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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 소설 '컨설턴트'
주인공 정보 주며 원고청탁한
출판사 실상은 청부살인업체
암살조차 서비스가 된 세상
죽음을 '구조조정'으로 은유
세계적인 추리소설 문학상
英 대거상 후보 오른 작품
◆ 김유태 기자의 밑줄 긋기 ◆
허름한 모텔,주인공 '나'는 암살에 관한 소설을 쓴다.출판사가 전체적인 줄거리를 주면,그걸 토대로 쓰는 일종의 '기획 소설'을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암살의 대상이 될 캐릭터의 신상,건강자료,또 일주일 단위의 일상을 담아 '나'에게 보낸다.'나'는 책상에 앉아 그 캐릭터를 죽일 가장 확실한 방법을 골몰한다.
세 건의 암살 소설을 쓴 뒤,'나'는 뉴스에서 보았다.그가 쓴 소설의 내용이 현실로 똑같이 벌어진 것이다.그렇다.출판사는 그냥 출판사가 아니었다.'나'는 자신이 '살인의 얼개'를 짜주는 줄도 몰랐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킬러'가 돼 있던 것.
2024년 영국 최고 권위의 대거상(Dagger Prize) 후보작에 오른 임성순 작가(사진)의 '컨설턴트' 줄거리다.대거상은 추리 소설 분야의 세계적인 상으로,7월 4일(현지시간) 수상 여부가 발표된다.임 작가의 '컨설턴트'는 대거상 주인공으로 뽑힐 수 있을까.죽음에 관한 사유로 가득한 이 소설을 밑줄을 그으며 살펴봤다.
'나'는 소설 쓰기를 대가로 수표를 받는다.PC통신에 접속해 한때 인기 있는 온라인 작가가 되길 희망했지만,사실 실패한 작가였던 그에게는 큰돈이었다.'나'가 소설로 계획을 세우면 '회사'는 전문가를 통해 의뢰받은 사람을 죽였다.
'나'의 죽음은 그냥 흔한 테러가 아니다.암살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자도,유족도,경찰도 몰라야 한다.가령 이런 식이다.
첫 번째 살인은 인슐린 주사를 조작한 쇼크사였다.당뇨를 가진 한 정치인은 투약 때 자신이 느끼지 못할 만큼 주사기가 아주 조금씩 커져 있었다.그가 자동차 앞에서 쓰러져 죽었을 때 그는 정량의 4배나 되는 인슐린 약물을 스스로 투약한 상태였다.주사기만 매일 조금씩 키웠을 뿐인데,그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는 채 죽었다.항의하는 유족도,수사하는 형사도 없었다.
성도와 주기적으로 불륜을 저지른 목사의 암살은 좀 까다로웠다.'나'는 목사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죽일까 생각하던 끝에 간단한 방법을 고안해냈다.목사가 느낄 '수치심'을 이용하기로 한 것.목사가 모텔에 들어갔을 때 객실의 초인종을 누르게 했더니 그는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렸고 실외기의 녹슨 걸쇠 때문에 떨어져 즉사했다.
'나'는 회고한다.죽음조차 하나의 서비스 상품이 된 세상을.
'나'에게 암살은 일종의 '구조조정'이다.그래서 그의 명함엔 이렇게 적혔다.'컨설턴트.'
"나는 죽음을 비극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로 만든다.세상엔 많은 구조조정이 있지만 그중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조조정이기 때문이다.(중략)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는 않는다.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일 뿐이다."(23쪽)
스릴은 이제 시작이다.어느 날 '나'가 도착한 서류를 펼쳤을 때 익숙한 얼굴 사진이 보였다.암살 대상은 '나'의 전(前) 여친.헤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었고 살을 섞었던 사람이었다.흉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선사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면밀히 그녀의 자료를 분석했다.(중략) 젊은 사람의 죽음 중 비교적 깔끔한 것이 자살이다."(156쪽)
소설 '컨설턴트'에는 해외 암살사(史)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스탈린과의 권력 싸움에서 패한 트로츠키는 등산용 피켈이 정수리에 꽂혀 죽었다.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암살자들을 위한 낙원을 만든 산상의 노인이 있었다.암살을 뜻하는 영단어 어새신(assassin)은 인도 대마초로 만든 마약 해시시(hashish)에서 왔다고 임 작가는 쓴다.
올해 대거상 번역 소설 부문(Dagger for Crime Fiction in Translation)에 오른 작품은 총 6편으로,쵸단 캘빈클라인임 작가의 '컨설턴트',후안 고메스 후라도의 '붉은 여왕'(스페인),아사 라르손의 '우리 조상들의 죄'(스웨덴),쵸단 캘빈클라인클로드 메디의 '아무것도 손실되지 않습니다'(프랑스),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의 '먹이'(아이슬란드),모드 벤투라의 '내 남편'(프랑스) 등이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