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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전도사인 래리 핑크마저 회의론자로 변모
한국 재계,ESG 경영에 4년이나 몰두했지만 성과 미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종말론이 확산하고 있다.대내외적 악재로 인해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ESG 경영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핵심 경영 트렌드로 자리 잡았던 ESG 경영이 기존 사업전략과 달리 뚜렷한 성과지표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재계에서는 ESG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구조조정만 남을 뿐이라며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5월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년도 제1차 ESG 경영위원회에서 위원장인 손경식 경총 회장(왼쪽 다섯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5월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년도 제1차 ESG 경영위원회에서 위원장인 손경식 경총 회장(왼쪽 다섯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SG 경영은 2020년 1월부터 세계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이자 ESG 전도사로 꼽히는 래리 핑크 회장의 서한으로부터 시작됐다.그가 ESG 경영을 실시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투자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국내외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화석연료 기업을 향한 투자를 중단하고 ESG를 투자 기준으로 삼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환경 및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미국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의 이사 3인을 교체하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화석연료 기업의 경영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엑슨모빌은 당시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ESG 경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기업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석유 판매가 본업인 엑슨모빌이 탄소 배출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의 영업 포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래리 핑크 회장이 ESG를 기준으로 엑슨모빌의 실제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물론 유럽,우리나라 등에서도 ESG 경영 광풍이 불었다.그의 서한으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금,많은 국내 기업집단 역시 ESG 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간한 '2023 K기업 ESG 백서'에 따르면 매출 기준 국내 상위 200대 기업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곳은 162개 기업이다.이 중 92.0%가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설치했고,ESG 전담 조직과 별도로 유관부서가 참여해 ESG 경영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운영 중인 곳도 보고서 발간 기업 중 74.1%에 달했다.

국내 기업이 직면한 ESG 이슈는 환경 분야가 41%로 가장 많았다.이어 사회(37%),epl 토트넘 일정거버넌스(22%) 순으로 나타났다.분야별로 세부적인 중요 이슈는 환경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 수립(40%)'이,epl 토트넘 일정사회에서는 '안전·보건 관리(35%)'가,거버넌스에서는 'ESG 거버넌스 구축 및 ESG 경영 추진 지속(41%)' 등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

아울러 기업집단은 경영지표에 ESG 요소를 적극 활용·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경영진 및 조직의 핵심성과지표(KPI)에 ESG 요소를 반영한 기업도 76%에 달했다.한경협은 "우리나라의 경우 ESG 공시나 ESG 경영이 의무사항이 아님에도,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ESG 경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거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도 상승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지배하던 ESG 경영 열풍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불황 지속과 투자심리 위축에 따라 빠르게 식어가는 모양새다.래리 핑크 회장도 과도한 ESG 경영이 기업의 재정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ESG는 사기'라고 꼬집은 바 있다.그는 과거 S&P 500 ESG 지수에서 테슬라가 제외되자 이같이 비판했다.S&P는 충분하지 않은 저탄소 전략과 열악한 근로환경,인종차별 등을 들어 테슬라를 ESG 지수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ESG 경영 트렌드,기업 운영에 부담 키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이 연이어 ESG 경영보고서를 발간하며 관련 역량을 강화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속내는 '족쇄'나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한다.환경이나 사회 등에 집중한다고 해서 실적 및 주가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 등을 위해 내키지 않더라도 ESG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며 "기존 재무 지표를 챙기기도 어려운 시기에 비재무적 수치인 ESG가 경영 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기업 운영 부담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래리 핑크는 물론,머스크까지 ESG 경영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자 금융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세계적으로 ESG 관련 투자가 줄어드는 동시에 '안티 ESG 펀드'까지 등장하고 있다.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ISA)에 따르면 2012년 13조3000억 달러였던 ESG 관련 투자는 2020년 35조30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반면 2022년에는 30조3000억 달러로 2년 새 약 5조 달러가 줄어들었다.ESG 경영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반면 안티 ESG 투자는 많아지는 추세다.미국 자산운용사 스트라이브에셋매니지먼트의 '반ESG 펀드'가 대표적이다.스트라이브는 '영리 기업의 목적은 주주 가치의 극대화로 투자 결정에 수익률 이외에 다른 요인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며 ESG 관련 요소들이 경영에 개입되는 것을 반대했다.해당 펀드에는 많은 자금이 모여들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세계적 흐름을 주시하며 ESG 경영의 종말이 예상보다 빠르게 올 것으로 보고 있다.ESG를 챙기기에는 기업집단이 마주한 경영환경이 어느 때보다 어려워서다.삼성전자는 2021년 자체 ESG 시스템인 친환경 평가지표 'SEPI' 개발에 나섰다.SEPI를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환경 지표로 활용하기 위해서다.그러나 지난해 반도체 업황 부진을 겪으며 적자를 기록하는 등의 어려움으로 SEPI 개발을 중단하고 내부 평가 지표로만 활용하기로 했다.사실상 ESG 경영에 대한 의지를 꺾은 셈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ESG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구조조정만 남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수많은 회사가 ESG 전담팀과 인력을 마련했지만,최근 해당 조직을 축소하거나 업무를 통합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ESG를 향한 정치권의 비판도 ESG 경영의 종말론에 힘을 싣고 있다.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안티 ESG 흐름은 이미 월가를 주름잡는 실정이다.미국에서 지난해 발의된 안티 ESG 법안은 총 165개다.대표적으로 미국 상원은 ESG 투자 금지 법안을 승인했고,하원은 기후 예산 삭감 법안을 통과시켰다.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공약의 하나로 안티 ESG를 외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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