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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5…11일 발인
한국시인협회장 역임
한국시 동아시아에 알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시를 해외에 알리는 데 공헌했던 원로시인 김광림씨가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95.고인은 자신의 시세계뿐만 아니라,화가 이중섭의‘은지화’탄생에도 큰 구실을 한 인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29년 9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월남한 1948년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제대 뒤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홍대 무라장안대 일어과 교수 등을 지냈다.1957년 김종삼 시인 등 함께‘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한 이래 주지주의의 대표 시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시집‘상심하는 접목’(1959)‘갈등‘앓는 사내‘이 한 마디‘불효막심으로 건져낸 포에지’(2014) 등 20종 가까운 개인·합동 시집을 냈고,평론집‘존재에의 향수‘오늘의 시학‘세계화 시대 열린 시학’등을 펴냈다.1992~94년 제28대 한국시인협회장 재임 때 일본과 대만 시인들과 교류하며 한국시를 알리는 데도 힘썼다.일본에 세계시인총서‘김광림 시집’이 출간되어 있다.
고인은 앞서 주지주의 계열을 선도한 시인 김광균,홍대 무라김기림에게서 한 자씩을 따와 본명 김충남 대신 시인 김광림으로 거듭났다.이중섭(1916-1956) 화가와의 인연이 소재가 된 시도 적지 않다‘이중섭 생각’연작시가 대표적이다.1950년대 장교로 복무하던 때 모아 이중섭에게 전달해 준 보급품의 양담배(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가 중요한 그림 재료가 됐다.은지화 탄생의 숨은 공로자였던 셈이다.이중섭으로부터 그림을 불태워달라고 부탁받기도 했다.고인은 “중섭은 개인전에 전시되지 않은 대부분의 미완성 작품과 은박지 그림,그리고 소품 등 한 뭉텅이를 아무렇게나 말아 가지고 불태워 달라기에 그러겠다고 받아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며 “나는 이 그림을 고스란히 보관했다가 이틀 후 중섭과 함께 묵고 있는 태응(작가 최태응)의 요청으로 반환했다”고 이중섭 평전 형식의‘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화가 이중섭 생각’(2006)에 회고한 바 있다.
유족으로는 자녀 상수(바움커뮤니케이션 회장)·상일(조각가)·(대만과기대 학장 겸 대만 현대시인협회장)·상미씨 등이 있다.상미씨는 한겨레에 “평소 무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해오셨다”고 말했다.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발인은 11일 오전 10시,홍대 무라장지는 서울현충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