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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22명 중 15명이 어르신… 경북 김천시 증산초교 가보니
경북 김천시 증산면.주민 960명이 사는 작은 산골 동네다.지난 5일 이곳에 하나뿐인 학교 증산초등학교에 들렀다.오전 8시 50분.21인승 노란색 스쿨버스 문이 열리자 책가방을 둘러멘 할머니·할아버지 10명이 차례로 내렸다.“학생 여러분,혈압부터 재세요!” 선생님 정연우(37)씨가 소리치자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 측정기로 차례차례 혈압을 쟀다.
증산초는 어린이 초등생보다 노인 초등생이 많은 학교다.전교생 22명 중 15명이 만 65세 이상이다.할머니가 14명,할아버지가 1명이다.이들의 평균연령은 79세,65세가 막내다.
‘노인이 다니는 초등학교’어색한 말이지만 인구 유출 문제가 심각한 경북에서는 울진 온정초에 이어 두 번째다.
동네 노인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일은 올해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이면서 생겼다.1980년대 600여 명이나 되던 증산초 학생은 올해 7명까지 줄었다.농사짓던 젊은이가 죄다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경북에서는 학생이 15명 이하로 줄면 분교나 폐교 대상이 된다.1928년 문을 연 96년 전통 초등학교가 문 닫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증산초가 문을 닫으면 그나마 있던 학생들은 고개를 넘어 10㎞ 이상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를 다녀야 한다.스쿨버스로 30분 이상 걸린다.
이에 마을 이장들과 교사들이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김창국 증산면 이장협의회장은 “학교마저 사라지면 안 그래도 쪼그라든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했다.그렇게‘노인 학생이라도 받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마침 경북도교육청은 2022년 노인도 교장이 허가하면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증산면 마을 11곳 이장들이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초등학교 졸업장 따고 싶은 분 없으시냐”고 수소문했다.그렇게 노인 50여 명이 지원했고 면접을 거쳐 15명을 뽑았다.
지난달 27일 열린 입학식에는 평균 연령 79세의 노인 신입생과 이들의 자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신입생 강순덕(86) 할머니의 딸은 교실 벽에‘똑똑한 우리 엄마,더 똑똑해지시겠네요’라고 쓴 쪽지를 붙였다.어린이 학생의 부모들도 노인 신입생의 입학을 반겼다.학부모 조영우씨는 “할머니·할아버지 덕에 아이들 학교의 폐교를 막았다”며 “아이들도 어른 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머니·할아버지에게는 평생 학업의 한을 푸는 계기가 됐다.아내와 함께 입학한 반장 이달호(80)씨는 “그동안 감사패,롤 실시간공로패는 많이 받았지만 학교 졸업장이 없는 게 평생 한이었다”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고 했다.최고령인 엄순영(89) 할머니는 “글을 배워서 손주들한테 문자도 보내고 싶네예” 하며 웃었다.
고령 학생들이 입학하자 곳곳에서 기부금이 왔다.이달호씨 자녀 5명은 100만원씩 500만원을 기부했다.증산면 이장 11명도 10만원씩 110만원을 모았다.고향을 떠난 증산초 졸업생들도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았다.그렇게 모인 돈이 4000만원이나 됐다.학교 측은 “낡은 책걸상을 바꾸고 학용품과 교재 사는 데 쓸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1교시 수업은‘현충일의 의미 되새기기’였다.그림 그리기,롤 실시간종이 접기 등 활동 수업은 할머니·할아버지와 아이들이 합반으로 한다.이달호씨가 손을 번쩍 들더니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부친의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놨다.“6·25전쟁 때는 말이지예 우리 동네가….”
이어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손주뻘 되는 동기들과 무궁화를 그렸다.할머니들이 예쁜 무궁화를 척척 그려내자 아이들이 “우리 할머니 최고!”라면서 손뼉을 쳤다.박도연(7)군은 춤을 추며 재롱을 부렸다.
2교시는 수업 진도가 달라 초등학교 1학년인 할머니·할아버지는 한글 모음 쓰기를,1·2학년인 어린이 학생은 한글 단어 쓰기 수업을 했다.할머니·할아버지 학생들은 연습장에‘ㅗ’자를 수십 번씩 쓰고 소리 내 읽었다.
“소리 내서 읽어야 빨리 늡니데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정연우 교사는 “어르신들은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하실 때도 있지만 집중력이 대단하다”며 “실력이 쑥쑥 늘어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