파가 계속될 분위기다.이를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벽부터 안 보이네예.사람들이 저래 머라카는데(꾸짖는데) 가만히 놔두면 되겠습니까."
7일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A주상복합아파트 앞에서 만난 정아무개(49)씨는 이른 아침부터 욱일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정씨는 "아무리 억하심정이 있어도 저렇게 일장기,욱일기를 악용하는 건 맞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터트렸다.같은 장소엔 지난달에도 계속 일장기가 펄럭였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욱일기를 해당 층 주민이 떼어 낸 거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렇지 않겠냐.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바람에 날려간 게 아니란 설명이었다.관리사무소는 이 소동으로 온종일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이 관계자는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라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 달엔 일장기,이번 달엔 욱일기.왜 이러나
하루 전 이 건물 37층 주민 B씨가 2장의 욱일기와 '민관합동사기극'이라는 글자를 창문 밖으로 내걸면서 파장을 일으켰다.순국선열을 기리는 날에 태극기가 아닌 욱일기가 등장하자 충격은 컸다.이를 항의한 박아무개(62)씨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건물 반대편에서 만난 박씨는 "현충일에 욱일기라니 말이 되느냐"고 발끈했다.
이번 사태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국가재산 훔치는 자들>이란 전자책까지 냈던 B씨는 다른 사안을 알리는 과정에서 욱일기를 가져왔다.지역언론과 인터뷰를 한 B씨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현충일에 맞춰 이 같은 행위를 준비했다"고 말했다.과거 수영구가 국유재산을 건설업자에게 매각하면서 분쟁이 발생했고,오래된 이 사건에 불을 지피고자 벌인 일이었다.
그는 "(과거)군국주의가 패퇴해서 물러갈 때 사기꾼과 탐관오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지 않았느냐"라며 건물 논란이 과거 우리나라를 짓밟았던 일본의 모습과 다름없어 욱일기를 차용했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B씨는 앞으로도 행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찰과 지자체는 난감하단 표정이다.경찰 관계자는 "여러 건의 신고전화가 들어와 구청으로 협조 요청을 했다.현행법 위반 여부가 확인돼야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수영구청은 공동주택관리법이나 옥외광고물관리법 저촉 여부를 살펴보고 있으나 마땅한 적용 규정을 찾지 못했다.구청 관계자는 "집안에 밧줄로 연결해 실외로 게시했는데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나 욱일기에 문제를 제기해온 이들은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입을 모았다.해결하려는 일이 있더라도 욱일기를 부착한 행동은 동의가 어렵다는 비판이다.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운동에 함께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목이 목적인데,유럽에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내건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욱일기 퇴치 캠페인을 벌이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규제할 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다.대놓고 깃발을 달고 활보하는 차량,유벤투스 대 토리노이번 사태 등 욱일기를 쉽게 방치하고 있단 게 서 교수의 시각이다.그는 "분노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 삼아 강력한 처벌법으로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자신의 의도대로 주목받긴 했지만,유벤투스 대 토리노국민 정서를 건드린 탓에 온라인 공간에는 비난 글이 쏟아지고 있다.심지어 A아파트 해당 층 현관은 B씨의 행위를 규탄하는 글과 오물로 뒤덮였다.우리나라에선 전범기로도 불리는 욱일기는 일본이 1870년 육군 군기,1899년 해군 깃발로 채택하면서 등장했다.이후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의 앞자리를 차지했고,패전 뒤엔 해상자위대가 자위함기로 이를 계승해 사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