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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노벨문학상 작가의 그림일기
30년간 일상의 기록 몰스킨 수첩에 써
“휘발성 강한 정치적 견해는 빠져”
튀르키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신간‘먼 산의 기억’을 출간하며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민음사 제공.
책상에서 일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카드쾨이로 향하는 이 배가 보여 하던 일을 멈추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마치 내가 보는 세상의 사물 사이에 스며드는 것과 같다.혹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나에게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일기장에 그림을 그리면 세상의 시가 내 일상에 스며든다.
오르한 파묵‘먼 산의 기억’중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튀르키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72)이 몰스킨 노트에 그린 그림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그린 수천 페이지의 그림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먼 산의 기억’을 출간한 것.책은 A4용지 크기로 제본됐으나‘실물’그림 일기장은 8.5x14cm의 손바닥만한 몰스킨 수첩이다.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실제 몰스킨 수첩에 그린 그림과 그 위에 쓴 문장들.[오르한 파묵 제공]
파묵 작가는 17일 헤럴드경제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더 큰 노트에 그림일기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몰스킨 공책이 제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수첩은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더 큰 공책이라면 휴대하고 다닐 수 없으니까요.그리고 이 공책은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제작된 것입니다.때로 기차를 타고 갈 때 노트를 하고,때로는 어딘가에서 식사를 할 때도 노트를 합니다.누군가를 기다릴 때,아내와 외출을 하려고 할 때 그녀를 기다리면서 노트를 합니다.우리 모두에게는 틈새 시간이 있습니다.사람들은 제게 어떻게 시간을 내냐고 묻는데,이렇게 쉽게 시간을 낼 수 있지요.”
제목의‘먼 산’에서 감지할 수 있듯,그의 그림일기에는 주로 풍경이 많은데,특히 바다와 배의 그림이 많다.일기에 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파묵은 이 역시 그저 “내가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에 살고 있이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르한 파묵의 신간‘먼 산의 기억’책표지
“저는 도시를 왕래하는 모든 배들을 알고 있습니다.국제 유조선,루마니아 배,
포르티모넨스 대 벤피카러시아 배,
포르티모넨스 대 벤피카불가리아 배도 저희 집 앞을 지나가지요.보스포루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집에 살며 어렸을 때부터 이 풍경을 보았고,그때도 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모든 배들을 잘 알고 있고 이름까지도 다 알고 있지요,저는 바다를 보며 저 배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갔어,하고 생각한답니다.”
마침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14년치의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서 노벨상 수상 이후에 그림일기를 시작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포르티모넨스 대 벤피카사실 책에 게재된 내용은 무려 30년 동안 이어진 작업 중 일부다.
파묵 작가는 “제 어머니가 7살 때 일기장을 선물해 준 후부터 항상 일기를 써왔다”며 “다만 이번에‘먼 산의 기억’으로 출간된 일기는 그 형태,크기가 작다는 것,제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썼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펼쳐든 몰스킨 수첩에 기록한 그림과 글들.[오르한 파묵 제공]
이어 “제가 어렸을 때는 몰스킨 수첩이 없었다.옛날에는 큰 노트에 글을 썼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고 나서부터 몰스킨을 썼다”며 “얼마 전 이탈리아 파르마시의 한 박물관에서 이 일기들을 전시하면서 몰스킨 회사 대표가 제 작업을 보고 너무 기뻐하며 커버에 제 이름이 새겨진 몰스킨 다이어리 100개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파묵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은 그의 작가 인생의 어떠한 큰 분기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이 상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일기를 쓰게 되었다든가,또는‘다 이뤘다’등의 안도감이나 나태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는 노벨 문학상을 54세에 받았습니다.비교적 젊은 나이에 수상한 셈이지요.노벨 문학상을 받던 해에 저는 소설‘순수 박물관’을 쓰고 있었습니다,절반 정도 썼을 때 였답니다.하지만 저는 상을 받은 후에도 계속 썼습니다‘순수 박물관’은 지금 제 작품 가운데 튀르키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지요.T.S.엘리엇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말을 한 것 같 같은데,저는 그렇지 않습니다.노벨 문학상이 저에게 무엇인가를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약간의 책임감….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 책을 읽지도 않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만 제게 관심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물론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새로운 독자들이 생겼지요.”
튀르키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정치적 소견을 밝히면서도 이제껏 정부의 탄압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을 수 있는 이유로 노벨상을 꼽았다.[민음사 제공]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노벨상 수상이 큰 힘을 발휘하는 때가 있다.21세기 튀르키예에서도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들어섰고,
포르티모넨스 대 벤피카정부의 검열과 탄압이 진행 중이다.파묵 작가는 그간 많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소신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용감하다고 말하는데,나도 두려울 때가 있다”며 “튀르키예 대통령은 많은 작가들을 감옥에 넣었다.저는 아마도 노벨 문학상이 보호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번에 출간되며 공개된 그림 일기 중에 정치적인 견해를 담은 부분은 빠졌다.취사선택에서 고려된 것은‘휘발성’여부였다고 작가는 밝혔다.
“정치적 노트들은 아주 빠르게 휘발됩니다.화를 내고,정치적 분석을 한 내용들 말이에요.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의 약 75%가 대통령에 분노하고 있지요.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상황 역시 노트에 적었을거예요.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모두 잊고 맙니다.그때는 아무도 제가 쓴 것들을 읽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정치적인 것이 빠르게‘예전의 것들’이 되어버리는 이유는 “작가 한 사람의 독창적인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시국에 관한 분석과 평가는 그 시기 사람들 모두가 쓰는 이야기라는 취지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파묵 작가는 “한국인 75%의 바람에 존경을 표한다.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한강의‘채식주의자’를 읽었고,나머지 작품들도 구입해 놓았다.곧 읽을 것”이라며 노벨상 수상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두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닮은 부분이 있다.위대한 소설가들의 일상은 수도승만치 단순하다.파묵 작가는 “나의 일상은 글을 쓰는 것뿐”이라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면서 차와 커피를 마신다.취미는 독서 그리고 영화 감상이고 건강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운동한다.기름진 음식은 안 먹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떤 작가들은 2~3시간 앉아서 4페이지를 쓴 후 하루의 남은 시간에 편지를 쓰거나,
포르티모넨스 대 벤피카책을 읽거나,다른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지만,나는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며 “계속 글만 쓴다.나는 내가 쓴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끊임없이 내 자신과 싸운다”고 말했다.
파묵의 다음 작품은‘첫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그는 “계속 쓰다가 6개월 정도 멈추고 다시 새로운 생각이 나서 내용을 바꾸고 다시 쓰는 중”이라며 “언제 출간되는 지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내 추측이 맞은 적이 없다.이번에도 6개월 후가 될지,1년 후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끝으로‘일기’에 대한 파묵 작가의‘헌사’를 그의 답변 그대로 전한다.
“일기는 특별한 공간입니다.그 공간에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신과 말을 하게 되지요.그리고 계속 쓰다 보면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가끔 어떤 생각이 떠올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데 그걸 공유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요.혹은 이야기를 해도 당신을 이해해 주지 못할 수 있지요.
일기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게 외로움의 연장입니다.물론 여기에는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면도 있지요.혹은 내가 기발한 것을 생각했는데,그것을 잊지 않기 위한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일기는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쓸 수 있지요.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왜냐하면 우리의 나날은 틈새 시간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을 어떤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닙니다.일기를 쓰는 것은 장점이나 유용성이 아니라,어떤 시적인 것입니다.저는 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일기는 저에게 있어 가장 비밀스러운 나의 세계입니다.용기를 내어 출간했지요.내 자신의 개성을 내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장자크 루소는‘고백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그건 일기가 아니고 회고록이지요.거기에 모든 것을 얼마나 솔직하게 써 놓았는지 아,이 사람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구나,
포르티모넨스 대 벤피카하고 감탄하게 됩니다.모든 것을 아주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서양 문학,프랑스 문학의 바탕에 몽테뉴의‘수상록’과 루소의‘고백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저도 이 전통의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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