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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맞서 항일 독립투쟁을 벌인 의병들의 문서가 1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최근‘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을 각각 환수했다고 14일 밝혔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이다.1907년 조직된 연합 의병 부대인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1855~1908) 등이 쓴 글,의병장 최익현(1833~1907)의 서신 등이 포함됐다.
문서는 가로로 길게 이어 붙인 뒤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다.총 2개로 구성된 두루마리는 모두 펼쳤을 때 가로 길이가 각각 406.5㎝,569.5㎝에 달한다.국가유산청과 재단은 각 두루마리 첫머리에 쓴 글을 볼 때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개천장치(芥川長治)가 이 문서들을 수집한 뒤 1939년 지금의 형태로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천장치는 각 두루마리에‘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檄文)’이라고 제목을 달았다.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의병 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인석(1842~1915)의 시문집을 만드는 현장을 급습한 뒤‘다수의 불온 문서를 압수’했다고 기록한 부분도 있다.당시 의병 활동을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감시했던 일제의 민낯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서 중에는 의병들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도 있다.13도 창의군의 제2대 총대장이었던 허위가 붙잡힌 190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는 허위의 체포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항전 의지를 다잡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의병장 노재훈이 쓴 문서에는 “어찌 각골명심(刻骨銘心·뼈에 새길 정도로 마음속 깊이 새겨 두고 잊지 아니함)해 흥복(興復)의 희망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겠습니까?”라는 글이 있다.
의병 관련 문서는 일본의 한 고미술 거래 업체가 소장하던 것으로 전해졌다.국가유산청은 올해 7월 복권기금을 통해 유물을 산 뒤,최근 한국으로 들여왔다.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다.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멜 스펙트럼식민 탄압의 잔혹성과 3.1운동의 원인 및 전개 과정을 정리했다.
재단은 “편찬 당시 총 100질이 제작됐으나 현재 완질로 전하는 것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뿐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각 권 첫머리에 3·1운동 민족대표 중 한 명인 김병조(1877~1948)의 인장(印章)이 찍혀 있다.이 자료는 지난 5월 재미동포 개인 소장자가 조건 없이 재단에 기증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 설명회를 열고‘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한일관계사료집‘조현묘각운’(鳥峴墓閣韻) 시판 등을 공개한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이번에 공개하는 문화 유산은 단순히 국외에 있던 문화 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온 물리적 회복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값진 성과”라며 “정부와 민간의 협업,멜 스펙트럼그리고 소장자의 관심과 선의가 모두 맞물려 가능했던 적극행정의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