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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 산악회 70주년 EBC 트레킹
3월 27일 대한항공 편으로 네팔 카트만두 브완엔 공항에 도착했다.다음날 루클라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갔으나 우천으로 인한 기상악화로 모든 비행기가 연착 상태였다.부득이 계획을 바꿔 비행기 대신 육로로 라메삽까지 가서 루클라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해 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덜컹거리는 비포장길이지만 네팔의 풍경은 한없이 정겹고 아름다웠다.
라메삽의 만탈리 공항에 도착하니 각 나라에서 온 외국인 등반객들과 원정대들로 북적였다.기상악화로 일정상 헬리콥터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옅은 비 속에 산행을 시작하니 계속 오르막길과 평지 길이 교차하고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캄캄한 밤 9시경 팍딩에 도착했다.
다음날 행복한 마음 가득 안고 히말라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서며 풍광이 달라진다.언제부턴가 거대한 눈 덮인 흰 산들이 가까이 다가오며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나무 한가득 붉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순박한 네팔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미소는 선물이다.
남체 바자르(3,440m)에 도착,마을을 지나고 언덕을 계속 올라 히말라야 뷰포인트(3,고스톱 쓰리고830m)에 도착하니 앞에 아마다블람과 로체,에베레스트,눕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에베레스트 정상이 또렷이 보이며 뒤에 흰 구름이 후광처럼 펼쳐져 있다.쿰중 마을을 지나 캉줌마에 이른다.앞에 아마다블람 봉우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마차푸차레,마터호른과 함께 세계 3대 미봉 중의 하나란다.점점 히말라야의 속살로 접어들며 팡보체,디보체를 지나 딩보체(4,400m)에 도착한다.기압이 떨어지며 얼굴이 붓고 숨이 가빠진다.밀봉된 비닐봉지들은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밤에는 잠들기 어렵고 한참 자다 깨면 겨우 한 시간이 지났다.다음날은 피곤함이 몰려오는 악순환의 되풀이다.딩보체에서 고도순응 훈련을 했다.
'천년을 양羊으로 사는 것보다 하루를 타이거로 사는 게 낫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다가 마지막 남은 땀 한 방울까지 모두 소진하고 스러졌거나,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를 만나 산에서 생을 마감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에베레스트는 신의 허락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그 문을 연다는 말이 있듯이 운의 조화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한국 산악인 남원우(27),안진섭(25)의 '여기 히말라야의 하늘에 맑은 영혼으로 남다',송원빈(45)의 '에베레스트의 별이 되다'라는 푸른 동판도 보인다.숙연해지며 가슴이 아려왔다.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한계에 도전하며 절대고독과 독대하려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가?
문득 조지 말로리의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오랜 내공이 응축된 문장이 떠오른다.그는 영국 3차 원정대에서 앤드루 어빈과 함께 등정,정상 부근에서 실종된 전설적 등산가이다.이후 그들이 정상에 올랐는지는 미지수로 남았고,30년이 지난 후 에드먼드 힐러리가 처음 정상을 밟은 뒤 그들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잠시 상념에 젖은 후 우리는 다시 행군을 계속한다.황량한 돌밭과 설산들을 지나 푸모리 봉우리가 보이는 언덕을 넘어 고락셉(5,140m)에 도착했다.고산 약을 아침저녁으로 먹어도 얼굴은 퉁퉁 붓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침식사 시간에 우리의 오랜 산 친구 이근억이 지구를 떠났다는 부음을 들었다.모두 침통해 말을 잇지 못하는데 내 눈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린다.우리의 분신 같은 친구였다.
고락셉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까지는 고도 200m 정도를 올라가는 비교적 완만한 등반이다.푸모리봉(7,165m)을 바라보며 끝없는 돌밭 길을 지난다.싸늘한 바람은 옷깃을 제치며 불어 대고 이따금 눈이 휘날리기도 한다.능선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빙하가 보이고 멀리 베이스캠프 촌이 눈에 들어온다.사람은 보이지 않고 유령 마을 같다.
단장 윤석태 선배가 커다란 바위에 이마를 대고 기도한다.우리 모두 그동안 에베레스트에서 산화한 수없는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한다.
각국 등반객들,우리 나이 물어보곤 "원더풀"
칼라파타르(5,550m)봉은 세 시간 남짓 오른다.숨이 헉헉 차오른다.정상에 오르니 앞에 에베레스트 전경이 확 펼쳐지며 그 위용이 선뜻 다가온다.천근만근이 된 몸으로 이제는 하산이다.내려올 때의 풍경은 올라갈 때와 또 다른 모습이다.마음도 훨씬 홀가분하다.산행 중 우리 팀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각국에서 모여든 등반객들이 우리 나이를 물어보고는 깜짝 놀라며 원더풀을 연발한다.
인류 최초로 8,000m 이상의 봉우리를 등정한 프랑스 대장 모리스 에르조그는 등반사에 남는 명문을 남겼다.
"한 푼의 보수나 영광 없이도 올랐을 안나푸르나,우리에게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있다."
여든 살 우리에게 또 다른 에베레스트는 어디이며 무엇일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 있는 날까지 또 다른 에베레스트를 기약한다.
힘들고 보람된 에베레스트 산행을 마친 뒤 내 가슴속에 자작시 한 편이 남았다.
일흔여덟 먹은 늙은이가/팔십 성상의 형들과 함께/에베레스트로 떠났네.
옛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못다 한 이야기들/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쏟아진다.
기억들은 초롱초롱 영롱한데/넘치는 생기/오뉴월 비 온 후 쑥풀 올라오듯 하다.
우물물 길어 올리듯/추억의 회랑에서/건져 올린 사연들
밤늦도록 두런두런/가슴 시린 이야기/먼저 떠난 악우들
눈에는 안개 서리고/그 목소리 젖어 든다.
산다는 건 우여곡절/구절양장 산길이지.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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