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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해외파 조각가’로 둔갑
2019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천사상(天使像) 미술관 개관식이 열렸다.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이 섬 곳곳에 천사상 318점을 설치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천사상 미술관의 대표 작가이신 최바오로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최씨가 단상에 섰다.그는 어눌한 말투로 “이곳에 설치된 천사상이 모든 이들의 수호천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박우량 신안군수는 최씨에게 명예 군민증을 전달했다.
신안군이 소개한 최씨의 이력은 화려했다‘파리 제4대학 졸업‘베를린대학 예술학부 교수‘피렌체 미술관 전속 작가‘파리 제7대학 예술학부 명예교수’등.신안군은 그에 대해 “6·25전쟁 때 고아가 되고 이탈리아 유명 화가의 양아들로 입양됐다” “프랑스·독일·로마 목공방에서‘리틀 로댕’으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허위였다.그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사기 혐의로 복역한 적이 있는 전과자였다.해외에서 조각가로 활동한 적도 없었다.
24일 대구지법 판결문에 따르면,스포츠 토토 축구최씨는 1953년생이다.초·중·고교를 졸업하지 못했고,오세훈 도박10대 초반부터 서울 중구 신당동의 철공소,목공소 등에서 일했다.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상습 사기죄 등으로 여러 차례 복역했다.수감 중이던 1990년 중반 검정고시를 쳐 고교 졸업 학력을 취득했다.
학교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이력서에 1992년 파리 제7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했다고 썼지만,실제로는 청송보호감호소(청송교도소)에서 사기 등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최씨는 “일본 나가사키 피폭 위령탑 조성에 참여했고 광주 비엔날레에도 출품했다”고 주장했지만 허위였다.
그는 2009년 강원도 영월군에 영월 종교미술 박물관을 세우고 대표 작가 겸 관장으로 활동했다.2013년 영월을 방문한 박우량 신안군수와 처음 만났다.박 군수는 “박물관에 가보니 천사 조각상이 많았다.신안에 전시하면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최씨는 2018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를‘평화의 섬,천사의 섬’으로 꾸미고 싶다”며 신안군에 조각상 설치를 제안했다.이에 신안군은 19억원을 들여 하의도 곳곳에 천사 조각상 318점을 설치하고 2019년 6월 천사상 미술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최씨가 설치한 조각상 318점은 필리핀과 중국의 조각 공장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신안군 관계자는 “여러 언론이 최씨에 대해 전쟁고아,룰렛 룰렛화려한 파리 학력,비엔날레 출품,유명 화가 애제자 등으로 소개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에게 당한 건 신안군뿐이 아니었다.최씨는 2022년 11월 경북 청도군에 접근했다.당시 최씨는 김하수 청도군수에게 “저는 모친이 청도 출신이고 신안 하의도에 천사상 미술관과 순례길 등 최고의 관광 명소를 만든 조각가입니다”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남들은 저를 세계적인 조각가니 천재니 하고 추켜세워 주지만 실제로는 아주 보잘것없는 촌로입니다” “로마 라테란의 12사도상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성상을 군수님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경기 여주시와 안성시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편지마다 모친의 고향이 달랐다.여주시에 보낸 편지에선 모친의 고향이 여주라고 했다.김 군수가 관심을 보이자 최씨는 김 군수와 청도군 공무원들을 자신의 박물관으로 초청했다.“2억3800만원 상당의 조각상 9점을 청도에 기증하겠다”며 김 군수의 환심을 샀다.군수실을 3차례 찾아가기도 했다.이후 청도군은 최씨 작품 20점을 2억9700만원에 샀다.그러나 최씨 작품은 중국의 조각 공장에서 수입한 중국산이었다.김 군수는 “인터넷에 세계적 조각가라고 나와 있고 박물관도 있어 자세한 경력을 더 물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종교계에도 불똥이 튀었다.최씨 조각은 경기 안성 천주교 미리내 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성당 등에도 설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대치동 성당 관계자는 “우리도 최근에야 최씨가 사기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며 “철거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안군은 최씨의 이력을 두고 논란이 일자 작년 2월 최씨를 경찰에 고발했다.청도군 사건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 형사12부(재판장 어재원)는 지난 20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재판부는 “최씨가 자신을 세계적 작가인 것처럼 속여 수억 원을 가로챘다”고 했다.그러면서 “청도군 역시 최씨의 학력과 경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다만 신안군 사건에 대해서는 “경력을 속인 것은 맞지만 사기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최씨 이력을 쓴 표지석을 없애고 천사상 철거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미술계에선 최씨에 대해‘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모든 이력이 허위이고 정상적인 조각가라고 볼 수 없는 인물”이라며 “이런 허술한 조각들은 철거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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