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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4년 뒤,그는 무척 편안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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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91)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지난 24일 별세했습니다‘별세’라는 말에서 “도대체 왜 간첩이 죽었는데‘별세’라는 말을 쓰느냐”는 댓글이 달렸습니다만,신문을 자세히 보시면 그 사람이 누구든‘별세’라는 말을 디폴드값으로 쓰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사망’은 주로 사건·사고 기사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옌볜 출신의 북한인이지만 레바논 국적의 필리핀인으로 위장 입국했던 정 소장이 간첩 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1996년 간첩 활동 적발 전후로 동서문명교류사와 실크로드사 분야에서 독보적 업적을 이룬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2000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정치적 활동이나 발언은 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던 것도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부분입니다.물론 강단 학계 일각에선‘유명세 때문에 지나치게 평가된 면이 있다’는 말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죠.
그는 1996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북한 측에 팩스를 보내다가 안기부에 덜미를 잡힌 것으로 알려졌는데,저는 이 발표를 믿지 않습니다.당시 저의 지인 한 분은‘깐수’검거 몇 달 전 출장으로 중동에 갔다가 한 안기부 주재원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귀국하시고 조금 있으면 큰 거 하나 터질 겁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간첩 활동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제가‘깐수’를 만난 것은 2004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그는 신라 승려 혜초가 쓴‘왕오천축국전’에 상세한 주석과 해제를 달아 출간했습니다.사실상 국내 첫‘왕오천축국전’연구서였습니다.출간 기념 간담회가 저녁 시간에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마련됐습니다.출소 이후 언론과 첫 대면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나이 70세였지만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고,간첩이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학자 풍의 점잖은 풍모였습니다.무엇보다 참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간담회 내내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면·복권되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번에‘성동 갑’에서 처음으로 투표(17대 총선)를 했습니다.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더 이상 몰래 간첩 활동을 할 필요 없이 학문 활동만 할 수 있어 좋고,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도 만족한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어떤 의미가 있는 책인가’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혜초는 동양 최초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관통했습니다.그만큼 뛰어난 세계인이었습니다.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중 남아 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천축국에서는 죄를 지어도 벌금만 내고 체형이나 사형을 당하지 않는다는 기록 등,돌리고 슬롯 먹튀8세기 무렵의 인도·중앙아시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중세 세계사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왕오천축국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란 질문에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베이징대 동방학부에서 공부할 때 알게 됐고,1991년 조선일보에‘불초’라는 칼럼을 썼습니다.거룩한 선현을 후손답게 모시지 못한 자괴심을 고백한 내용이었습니다.1996년 한국 고승전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던 한 출판사와‘혜초 평전’을 펴내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받았는데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무산됐습니다.이번 책은 2002년 가을부터 시작했는데 원문에서 누락된 부분도 많아‘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엠 카지노 우회잠깐.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렇게 아카데믹한 고담준론만 이뤄지는 게 맞나?
이것은‘학자 정수일’의‘신간 연구서’에 대해 출판사 측에서 마련한 간담회였습니다.하지만 간첩이었음이 밝혀진 이후 처음 언론과 대면하는 자리에서 이런 것만 물어봐야 한다고?물론 간담회를 주최한 출판사 측에선‘책과 관련한 질문만 해 달라’고 선을 그었습니다.하지만 왜 그걸 따라야 하는 거지?
저는‘본 질문’을 위해 먼저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혜초의 시‘달 밝은 밤에 바라보는 고향길(월야담향로·月夜瞻鄕路)/ 하늘가 북쪽에 있는 내 나라(아국천안북·我國天岸北)’란 구절에 나타난 고향은 정녕 남과 북이 따로 없는 한 나라였다고 서문에 썼습니다.분단 현실에서 고초를 겪었던 선생의 심정이 담긴 것입니까?
그는‘알아봐 줘서 무척 기쁘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짓곤 말했습니다.
“바로 보았습니다.책 다른 곳엔‘연고도 없는 저 파리의 한 도서관에 쓸쓸히 유폐되어 있는,해피머니 온라인 상품권 교환망향의 눈물이 갈피마다에 밴 그 선현의 유품을 그의 고고지성(呱呱之聲)이 메아리친 이 땅에 돌려달라고 말할 때가 지금이 아니겠는가’라고 쓰기도 했습니다.오랫동안 해외를 떠돌다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혜초를 보며 내 자신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를 떠돌았던 것은 신분을 위장해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목적이었을텐데,그럼 그건 자의가 아니었다는 뜻을 비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제 좀더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다른 삶을 살았는데,지금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남북관계도 좋아지고,민주화되고… 감옥에 있어 보니 공부하기엔 거기가 더 좋았습니다.요즘은 고려대 강의도 나가고,정선 카지노아내와 편안하게 지냅니다.”
가만,이거 뭔가 빠진 것 같은데?대한민국 체제에서 편안하게 지낸다는 말을 하기 전에‘본의 아니게 많은 분들을 오래도록 속이고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침내 저는 꼭 하고 싶었던 그 질문을 스트레이트처럼 날렸습니다.
-최근 송두율씨와 자주 비견되기도 했습니다.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두율은 당시 독일 뮌스터대 교수였으며 한국에 들어온 뒤‘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로서 간첩 활동을 하고 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질문에서 송두율을 언급한 것은 정수일 자신의 과거 활동에 대한 평가 또는 자책을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하자마자 간담회장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가라앉았습니다.주최측의 한 인사는 “또 그런 질문을 하면 아예 질문을 못하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고,타사 기자 중 한 사람은‘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 저를 노려보기도 했습니다.평소 같으면 “무슨 권리로 기자의 질문을 중간에서 막느냐”고 거세게 항의했을 것이지만 이날은 꾹 참고 정씨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저는 곧 회사로 들어가 다음날 아침 신문에 이 인터뷰를 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씨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자꾸 그런(송두율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는데… 저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만나본 적도 없고요.”
개인적으로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은 아닌데.시계를 보니 지금 들어가야 겨우 기사를 써서 신문에 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저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뒤 식당을 나오면서 뛰기 시작해 회사로 들어왔고,약 15분 만에 기사를 작성해 서울판보다 먼저 인쇄되는 지방판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다음날 신문에서 정씨의 인터뷰를 실은 신문은 조선일보밖에 없었습니다.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연구자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느냐”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시간이 지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아무리 마감 시간이 급하다 해도,또 아무리 주최측에서 곤혹스러워할 질문이라 해도‘간첩 활동은 자의에 의한 것이었나‘무슨 훈련을 받았나‘무슨 정보를 북에 전달했나‘주변 사람들과 국민에게 미안하지는 않는가’같은 질문을 하긴 했어야 했다는 자책을 했습니다.물론 누구도 제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본인이 제대로 대답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었지만 말입니다.이게 다 벌써 20년도 넘게 지난 일입니다.그는 학자로서는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학자‘로만’볼 때는 말입니다.그러나 자신을 분단 체제의 희생자로 여긴 것에 비해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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