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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첫 방송 된 tvN‘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에서는‘전교 1등 아들의 모친 살해 사건’주제가 전파를 탔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이 사건은 2011년 11월 23일로 돌아간다.고3 수험생이었던 강준수(체포 당시 18세)는 안방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사망하게 한 뒤 어머니 시신과 8개월간 동거했다.
존속살해의 최소 형량은 7년이지만 준수는 징역 3년을 받고 조기 출소했다.
준수는 “공부와 관련해서 기억나는 거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쉬는 날 기준으로 11시간 정도 공부했다.재미있었다.개인적으로 좋아했다.공부하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입을 뗐다.
문제는 준수가 커가면서 어머니의 성적에 대한 압박과 체벌이 심해진 것이다.
준수는 “중1 때 첫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했다.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전했는데 혼나면서 맞았다.전교 2등으로 만족했다고,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하시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약간 억울했지만 다음 시험에서 1등 해서 기쁘게 갔는데‘전국 중학교가 5000개인데 넌 5000등으로 만족할 거냐’고 또 혼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웬만큼 어렸을 때 종아리를 회초리로 맞았다.맞는 매가 변했다.초4 때는 알루미늄 노가 찌그러지도록 맞았고,5~6학년 때는 대걸레 봉으로 맞았다.중학교 때는 나무로 된 야구 배트로 맞았다”고 고백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힌 준수의 아버지 강 모씨는 “애가 목욕할 때 매 맞은 흔적을 본 적이 있다.회초리 자국이 있어서 되게 많이 아내와 싸웠다.근데 아이 엄마의 성향이 나보다 강하다 보니까 거기서 내가 그냥 졌다.알면서도 싸워봐야 내가 지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준수는 “제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저의 20년 교육 플랜을 짜고 시작했다더라.그걸 들었을 때 영화‘트루먼 쇼’주인공처럼 충격받고 섬뜩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별거 중이던 아버지가 외도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자,엄마의 공부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어느 순간 준수는 공부도 싫어졌고,외고 입시에도 떨어졌다.그때부터 준수는 7번 아이언 골프채로 매를 맞았다.
준수는 “준비하라고 하면 바지를 갈아입었다.맞을 때 입는 바지가 있었다.엉덩이 부분이 피로 절여졌는데,피 나면 빨아야 하는 게 감당이 안 돼서 빨지도 않고 계속 그걸 입고 맞았다”며 “기대고 자고,엎드려서 자다 걸리면 혼났다.시간을 재서 40분에 한 번씩 정산하듯이 맞았다”고 털어놨다.
사건 발생 2개월 전,아빠는 정식으로 이혼 통보를 했다.엄마는 부쩍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사건 발생 3일 전,밥과 잠이 금지되는 체벌이 추가됐다.
사건 당일,우즈베키스탄 대 일본밤새 9시간 동안 골프채로 몇백대를 맞은 준수는 고통을 참고 의자에 앉았다.그는 “그때 탁상 달력이 눈에 들어왔는데 가슴이 철렁했다.(달력에 적힌) 학부모 입시 상담 날을 보고 모든 게 다 끝나겠다고 생각했다.엄마한테 맞아 죽겠구나 싶었다.너무 무서웠고 그 다음으로 죽기 싫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렇게 엄마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준수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사람 같지 않게 살았다.어머니를 옮긴다거나 숨긴다는 생각은 안 했다.처음에는 (안방) 문도 안 닫았는데 시간이 지나 냄새가 나서 문을 닫고 거실 불을 켜고 살았다.죄책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인생을 갈아 넣어서 저를 키워주셨다.저는 어머니께서 점점 더 힘들어하실 때,점점 더 저한테 푸시했을 때,우즈베키스탄 대 일본이제야 해석되는 건 어머니께서 점점 더 불안하고 두려워지셨다는 거다.어머니께 내가 아니어도 어머니는 대단하고,우즈베키스탄 대 일본귀한 사람이고,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위로해 드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만약에 돌아갈 수 있다면,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담담히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