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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보다‘도전’을 선택해보자
고등학교 여학생 G는 수행평가가 있는 날은 등교하지 않는다.공부도 열심히 하고 머리도 좋아 필기 성적은 좋은 편이지만 수행평가가 있는 며칠 전부터 배가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긴장을 한다.급기야 평가 당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어나서 책을 소리 내서 읽다가 너무 떨려서 창피를 당한 적이 있다.이후 친구들이 자신을 한심하고 약한 아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그 이후로는 남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그때 떨렸던 기억에 사로잡혀 발표는 피하고 꼭 해야 하는 수행평가만 겨우 하는 정도였다.하지만 고등학교에선 수행평가에 더욱 긴장되고 피할 수가 없어지니 아예 등교를 포기하는 거다.
긴장과 불안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믿음이 있다.첫 번째가 불안을 비정상이라고 보는 거다.하지만 불안이나 공포 반응은 생명체가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습득한 정상적인 진화의 산물이다.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자연환경에서 불안,공포 반응이 없었다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혀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두 번째가 불안이 취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하는 거다.불안이 많다는 것을‘약함’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그래서 남들에게 불안 반응을 들키는 것을 꺼리고 숨기고 감추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거다.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역설적이지만 불안이 높은 사람이 조금 더 진화한 유형의 사람인데도 말이다.
세 번째가 불안은 관리,통제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보는 거다‘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해‘불안의 요인은 없어져야 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억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높아지게 마련이다.수영장에서 비치볼을 물 위로 올라오게 하지 않으려고 깊이 눌려 놓을수록 더욱 위로 솟구쳐 튀어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이런 잘못된 믿음은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G도 마찬가지였다.친구들에게 불안해 보이는 것이 싫으니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보려 노력했지만,몰바그러면 그럴수록 앞에 나가면 더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나중에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숨이 가빠지고 호흡도 곤란해졌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공포감은 더욱 커졌다.여기에다 자신은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낸 것 같은 수치심이 더욱 괴롭혔다.차라리‘여러 사람 앞에서 떨리고 긴장되는 건 당연한 거야.떨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면 어때.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사실은 떨고 있는 건데.이 상황에서 떨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많이 떤다고 내가 약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오히려 진화된 인간이라는 거지’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지금처럼 심해져서 수행평가를 아예 못하고 등교마저 못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았을 거다.자신의 취약함을 내보이기 싫어 아예 상황을 회피해 버리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생각해 보자.물론 학교에 가지 않아 평가 상황을 피한다면 그 순간 떨림과 공포는 피할 수 있었지만,그 편안함이 얼마나 지속하였던가?바로 그다음엔‘내신에 대한 걱정,입시에 대한 걱정,몰바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수십 배 불안이 심해지고,등교하지 않은 죄책감과 회피한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우울해질 거다.삶은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진다.자신의 꿈은 아예 포기하게 된다.그 대가를 미리 생각해 보며‘회피’보다‘도전’을 선택해보자.
불안은‘회피라는 먹이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호랑이’와 같다.초기엔 아기호랑이라 대적할 만하지만,그것을 피하고 도망치게 되면 아기호랑이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며 어미 호랑이로 키우는 것과 같다.지금 아기호랑이와 맞설 것인가?어미 호랑이로 키워 도망만 다니다 일생을 보낼 것인가?지금 이 순간의 불안함이 가장 어린 아기호랑이인 거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몰바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