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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경복궁 지하에는 조선왕실에서 만들고 쓰던 유물 수만 점이 잠자고 있다.유물들은 훼손되지 않도록 온·습도를 갖춘 수장고에서 최대 8중 보안장치에 둘러싸여 지낸다.5일 국립고궁박물관이 2005년 개관 이래 처음 이 수장고를 언론에 공개했다.조선왕실에서 왕과 왕비의 존호를 올릴 때 쓰던 어보·어책과 각종 현판이 보관된 일부 공간을 열어보였다.
이날 국립고궁박물관 사무동 지하 1층에서 350m의 긴 복도를 지나자 수장고 입구가 나왔다.유물 보호를 위해 덧신과 마스크를 착용하자 금속문이 열렸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지하수장고는 총 16개이고 이외에 본동 수장고 3개가 있다.지하수장고 공간은 1962년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청사)에 자리했던 정부의 안보회의용 벙커로 처음 만들어졌다.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장고로 개조해 20여년간 쓰다가 2005년부터 국립고궁박물관이 수장고로 활용 중이다.
이 수장고는 총 8만8530점(5월 말 기준)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각각 필요한 온·습도가 다른 만큼 종이·목제·도자·금속 등 유물의 재질·유형에 따라 모아서 관리한다.이 중에는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부터 철종(재위 1849∼1863)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비롯한 국보 4건,보물 27건 등이 있다.서울시 문화유산까지 포함하면 지정·등록유산만 54건,세부적으로는 3639점에 이른다.
이날 취재진에 공개된 10 수장고는 조선왕실의 어보·어책·교명 등 628점을 보관한 공간이다.오동나무로 짠 4단 수납장 안에 금과 은,옥으로 만든 어보 등이 함에 담겨 있었다.
손명희 학예연구관은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에 따라 온도,모두 바로우 통계습도를 관리한다”며 “금속과 목재류 유물이 있는 10 수장고의 경우 온도는 20±4도,습도는 50∼60%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옆의 11 수장고에는 조선 왕조에서 사용한 궁중 현판 766점을 모아놓았다. 1756년 영조(재위 1724∼1776)가 예를 표하며 걸었다는 '인묘고궁' 현판,순조(재위 1800∼1834)의 생모 수빈 박씨를 기리는 사당에 걸린 '현사궁' 현판 등을 볼 수 있었다.
사도세자(1735∼1762)의 사당인 '경모궁' 현판의 경우,테두리 일부가 사라져 유물 훼손을 막기 위해 거꾸로 보관해 관리하고 있었다.
정조(재위 1776∼1800)가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될 때 만들어진 어보·어책·교명도 특별히 공개됐다. 평소 교육 행사를 여는 열린 수장고(19 수장고)에서는 어린 정조가 1759년 왕세손이 되면서 징표로 받은 옥인(옥으로 만든 도장),모두 바로우 통계죽책(대쪽에 새겨 엮은 문서) 등을 볼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는 소장품이 늘면서 현재 과밀화가 심각한 상태다. 올해 5월 기준 수장고 시설 대비 유물 보관 현황을 계산한 포화율은 160%에 이른다. 경기 지역의 한 수장시설을 일부 빌려 운영하고 있으나 임시방편이다.지하 벙커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증축도 어렵다.
박물관은 현재 개방형 수장고 형식의 분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고궁과 왕릉이 있는 서울·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후보지를 찾는 한편,제2수장고 건립·운영을 위한 연구 용역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왕릉·고궁의 유산을 종합 보존·관리하면서 국민을 위한 전시·교육을 하는 기관”이라며 “이런 역할을 하려면 타당한 지역을 선정해 왕실 유물 통합 관리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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