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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佛 외무부 자료 번역
對중국전 일어나면 서부 전선 약화 우려
원폭 사용 없이 정전 “인내심 보상받아”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6·25전쟁)이 벌어졌다.다음 날인 26일,유엔 한국위원회는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급히 전보를 보냈다‘서울은 내일의 상황조차 가늠할 수 없다.(.) 위원회는 이사회가 남북 양측에게 중립적 조정자를 선택하는데 합의하도록 권유하거나,평화 협상 또는 이사회 회원국들에게 즉각적 중재를 맡아달라고 요청하도록 권유하는 방향을 고려해 줄 것을 제안한다’
#2.1950년 12월,슈가랜드 특급레스터 피어슨 캐나다 외무장관은 오타와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중공군이 대거 한국에 개입한 사실을 고발했다.그리곤 강조했다.“아시아 국민을 상대로 두 번째 원자폭탄을 사용한다면,그나마 남아 있는 서양과 동양 국가들 간의 관계가 위태로울 정도로 약화될 수 있다.”
#3.한국에서의 원자폭탄 사용 가능성에 대한 어떤 암시도 한 적이 없었던 헝가리 언론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밝히면서 이렇게 보도했다.“영국,인도,슈가랜드 특급프랑스,슈가랜드 특급그 외 미국의 여러 동맹국들은 한국문제가 중국과 타협하는 길로 들어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74년 전 벌어진 한국전쟁 관련,한국학중앙연구원이 1만 쪽이 넘는 프랑스 외무부 자료를 수집해 번역했다.그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전쟁을 남과 북,그리고 미국,중국,소련 3대 강국의 사안으로만 보는 관점이 일반적인데,한국전쟁은 16개국이 참전한 국제전 성격의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대(對) 중국전쟁으로 바뀌기라도 하면 서구는 훨씬 더 큰 비중의 자원을 계속해서 투입해야만 했다.세계의 각 나라가 한국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자유 수호를 위한 온건한 태도’라는 대의를 말했지만,결국 서유럽 전선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냉혹한 현실적 판단에 따른 행보였다.
문서에 따르면,당시 레스터 피어슨 캐나다 외무장관은 “(자원을 한국전쟁에 할당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위험한 전선인 서유럽 전선을 무방비 상태로 두게 될 텐데,서유럽 전선은 북대서양조약의 보호하에 굳건한 방위 구축을 위한 우리의 가장 큰 노력이 집중돼야 하는 곳”이라고 밝힌다.
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로 지목된 해럴드 스타슨이 한국의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휴전’을 강조한 배경도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질 것에 대한 염려였다.문서에는 “스타슨도 말을 맺으면서 자신이 권고하는 것보다 더 전투적이거나 온건한 행동 노선은 무엇이라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키울 뿐이라고 확신조로 말했다”고 명시돼 있다.
1950년 12월 21일 작성된 2급 비밀로 분류된,마시글리 주영 프랑스 대사가 작성한‘유엔군 철수시의 영향’문서는 보다 구체적인 연합군 공조의 당위성을 명시한다.당시 북대서양 지역에서는 군사 협력이 이뤄졌지만,태평양 지역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보다 위기의식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제는‘휴전 또는 철수’가 아니라‘안정화 또는 철수’중 양자택일 상황이다.(.) 상황을 예상해보면,군을 철수한다면 아프리카까지는 아니어도 아시아와 중동지역 전체에서 연합군의 위신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서구 강대국들에게는 새로운 혼란의 전주가 돼 숨을 돌리기는커녕 이내 다른 복잡한 일들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대서양조약 협상 당시 아시아 사태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것이 이제는 우리(프랑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2일째가 된 1953년 7월 27일,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서구 국가들은 일제히 만족감을 나타냈다.네덜란드 언론은 “서방의 인내심이 오늘 보상을 받았다.지금 처음으로 데탕트의 느낌이 있다”고 전했다.스웨덴 언론은 “한국전쟁은 서구 민주국가들의 전례 없는 재무장,즉 곳곳에서 신중을 요하게 될 경제계획 결과의 재무장을 야기한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2299건에 이르는 연구 자료는 한국학진흥사업 성과 포털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