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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의 반란' SK하이닉스,HBM 시장 선점
오판으로 뒤처진 삼성전자,반격 준비 시동
"엔비디아 주도권 뺏겠다" 연합군까지…경쟁 격화
커지는 HBM 존재감
전 세계를 강타한 AI(인공지능) 열풍은 반도체 업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현재 다수의 빅테크 기업은 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AI 모델 고도화에 앞장서고 있는데요.AI 모델 작동에는 두뇌 역할을 하는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필요합니다.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하는 GPU 옆에서,데이터를 저장하고 빠르게 전송하는 역할을 하는 게 HBM(고대역폭 메모리)이고요.이렇게 GPU와 HBM 여러 개를 묶은 것을 'AI 가속기'라고 합니다.파라미터 수가 조 단위에 이른 현재의 AI 모델에는 빠질 수 없는 존재죠.
메모리 업계에서는 HBM의 흥행이 이례적이라고 분석합니다.HBM의 높은 가격 때문인데요.실제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의 판매 단가는 기존 D램의 몇 배,DDR5의 약 5배에 달합니다.
SK하이닉스 연구원 출신 정인성 IT 칼럼니스트는 기고문을 통해 "본래 메모리 비즈니스의 덕목은 '매해 같은 용량을 더 싸게 파는 것'이 핵심이었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며 "메모리에 수백,수천만원의 지출을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비용이었지만,부가가치가 높은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HBM 가격은 '고작' 수백만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신기술로 인해 '대역폭과 총용량'의 가치가 '용량당 가격'의 가치를 넘어선 것"이라며 "IT 환경의 변화는 비즈니스의 가정 자체를 뒤집어 놓을 수 있다"고 부연했죠.
영원한 1위는 없다
메모리 업계 1위였던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밀린 것도 이같은 비즈니스 환경의 흐름을 놓쳤기 때문이었는데요.최근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에서 HBM을 앞세운 SK하이닉스에 밀려 주도권을 뺏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처음부터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힘을 못 썼던 것은 아닙니다.SK하이닉스는 지난 2013년 12월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했는데요.삼성전자는 이에 맞서 2015년 10월 HBM2를 개발,SK하이닉스보다 빠른 같은 해 12월 양산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당시 DS부문을 맡고 있던 김기남 전 부문장이 2019년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하는 오판을 내리고 마는데요.HBM은 일반 D램 대비 다이 사이즈가 2배 크기 때문에 많은 캐파(CAPA)가 필요합니다.하지만 당시 수익을 크게 내는 일반 D램 대비 HBM의 수요는 많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삼성전자는 비용 대비 수요가 적은 HBM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봤죠.
삼성전자의 HBM 연구개발팀 해체로 당시 연구 인력 상당수가 SK하이닉스로 이직하게 되는데요.업계에서는 이때 삼성전자가 HBM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줬다고 평가합니다.
향후 전망도 긍정적입니다.SK하이닉스는 지난 2022년 10월 엔비디아에 HBM3를 인증 완료해 양산 중입니다.다음 세대 제품인 HBM3e는 지난 3월 인증을 완료해 양산·판매를 시작했죠.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객사들은 신제품 출시 전부터 부품 구매를 시작해 초기 빌드를 진행함으로써 안전 재고를 미리 확보한다"며 "고객사 인증 일정에 맞춰 제 1공급사로 선정되는 것이 판매 수량 확보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므로,HBM3e까지는 SK하이닉스가 우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후발주자의 미션 "엔비디아를 넘어라"
이에 비해 후발주자로 시장에 재진입한 삼성전자는 아직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요.현재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HBM3E 퀄 테스트(최종 신뢰성 평가)를 진행 중입니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삼성전자가 발열과 소비전력 등의 문제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삼성전자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부인에 나섰죠.
이어 잭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이 소문에 대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반박하며 "(테스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며,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그러면서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틴게일 전략마이크론과 협력하고 있으며 3사 모두 우리에게 메모리를 공급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HBM이 엔비디아 제품에 탑재될 가능성을 시사했죠.
삼성전자는 최근 HBM 전담팀을 부활시키며 4월부터 HBM3E 8단 제품 양산에 돌입했습니다.지난 2월에는 HBM3E 12단 제품을 최초로 개발했고 이달 중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죠.
연합군 대결 구도 형성…결과는?
특히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의 협력 관계 구축 노력을 지속하면서도,반(反) 엔비디아 연합을 구축하는데 힘쓰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움직임인데요.
현재 SK하이닉스는 주력 고객사인 엔비디아뿐 아니라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도 협력하며 연합군을 구축했습니다.이들의 협력 방식은 이렇습니다.SK하이닉스가 TSMC에 HBM를 넘기면,TSMC는 엔비디아의 GPU와 HBM을 합쳐 AI 가속기로 패키징해 엔비디아에 공급합니다.엔비디아는 이를 전세계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등에 판매하게 되죠.
나아가 최근에는 SK하이닉스와 TSMC가 HBM4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요.HBM 제품의 전력 효율과 성능을 높이기 위해 기존 D램 공정이 아닌 파운드리의 초미세 공정을 활용,HBM4에 들어가는 베이스 다이(Base Die)를 만드는 것이죠.
삼성전자는 이같은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 중심의 시장 판도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행보를 벌이고 있습니다.연내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자체 AI 가속기 '마하1'이 대표적입니다.
마하1은 HBM 대신 저전력 메모리 'LPDDR'을 탑재해 전력 효율을 8배 더 높이고,GPU와 메모리 사이의 병목 현상을 8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특징입니다.제대로 개발이 완료된다면 마하1이 엔비디아 GPU를 일부 대체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네이버와 마하1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집니다.네이버도 값비싼 엔비디아의 가속기를 대신할 대안을 찾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겠죠.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노력은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도 나타나는데요.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탈엔비디아'를 선언하고,엔비디아 GPU가 아닌 자체 반도체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요.대규모 언어모델(LLM) '라마'를 통해 AI 경쟁에 뛰어든 메타도 반도체 내재화에 도전 중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들과의 협력도 이어갈 전망입니다.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지난 1월 방한 당시 삼성전자 경영진과 반도체 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요.최근 이재용 회장은 미국 서부 팔로 알토에 위치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자택으로 초청받아 단독 미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통해 삼성전자와 메타가 AI 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요. 저커버그 CEO는 지난 2월 방한 당시 "삼성은 파운드리 거대 기업으로서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마틴게일 전략이러한 부분들이 삼성과의 협력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