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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사고 순직 가장,그리고 남겨진 가족들 "남은 건 잊힘뿐"
안전관리 열악 채탄현장 사망사고 다수
산업중흥 공신 광부,아시안컵 풀버전국가적 예우 소외
석탄 합리화 영향 유가족 518명 남아
1975년 순직산업전사 위령탑 태백 건립
화해계약서 작성 위로금 60만원 남짓
유가족 산재보상금 부족 선탄부 시작
개인광산 광주 도망가 보상 못 받기도
"국가 과업 수행 순직자 지원·배려 필요""나라가 우리를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한때 '순직산업전사'라 불렸던 이들은 1990년대 이후 석탄업의 쇠퇴와 함께 잊혔다.한 순간에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먹고 살기 위해 힘겨운 세월을 견뎌야 했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적,경제적 중심에 있던 이들은 점점 바깥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밀려났고,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사회의 틈 사이에 끼어 소외된 채 살아왔다.
1950년대~1980년대 우리나라는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 산업중흥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몸부림쳤다.그 중심에는 광부들이 있었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따르면,1956년 182만t에 불과했던 석탄 생산량은 1960년 '석탄증산정책 8개년 계획'과 '1차 경제 개발 5개년 사업승계' 정책이 시행되면서 1965년 1000만t을 넘어섰다.약 10년 만에 5배가 넘는 생산량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당시 산업전사로 불렸던 광부들은 이같은 국가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갖춰지지 않은 채 광산에 뛰어들어야 했다.
1967년 2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되면서 석탄 생산 목표량은 1500만t까지 올라갔다.그 덕에 우리나라는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던 시절을 벗어나 세계 4대 산림부국의 신화를 이루게 됐다.그러나 그만큼 광산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도 급속히 늘었다.
1973년 1차 오일 파동으로 국가는 광부들이 감당할 수 없는 목표 달성을 강요했고,그 탓에 1973년 한 해에만 307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폐광지역 순직산업전사유가족협의회에 따르면,1973년까지 열악한 채탄 현장에서 순직한 광부는 1700명이 넘는다.
'순직산업전사'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도 이때부터다.1973년 1차 오일 파동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석탄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를 방문했다.원래는 국가에서 지시한 목표 생산량을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를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으나 현황 보고를 통해 광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광부의 숫자가 1700명이 넘어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들을 순직산업전사로 추서하고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을 건립하도록 주문했다.1975년 태백시 황지동에 건립된 위령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작성된 휘호와 함께 이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사와 같은 것이다.하물며 그곳에서 땀 흘려 일하다 불행히도 희생된 이들이야 말로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제물이라 순국의 뜻이 있는 것이니 우리 어찌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빌지 않을 수 있으랴."
생과 사 빼앗은 탄광… 힘들었다는 말로 표현 안 돼
생업 뛰어든 아이들,공부 못 시켜 가슴 아파
■ 사회의 틈 사이,어둠 속에서 살아온 유가족생업 뛰어든 아이들,공부 못 시켜 가슴 아파
광산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 있다.그 속에는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광부들이 있지만,안으로 직접 들어가기 전까지 바깥에선 이들의 모습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유가족들도 그랬다.광산 사고로 한 순간에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이들은 점점 밀려났다.사회의 보이지 않는 어느 틈 사이,어둠 속까지.
광산 사고로 한 순간에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남편을 잃은 아내는 남편을 삼킨 광산에 들어가 선탄부 직원으로 일했고,자식들 역시 학업을 중단한 채 생업에 뛰어들었다.누구도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소외된 이들은 30여년이 넘는 고된 세월을 힘겹게 버텨냈다.
홍두성(81)씨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광산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그때 나이는 고작 28살.다섯 아이를 홀로 키워내기엔 너무도 젊은 나이였다.홍 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던 시절에 남편을 잃었다.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나물을 캐다 팔았지만 돈이 안 되니까 광산에 들어가 죽기 살기로 일했다"며 "힘들었다는 말로 어떻게 표현이 되겠나.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춘여(75)씨는 가스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당시 광부들은 석탄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이미 위험해서 철거된 탄광까지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엄 씨의 남편도 그랬다.석탄이 많다는 이유로 반장의 지시로 철거된 탄장에 들어간 엄 씨의 남편은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엄씨가 28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엄 씨는 곧바로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선탄부 임시직으로 취직했다.월급은 고작 4만원 남짓.아이 셋을 겨우 먹여 살렸지만,아시안컵 풀버전자식을 반듯하게 키워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지금도 가슴에는 깊은 한이 남아있다.엄 씨는 "밤 12시부터 일하면 아침이 돼야 집에 오는데 애들이 씻지도 못하고 밥도 굶고 가는 일이 허다했다"며 "한 번은 선생님이 편지를 썼는데 애들 세수를 시켜서 학교를 보내라고 하더라.침 자국이 있더래.지금 생각해도 우리 새끼들이 너무 불쌍하게 컸다"고 했다.
심옥자(73)씨의 남편 역시 사람이 들어가선 안 되는 철거된 곳에 들어갔다가 탄광이 무너져서 목숨을 잃었다."반장이 탄 욕심에 들여보내서 둘이 들어갔는데 한 사람은 나오고 우리 남편은 못 나왔다"며 "5일 만에 시체가 돼서 나왔는데 지열 때문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머리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있었고,지열 때문인지 손으로 머리를 한 움큼 뽑은 자국이 있었다"고 했다.심 씨는 "그런데 사람이 죽으니까 광업소에서 한 달도 안돼서 사택도 비우라고 하더라"며 "나이 27살에 초등학교 졸업도 못해서 까막눈에 살아온 역사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 사라져가는 순직산업전사와 유가족들
폐광지역 순직산업전사와 유가족들은 잊히다 못해 사라져가고 있다.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유가족들은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고,이제 남은 4개의 폐광지역에는 187세대 518명의 유가족만이 남아있다.
이들은 사회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턱없이 부족한 지원 속에서 힘겹게 살아왔다.당시 순직 광부의 유가족은 산재 보상금으로 200만~300만원 가량을 받았지만,그 돈으로 가정을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장례를 치르고 나면 남는 돈은 겨우 100만~150만원 남짓.이 돈으로 유가족들은 살아갈 수 없었기에 아내는 선탄부에서 평생을 일해야 했고,자녀들 역시 학업을 중단한 채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그 탓에 가난은 대물림됐다.
심옥자 씨는 "자식들도 공부를 못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노가다 일을 하고 있는데 애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순직산업전사유가족회에 따르면,당시 사갱(개인 광산)에서 순직한 광부들도 많았지만 광주들이 도망가는 일이 허다해 위로금 조차 받지 못한 유가족들도 많다고 했다.이에 유가족들은 원통하기만 하다.엄춘여씨는 "언제는 산업전사라고 하더니 개죽음도 못하게 죽었으면 그만큼 나라에서 인정하고 생각을 해줘야 하지 않냐"며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다 지원을 해주는데 우리만 아무 지원도 없이 힘들게 살아왔다"고 했다.
민분자씨는 "그동안 유가족들이 많이 죽었다.이제 남은 사람도 얼마 없다.나라가 우리를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창규 폐광지역 순직산업전사유가족협의회장은 "광부들이 캐낸 석탄으로 용광로의 쇠를 녹이고 발전소의 전기를 만들어 국가의 기간산업을 일으키지 않았나.당시 광부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자 국가 사회발전의 1등 공신으로서 산업전사로 불렸지만 언제부턴가 잊혀져왔다"며 "이제라도 국가적 과업수행으로 희생된 순직산업전사들에 대한 예우와 함께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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