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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과 (재)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주관."청동기부터 조선까지 사용 흔적 발견"6월 25일 평소 탐방하고 싶었던 문화유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을 방문했습니다.우연히 발굴 현장을 보게 되었는데 담당자가 이날 오후 현장공개 설명회가 있고,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으니 와도 된다고 했습니다.기관의 허락 하에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조사원들의 열정 넘치는 설명과 발굴의 유의미한 성과를 알리기위해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기자말>
지난 25일,랙 슬라이드 선반함안군과 (재)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아래 센터)는 함안 말이산고분군(동구릉) 도항리 571번지 일원의 정밀 발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현장 설명회는 센터의 오재진 팀장과 이재명 조사위원이 진행하였다.
지난 4월 초부터 진행된 이번 조사는 크게 다섯 개의 지점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공개 설명회 현장에서는 출토 유물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해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청동기 흔적부터 조선시대 가마터까지
1지점부터 4지점까지는 둔덕 사이의 골짜기 부분으로,청동기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적 흔적이 발견되었다.
센터는 청동기시대 구의 형태를 바탕으로 곡간부의 물을 경사면 아래쪽으로 모으기 위한 시설로 추정했다.고려시대 구에서는 도기가 출토되었으며,조선시대 구에서는 기와가마 터와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확인되었다.
1호분 - 중소형 규모의 고분
현장 설명회의 핵심은 5지점으로,말이산 고분군 1호분과 2호분이 있는 지점이었다.
1호분은 세 곳의 도굴갱이 발견되면서 최소 세 차례의 도굴이 진행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1호분에서는 다량의 토기와 함께 최소 1명의 순장 흔적이 발견되었다.
1호분의 석곽은 가로 6.7m,세로 1.5m 크기고,남은 봉토를 통해 봉분 규모를 19.4m x 16.8m의 타원형으로 추정한다. 대형 고분의 경우 석곽의 길이가 12,13m 정도 된다.
1호분은 말이산 고분군 중에서는 중소형에 해당하며,전형적인 3분할 석곽 구조를 보였다.
중간 칸에는 피장자를,랙 슬라이드 선반좌우 칸에는 순장자와 유물을 나누어 안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출토 유물로는 마구류,철촉,무기류 등이다.
오재진 팀장은 1호분 석곽 북동쪽 자리에서 발견된 토기 흔적을 바탕으로 1호분에서 최소 네 차례 이상의 제의(祭儀)가 이루어졌을 것이라 말하며,고분이 꾸준하게 관리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호분 토층에서는 동글동글한 흙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이는 석곽의 돌을 쌓고,랙 슬라이드 선반아래쪽에서 점토를 동글게 말아 석곽의 바깥쪽에서 돌 사이사이에 채워 넣으며 석곽을 밀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호분 - 아라가야와 소가야가 혼합된 양상
2호분의 석곽은 5.2m x 0.8m로 1호분에 비해 약간 작은 규모다.
오재진 팀장은 2호분 역시 3칸으로 구분되어 있었지만,양쪽 끝 칸에 모두 순장품을 묻은 점이 특이하다고 강조했다.
북쪽 칸에는 그릇이나 토기 같은 큰 유물들을,남쪽 칸에는 부피가 작은 유물들을 배치했다. 오재진 팀장은 2호분의 피장자가 머리를 북쪽으로 향해 누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호분에서는 철로 된 모(矛),랙 슬라이드 선반금제이식(금으로 된 귀 장식),두 개의 수혈(표면에서 아래로 판 구멍)이 확인되었으며,6세기 중엽의 소가야 토기도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시상(屍床,시신을 안치하는 일종의 받침대)은 피장자가 안치되는 가운데 칸에서만 발견됐다.이어서 센터는 소가야와 아라가야의 양상이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2호분은 1호분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소가야 지역의 고분에 비하면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고 했다.
2호분의 두 개의 수혈에서는 유물이 거의 나오지 않아 현재로서는 어떤 관계인지는 알기 어렵다.다만 오재진 팀장은 2호분 조성 당시 수혈에 뭔가를 묻었는데,그것들이 중간에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함안군은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 함안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가야읍 도항리 571번지 경사면의 시기별 활용 모습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고,또한 말이산 고분군 1호분과 2호분에 대한 기초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외부 채널에도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