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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라앉는 마음> 출간한 소설가 홍기훈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 8월 12일.러시아의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海)에서 가라앉는다.108m의 심해였고,침몰한 잠수함엔 118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 잠수함이 왜 침몰했는지,어째서 그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생겼는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지금까지도 거의 없다.역사 속 수수께끼로 남은 것이다.
바로 이 역사적 사건(사실)을 씨줄과 날줄 삼아 문학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자 노력한 소설가가 있다.열정과 에너지에,적지 않은 시간까지 바쳐 한 편의 장편을 완성한 20대 젊은 작가 홍기훈(27).
러시아에서 침몰한 잠수함 이야기를,미국 기자의 입장에서,한국 작가가 쓴 흥미로운 소설 <가라앉는 마음>.
소설과 소설가의 발굴에서부터 작품의 취재와 집필 과정,그리고 작가 홍기훈이 <가라앉는 마음>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까지가 궁금했다.
아래 작가와 작품에 관해 던진 질문과 홍기훈이 들려준 답변을 요약·정리해 옮긴다.인터뷰는 지난 주말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진행됐다.
- 반갑다.1997년생으로 알고 있다.20대다.역사적 사건,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를 찾아내 장편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듯하다.쿠르스크 침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어린 시절부터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런저런 사건들을 접했다.그러다 보니 이 나라에 사는 어린이의 짧은 가방끈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을 꽤 많이 알게 되었다.그저 생소한 사실을 아는 데에서 멈출 수도 있었지만,그보다 분명한 원인을 스스로 판단 끝에 알아내고,또 주변에 알리고 싶다는 갈증이 늘 있었다.
처음에 내 시선을 끈 것은 본래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였다.다들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아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는 것이 안타까웠다.알아낸 내용을 기반으로 소설을 준비하기까지 했지만,집필 직전 미국의 HBO에서 그 사건을 다룬 동명의 드라마를 개봉했다.드라마에서는 체르노빌 사고를 완벽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다른 사건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쿠르스크 유가족들이 군 장성들에게 화를 내다가,진정제를 주사 당한 뒤 끌려 나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대체 어떤 나라가 사고 희생자의 유가족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진정제를 주사하는가?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꼭 알아내고 싶었다."
- 오래 탐구하고,피바고민한 소재였으니 24년 전 침몰한 잠수한 쿠르스크호 침몰 사고의 개요를 독자들에게 간략하게 설명 부탁한다.
"2000년의 러시아는 1991년의 소련 붕괴와 1998년의 모라토리엄 여파로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던 상황이었다.쿠르스크는 소련 시절에 설계되어 러시아 시기에 건조된 핵잠수함으로,2000년 여름 바렌츠해에서 훈련 도중 침몰해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 소설의 집필 과정은 '취재-집필-수정 및 퇴고'가 통상적이다.취재에서 완성된 원고를 만들기까지 걸린 기간은.그리고 취재와 집필,수정 및 퇴고 과정에서 가장 힘겨웠던 일은 뭔가.
"취재에는 3개월,피바집필에는 5개월이 걸렸다.수정에 3개월,퇴고에도 집필과 비슷한 기간이 소모되었으니 다 따지면 1년 반 가까이 걸린 셈이다.하지만 사건이라는 것은 늘 양파와 같아서,까도 까도 끝이 없다.집필 기간에도,수정 및 퇴고 기간에도 계속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내내 취재를 겸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작품 내적으로는 내가 다가갈 수 있는 진실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그 나라에 가보지도 않은 내가 보는 시선이 과연 실제 사건을 어디까지 반영할 수 있는지 겁이 났던 것 같다.외적으로는,아무런 기약 없이 써내는 소설이 이대로 세상에 나가지 못한 채 사라질까 두려웠다.아마 신인 소설가들이라면 다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 <가라앉는 마음>은 인터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이 방식으로 써보자는 마음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이고,중간에 다른 형식을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서방 국가에 살며 서방 언론을 접하는 내가 그 나라 사람들의 내면을 전부 안다는 듯 함부로 표현하며 글을 써내는 게 그리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았다.내게서 편견을 완전히 걷어낼 자신이 없었기에,그리고 그들의 감정을 내가 오롯이 알아낸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차라리 그런 부분까지도 작품에 녹여내자 싶었고,그것이 인터뷰 형식의 소설을 쓰게 된 이유이다.화자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인터뷰어와 인터뷰이라는 관계를 한 겹 덧씌움으로써 내 시선이 기본적으로 서구적이라는 사실을 은연중 드러내는 것이다.지금도 그 부분에 대한 후회는 없다."
- 미국 기자가 러시아에 가서 쿠르스크 침몰 사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이 이채롭다.이번 작품의 형식이랄까,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나 작가가 있는 것인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가라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인터뷰라는 방식 자체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라는 벨라루스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신 이분은 실존 인물들을 만나 수집한 인터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써내는 '목소리 소설'의 창시자다."
- 이야기의 얼개를 짜기 위한 자료 수집 과정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어떤 어려움이 있었고,기본 자료와 심화된 논문 등의 검토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사실 자료 수집 중 가장 큰 문제는 자료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일단 소련 붕괴는 국내에서 관심 가지는 연구자가 거의 없는 주제고,쿠르스크 침몰은 한술 더 뜬다.국내의 주요 도서관이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봐도 쿠르스크 침몰에 대해 다룬 논문은 단 한 건인데,그마저도 침몰 사건 자체가 아닌 영화 '쿠르스크'에 대한 내용이다.
해외에서 자료를 찾는 것 또한 어렵긴 마찬가지였다.소련 특유의 비밀주의 문화에 더해,1990년대-2000년대 사이의 러시아는 사회가 완전히 무너져서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기록할 상황이 아니었다.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의 우경화가 심각해지면서,그들이 힘들었던 시절을 굳이 다시 파헤치지 않고 있기도 하고.
결국 많은 이야기는 수백 페이지의 공식적인 보고서보다는 각 관련자가 개인적으로 털어놓는 기억의 파편들 사이에서 구해야만 했고,이는 필요한 검토 과정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또한 내가 앞서 서방 언론사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서방 언론사가 편파적인 시선을 전해준다고 해서 러시아 언론사의 발표나 보도가 신빙성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타스나 코메르산트 같은 주요 러시아 매체의 보도조차도 그 신뢰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되도록 교차 검증 가능한 자료들만 소설 내에 사용했는데,그 자잘한 내용들을 한 번에 떠올릴 자신이 없어 필사를 하기도 했다."
- 작가에게 '이 소설을 왜 썼는가'라고 묻는 건 결례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묻고 싶다.<가라앉는 마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가.
"이 책은 성경이 아니다.절대적인 진실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그렇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만약 정말 그렇다면,그래서 이 사건과 낯선 나라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관심이 자라면 이해가 될 수 있기에,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런 계기가 되도록 이끄는 촉매가 되기를 희망한다."
- 인류가 생겨난 이후 전쟁과 국가 사이의 불화는 언제나 있어왔다.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고,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간 분쟁이 쿠르스크 침몰 사건과 유사한 비극을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다.지금 진행 중인 두 전쟁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은.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대단히 합리적이고 동시에 정의롭다고 믿으며,거기에서 기인하는 각자의 명분이 있다.그 알량한 명분을 자랑스럽게 손에 쥔 채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을 계획하고,동시에 국민을 교묘히 선동한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그런다 한들 뭐 어쩌라는 건가?결국 대가를 치르는 것은 푸틴과 네타냐후도,젤렌스키와 마샬도 아니다.
야전병원에서 눈을 떠 잘려 나간 다리를 보며 울부짖는 군인,혹은 공습으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된 친구의 목걸이를 보며 망연하게 서 있는 시민은 내 또래일 수도,기자님 또래일 수도 있다.고고한 자리에 앉은 정치인들이 펜대를 휘두르다 저지른 '아차,실수'를 시민들의 진한 피로 메꾸는 것이 이 세상이고,지금 저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 소설의 제목은 누가 지은 것인가.작가인가?출판사인가?누가 지었더라도 거기 담긴 함의가 있을 텐데,무엇인가.
"가라앉은 것은 단순히 잠수함과 그 승조원뿐만 아니라,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제목은 출판사와 내가 십수 건의 시안을 두고 여러 번 협의한 끝에 골랐는데,처음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하다가도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은근한 맛이 있어 골랐다."
- 작품에 이어 작가에 관한 궁금증 몇 가지 묻겠다.'문학이 더 이상 힘을 가질 수 없는 시대'라는 이야기가 떠돈 지 오래다.왜 소설을 쓰게 됐고,당신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쓰게 되었다.우스우리만치 단순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처음에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그냥 쓰는 것이 즐거웠다.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는 조금 달라졌다.여전히 쓰는 건 재미있지만,피바의미가 추가된 것이다.나는 인터넷과 책을 오가며 정보를 모으고,그걸 기반으로 소설을 써 왔는데,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하지만 거기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회사원이,가정주부가,자영업자가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한 가지의 사건을 1년도 넘는 기간 동안 자나 깨나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물리적으로 시간에 치여서 그러하다.그러니 시간이 있는 내가 이를 대신해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결국 나는 글을 대신 쓴다기보다는,시간을 대신 쓰는 셈이다."
- 좋아하거나 영향 받은 소설가는 누구인가.평소엔 소설 외에 어떤 책을 많이 읽는지도 궁금하다.
"국내 작가 중에는 정세랑 작가를 가장 존경한다.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은데,그분의 작품은 다르다.이 울음은 깊이 생각한 끝에 흘리는 게 아니라,그냥 툭,터져 나오는 울음이다.
글이라는 것은 사실 음악이나 미술처럼 감각에 직접 호소하는 예술이 아니라서,감정에 곧바로 작용하도록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정세랑 작가는 이를 가능케 한다.심도 높은 묘사나 은근한 배경 설정은 줄리언 반스,그 사람의 작품 중 특히 <시대의 소음> 영향이 컸다.
소설 이외의 읽는 책이라면 주로 역사나 특정 인물을 다루는 학술 서적을 읽는다.최근에는 빅토리아 왕실의 식문화를 다룬 <먹보 여왕>을 꽤 흥미롭게 읽었다.이를 통해 얻은 사실들은 추후 글을 쓸 때 활용하곤 한다."
-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이른바 MZ세대는 깊이 침잠해야 의미 해독이 가능한 문자보다는 짧고 가벼운 영상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고 생각했다.내 견해에 동의하는지?그리고,왜 당신은 영상이 아닌 문자를 자신의 '존재 증명' 수단으로 선택한 것인가.
"사실 그런 견해에는 완전히 동의한다.소설조차 종이책보다는 웹소설 시장에서 더 많이 읽히는 마당에,접근성 좋은 가벼운 영상의 인기를 부정할 수는 없다.다만 유튜브 쇼츠를 위시한 짧은 영상은 단순히 가벼운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영양가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음식으로 치면 우뭇가사리 위에 마라 양념을 부은 거나 다름없다.이걸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목적이 될 수는 없는 듯하다.
다만 어릴 때 영상 자체는 만들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다.앞서 이야기한 HBO 드라마처럼,영상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분명 확고하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뜸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했다.소설은 늘 혼자,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지만,그리고 그래야만 하지만,영상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도약할 때마다 배로 많은 사람과 자본이 필요했고,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뒤에는 완전히 포기했다.그 대안으로 시작한 게 사진인데,사진은 여전히 찍고 있다.역시나,사진 또한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예술이기에 그렇다."
- 첫 번째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독자들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지.그리고 출간 이후 현재까지 주위 사람들이나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소설을 출간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기존에 연습을 위해 쓴 소설들은 많았다.그런 습작을 꾸준히 읽어왔던 지인들에게는 이번 소설로 크게 도약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외부 독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오고 있기는 한데,아직 출간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내심 궁금해하는 중이다."
- 당신은 이제 막 소설 속으로 들어온 '시작하는 젊은 작가'다.앞으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그리고,한참 후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더 나이를 먹는다면 독자들에게 어떤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인식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창의적'이라는 것이다.하지만 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여기에는 별다른 창의성이 묻어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대신 정교함이 있다.감히 비유하자면 호쾌하게 만들어낸 독특한 형상의 전위적 조각품보다는,한 땀 한 땀 무늬를 그려 넣은 도자기 그릇에 가까운 듯하다.낯선 사건,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다루지만 무엇 하나 빼놓지 않으려 애쓰며 소설을 썼고,앞으로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빠뜨린 이야기가 없지 않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소설 출간을 이틀 앞두고,우리나라에 큰일이 있었다.나는 지방이라 탄핵 촉구 집회에 한 번밖에 참여하질 못했기에,이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국론에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한다.이 정권은 끝나야 하고,대통령을 위시한 그 관련자들은 하루빨리 대가를 치러야 한다.나는 이 발언이 정치색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탄핵에 찬성하니 좌파,반대하니 우파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솔직히 말해 치졸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자기 와이프의 '수렴청정'을 향한 수사를 막고 권력을 다시 자기 손에 넣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벌인 게 지금 이 나라에 닥친 상황이다.다시 전제주의 시대로 시계를 돌리려는 사람을 탄핵하고자 하는 건 상식의 범주일 뿐이다.이 사태가 조속히,평화롭게 마무리되기를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