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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인 2011년 7월 4일.이날 오전 11시 40분쯤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위치한 해병대 2사단 예하부대 막사 내에서 총격 소리가 울렸다.
부대의 상병이었던 김민찬이 동료 해병들과 간부 등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김 상병은 입대 후 부대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선임병은 물론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속칭 '기수열외' 취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이 같은 생활이 반복되자 결국 그는 동료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 오전 7시 30분쯤.김 상병은 이틀 전 근무 때 몰래 들여왔던 소주를 마신 뒤 창고에서 정준혁 이병과 만났다.김 상병은 그에게 '권 일병을 죽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정 이병은 처음에는 이를 말렸으나 그 역시 부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기에 이내 '죽이고 탈영하자'며 김 상병과 공모했다.
이들은 상황실에서 기회를 엿보다 근무자들이 상황실을 비우자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 1정,키움 홈경기 일정실탄 수십 발 및 수류탄 1발이 담긴 탄약통을 탈취했다.
김 상병은 정 이병에서 수류탄을 주며 고가초소를 폭파하라고 말한 뒤 생활관으로 향했다.그리고 공중전화 부스에 있던 이승렬 상병에게 총을 쏴 살해했다.그는 이어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이승훈 하사에게도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2명을 살해한 김 상병은 2생활관으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자고 있던,자신이 가장 죽이고 싶어했던 권승혁 일병의 가슴에 3발의 조준사격을 가했다.이어 우측으로 총구를 돌려 박치현 상병에게도 한 발을 쐈다.
그는 계속해 사격을 가하려 했으나 2생활관 내 있던 권혁 이병이 몸을 날려 김 상병의 범행을 저지했다.이 과정에서 권 이병 역시 하체와 급소 등에 총을 맞아 중상을 입게 됐다.
권 이병에 의해 생활관 밖으로 밀려난 김 상병은 총격 보고를 받은 소초장과 마주치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소총을 버리고 도주했다.이어 창고에서 정 이병과 조우했고 이내 그가 총성 이후 겁을 먹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에 그는 수류탄을 뺏어 창고에 터트렸으나 본인 역시 큰 부상만 입은 채 이내 체포됐다.
무분별한 '총기난사'만큼 잔혹한 '조준사격'으로 4명의 전우를 죽게 하고 1명에게 큰 상처를 입힌 김 상병은 2013년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
법원은 "일부 참작정상이 있고 사형 선고의 양형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그러나 범행에 상응하는 책임의 정도,범죄·형벌 사이의 균형,사회 보호 등의 시각에서 보면 극형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사형을 선고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아울러 김 상병과 함께 범행을 공모한 정 이병은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10년으로 감형,대법원에서 이 같은 형량이 확정됐다.
한편 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은 해병대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번졌다.사건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가혹행위가 크게 질타를 받았고 부실한 총기 관리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라 연대장과 대대장이 책임을 물어 보직해임됐다.
특히 갓 입대한 이병이 총격범을 저지하는 와중에 다른 선임들은 지켜보고만 있거나 막사 외부로 부리나케 도망쳐 군무이탈 하는 등 군인 자격이 없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그간 자부심을 과시했던 해병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