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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장례 이야기②] 올해 운영 종료하는 '옥천합동장의사' 박종호·이수희씨에게 듣는 장의사의 삶삶과 죽음은 연결돼 있지만,우리는 삶을 이야기할 때 그 끝의 죽음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이를 배경으로 장례,지금은 거의 사라진 '마을 장례'의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는지,그 속에 어떤 정서와 가치가 있었는지 나눕니다.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기자말>

▲  이수희씨가 수의를 매만지고 있다.ⓒ 월간 옥이네
수의,꽃상여,칠성판(관 바닥에 까는 얇은 널조각),범프카지노 배너병풍.장례용품이 한자리에 모인 옥천합동장의사.1976년 개업과 동시에 많은 이가 찾았던 곳이지만 꽃상여와 수의로 발 디딜 틈 없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됐다.

장례 방식이 화장으로 변하면서 3년 전 문을 닫을까도 생각했지만 맞춤 수의와 장례용품을 구하러 오는 이들을 보며 계획을 미뤘다는 박종호(76),이수희(73)씨 부부.드물지만 자신들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매일 오전 9시 문을 열던 옥천합동장의사는 '이제는 정리할 때'라며 올해를 마지막으로 장의사 일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하나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요즘 감사한 일만 생각난다는 두 사람에게 지난 시간을 물었다.

50여 년간 지켜온 마음

▲  '옥천합동장의사' 박종호·이수희씨 부부.ⓒ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가 4년 전 만났던 박종호·이수희씨를 다시 찾은 1월 20일.오는 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이 변함없다.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게 한 편 장례용품으로 꽉 차 있던 선반이 드문드문 비어 있다는 것이다.장의사를 찾는 이가 줄어들면서 꽃상여를 만드느라 분주했던 손과 바쁘게 돌아가던 미싱도 멈춘 지 오래.이는 자연스레 마무리할 시기를 생각하게 했다.

"3년 전에 그만하자고 생각했는데 드물게 저희를 찾는 분들이 계셨어요.미리 수의를 맞추러 오거나 장례용품을 사러요.그 모습에 아직은 아니구나 싶어서 계속 운영했죠." (이수희씨)

꽃상여는 3년 전 만든 것이 마지막이었다는 부부.이제 3년간 미뤄뒀던 마음을 다시 끄집어내 물건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함보다 그동안 찾아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

"어떻게 아셨는지 영동,보은에서도 많이 오셨어요.다른 지역에서 먼 걸음해주시니 감사했죠.저희를 믿고 찾아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 자리에서 오래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수희씨)

고인의 마지막을 믿고 맡기는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수의 고름 하나,만장에 새기는 글씨 하나에도 진심을 다했다.옥천합동장의사를 운영하며 장의사로써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을 꾸준히 키워온 부부.지난 50여 년간 부부가 고인과 유족에게 지켜온 '약속'이기도 하다.

"그 당시 화장장보다 마을장례를 더 많이 하던 때죠.한창 바쁠 농번기에 장례식을 하게 되면 온 주민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준비해야 했어요.목재소에서 사 온 나무로 관을 짜고,부고를 알리고,마닐라 카지노수의와 음식을 장만해야 하니 한두 명으론 부족하죠.

이곳저곳에서 장례 준비로 바쁜 주민들을 보면서 수고를 덜어 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그렇게 장의업을 시작했죠.점점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바람에 수의까지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요.고인 가까이에서 장례를 준비하다 보면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박종호씨)

염습부터 꽃상여까지,책임감으로 준비한 장례

▲  박종호·이수희씨가 만든 꽃상여.ⓒ 월간 옥이네
지난 시간 장례가 필요한 곳이라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두 사람.죽음에 정해진 시간이 없듯,박종호씨의 전화기도 밤낮 없이 울렸다.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어도 전화벨이 울리면 고단함을 뒤로한 채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밤늦게 하는 전화는 예의가 아니라는 걸 다들 아니까 밤에 전화 올 일이 거의 없어요.그래서 밤 10시 이후에 전화가 오면 '아,누군가 돌아가셨구나'를 알 수 있었죠." (박종호씨)

통화를 마친 그가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소렴(小殮,운명한 다음 날 시신을 베로 싸서 묶어 관에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절차)에 필요한 물품들이다.

"탈지면과 칠성판,끈,병풍 등을 챙겨서 가요.칠성판에 고인을 옮기고 탈지면으로 코,입,귀 등 신체의 구멍을 막고 알콜을 묻혀 더러운 부분을 닦아내요.그리고 고인의 몸이 흐트러지 지지 않게 팔꿈치,허벅지,종아리 부분을 끈으로 묶어요.반듯한 모양이 아니라면 관절 부분을 잘 주물러 펴냅니다.하얀 천으로 고인을 덮고 병풍을 치면 소렴이 끝나요." (박종호씨)

'눈은 있어도 볼 수 없고,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생각하면 고인을 대하는 손길이 섬세해질 수밖에 없다는 그.경건한 마음으로 소렴을 끝내면 죽음을 알리는 초혼(招魂)과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사잣(使者)밥을 준비한다.

"초혼은 혼을 부르는 거예요.생전에 고인이 입던 윗옷을 지붕에 올리고 혼을 데려갈 저승사자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밥과 여비를 대문 앞에 둬요.그리고 고인을 모신 방으로 돌아와 향을 피워요."

첫째 날이 지나고 나면 매장을 위한 준비가 이뤄진다.입관 전 수의를 입히고 베로 묶는 대렴(大殮)이 진행된다.이는 유족들이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때로 가족과 친인척이 모두 모였는지 확인 후 인사를 나눈다.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면 남은 것은 대뜨리.발인 전날 밤 상여꾼과 요령잡이가 모여 손발을 맞춰보는 시간이다.

"미리 상여를 들어보고 요령소리에 맞춰 상여꾼들이 구슬프게 울기도 하고요.이때 쓰는 꽃상여는 저와 아내가 만든 것인데 부고 소식을 받은 순간부터 꼬박 하루를 준비해 완성해요.수의도 마찬가지고요.수의는 만들어진 것을 사다 써보기도 했는데 마감이 엉성하고 영 볼품이 없더라고요.마지막으로 입는 옷인데 더 좋은 옷을 입히고 싶어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죠."

▲  수의.ⓒ 월간 옥이네
박종호씨가 염습(殮襲)하는 동안 이수희씨는 수의를 만들었다.꽃상여와 수의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기에 한창 바쁠 시기에는 수의 만드는 직원을 두기도 했다고.

"수의가 두루마기,저고리,속바지,치마,버선,손싸개,면모 등 12가지 이상이어서 직원과 같이 만들어야 했죠.그때만 해도 수의와 꽃상여만으로도 사무실이 꽉 찼어요.한쪽에는 수의를 걸어두고 한쪽에는 꽃상여를 1층,2층으로 보관했으니까요." (이수희씨)

염습부터 꽃상여까지,부부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기에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한 장례.모두 금전적 이득보다 '고인을 잘 모시겠다'는 두 사람 마음이었기에 가능했다.

"고인을 보면 경건함이 저절로 생겨요.저희뿐만 아니라 장례식에 온 모든 분이 그랬을 거예요.화장장과 달리 마을장례는 고인에게 직접 인사를 전할 수 있는데,고인이 생전에 어떤 사람인 것과 상관없이 장례식에서만큼은 모두가 고인이 편하게 잠들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공수래공수거,욕심 없는 삶 이어가야죠"

부부의 정성스런 장례 소식이 옥천 바깥으로 전해지면서 옥천합동장의사를 찾는 이가 늘어갔다.옥천읍에만 장의업 하는 곳이 5~6개가 있었지만 현재 유일하게 남았다.이곳을 지금까지도 찾는 이가 있을 정도니 그 유명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게 한다.

죽음을 가까이하는 일,부부는 어떻게 이를 오래 할 수 있었을까.

"장의사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었어요.장례용품만 보여도 기피하는 분위기여서 가게를 길가에 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그런 탓에 장의사를 하는 이가 많지 않았고 오래 하기도 어려웠죠.꺼리는 직업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끈질기게 했더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이수희씨)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특정 직업을 낮게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해 왔던 과거를 지나,부부는 이제 점차 달라지는 죽음과 장례에 관한 인식이 반갑다.대학에 장례에 관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장례지도학과가 생기고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 같이 죽음을 다루는 직업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마다 예전과는 달라진 세상을 체감한다.

"장례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과가 있다니 시대가 많이 바뀐 듯해요.또 봉사 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임에도 관심 갖고 업으로 삼는 이들을 보면 대단하고요.매장,화장,자연장(수목장) 계속해서 장례문화가 바뀌고 있는데 고인을 모시는 방법이 더 좋은 쪽으로 발전됐으면 좋겠어요." (박종호씨)

▲  '옥천합동장의사'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월간 옥이네
3년 전 옥천합동장의사의 마지막을 고민하던 때 부부가 한 일이 있다.자신들의 수의를 직접 만드는 것.50여 년의 삶이 담긴 곳,문 닫기 전 내 손으로 수의를 준비하고 싶었다고.

"자녀들과 수의 맞추러 오는 어르신들을 많이 뵈었는데 이제 제가 그 나이가 돼가고 있더라고요.항상 누군가의 수의만 만들었는데.남편과 제 것을 만드는 동안 마음이 편했어요.완성하고 나선 든든했고요.수의를 미리 만들어 놓으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말처럼 앞으로 무탈하게 지내길 바랄 뿐이에요." (이수희 씨)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어요.공수래공수거라고 하잖아요.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욕심부리지 않고 옥천합동장의사를 운영했던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박종호씨)

부부의 수의는 옥천합동장의사 사무실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3년 전 완성된 수의지만 비어가는 사무실이 쓸쓸해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고.나날이 비어가는 공간에 마음이 쓰인다는 부부.자신의 업에 50여 년의 세월을 성실히 쏟아온 이들만의 가질 수 있는 아쉬움일 테다.

고인의 생전 애씀을 알아봐 주고 누구보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든든하게 지켜온 박종호·이수희씨.이제 50여 년 장의사의 삶은 마무리 되지만 모든 이가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어딘가에서 또 계속 이어져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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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54호(2021년 12월)
시골 장의사만 45년째,모든 죽음에 진심을 다합니다 https://omn.kr/1wkrl

월간옥이네 통권 92호(2025년 2월호)
글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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