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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뿌리채소
겨우내 땅 속 영양분·수분 가둬
비타민·당분 많아 유독 맛 좋아
10년근 더덕,구글 게임 계정 옮기기인삼 못 잖은 효능
우엉,당뇨·장에 좋은 성분 함유
18세기 도입 고구마 구황 작물
카사바·야콘은 밥 대신 먹기도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용비어천가에선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뿌리(불휘)’를 내세웠다.이파리,줄기,가지,꽃,열매도 있지만 식물의 기본이며 근간은 뿌리란 얘기다.근간,근원,근본이란 말도‘뿌리 근(根)’을 쓰고 기본에도 역시‘뿌리 본(本)’을 쓴다.
식물의 몸을 땅속에서 지지하고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올려 공급하는 역할,한 걸음 더 나아가 영양을 저장하고 새로운 개체로 생식을 하는 중요 기관이 바로 뿌리다.오랜 시간,인간은 이파리나 열매처럼 뿌리 또한 즐겨 먹었다.뿌리채소 즉 근채류(根菜類)는 맛이 좋고 영양 또한 많다.그래서 재배를 통해 먹어왔다.근채류는 일반적으로 겨울철에 영양을 뿌리에 가둔다.식이섬유도 많고 비타민과 무기질,탄수화물(녹말) 성분도 있다.당분도 많아진다.무,우엉,더덕,도라지,칡처럼 추운 겨울 유독 맛이 좋아지는 채소가 많은 이유다.연일 한파가 몰아닥친 겨우내 맛과 영양분을 축적한 근채류의 제철이 바로 지금이다.
뿌리채소라 하면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알고 보면 일상에서 늘 만나는 작물이다.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었다.무,당근,고구마 등은 물론 우엉,도라지 등이 밥상에 한 조각이라도 없었던 적이 있었나?한식 반찬에는 물론이며,심지어 국에는 콩나물(물뿌리)이,컵라면에도 말린 당근이 들어있다.뿌리처럼 여기지만 감자와 마늘,생강,양파,연근 등은 식물학적으로 뿌리작물에 속하지 않는다.덩이줄기라고 해서 땅속줄기가 변형된 것이다.하지만 음식 문화의 분류는 그리 팍팍하지 않아 대개 땅에서 캔 것은 뿌리로 분류하긴 한다.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근채류는 역시 무다.한식에서 무가 빠지면 아무것도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음식의 재료가 된다.이 역시‘월동무’라 해서 겨울철에 맛이 좋다.깍두기를 담그거나 뭇국을 끓여보면 안다.시원한 단맛을 낸다.고등어 등 겨울철 생선과 함께 조리면 막강한 시너지를 낸다.무쳐서 생채로 먹고 무말랭이로 말려서 반찬을 하기도 한다.요모조모 쓸 곳이 많은 유익한 뿌리다.비슷한 종류로는 순무,포커 3 키보드알타리,열무 등이 있다.
당근(carrot)은 서양에서 즐겨 먹는 뿌리채소다.당근은 놀랍게도 미나리와 연관이 깊다.미나리목 미나리과 당근 속에 속한다.붉은색을 띠는 까닭에 홍당무라고도 불렀다.16세기경 일찌감치 전래한 채소이며 맛이 달고 특유의 색이 식욕을 돋우는 까닭에 샐러드,볶음밥,김밥 등 다양한 음식에 쓰인다.만화영화에서 토끼나 말이 아주 좋아하는 채소로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다.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채소 중 하나로 당근을 질색하는 이들이 많다.(놀고먹기연구소에도 한 명 있다)
더덕은 약효나 맛에서 고급 식재료로 취급받는 뿌리 작물이다.10년 근 이상 되는 더덕은 값도 인삼 못지않다.모양새도 산삼이나 인삼과 닮았다.실제로 사포닌도 많이 들었다.사삼(沙蔘)이라 해서 옛날부터 좋은 대접을 받았다.광해군에게 더덕을 요리해 진상했던 한효순이란 이는 그 덕인지 좌의정까지 올랐다.그래서‘사삼각로(더덕 정승)’란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긴 했지만.
더덕 뿌리는 진한 향기와 달콤쌉싸름한 맛을 내서 한약이나 고급 요리에 식재료로 쓴다.도라지처럼 기침을 멎게 하는 데 좋다 해서 더덕차로 마시기도 한다.주재료로도 쓰는데 더덕을 찧어 양념을 발라 구워내는 더덕 불고기가 유명하다.석쇠나 번철에 잘 구워내면 마치 고기구이 같은 식감이 난다.
우엉도 국내에서 대표적 뿌리 작물로 식품 활용도가 높다.우엉은 건강식으로 인기가 많다.단맛을 내지만 이눌린을 많이 함유해 당뇨 환자에게 좋다.당뇨 환자들은 돼지감자(뚱딴지)처럼 우엉을 덖어 우려낸 우엉차를 즐기기도 한다.우엉에서 나오는 끈끈한 점액은 리그닌이다.장에 좋은 성분으로 알려졌다.간장으로 조려낸 우엉 반찬은 아삭한 식감과 달달한 맛,특유의 향을 낸다.이 때문에 조림이나 찜에 넣어 주재료의 잡내를 잡는 데 쓰기도 한다.조린 우엉을 한가득 넣고 싼 우엉김밥이 요즘 인기가 높다.
중남미에서 건너온 작물 중에는 근채류가 많다.이중 감자는‘덩이줄기’인데 반해 고구마는 분명한‘뿌리작물’이다.탄수화물을 듬뿍 함유한 덩이뿌리인 고구마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다.곡물 대체식품으로 아주 중요할 뿐 아니라 특유의 단맛으로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했다.스페인이 멕시코로부터 가져온 고구마가 명을 거쳐 일본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에 전래했고,다시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그래서 일본에선 아직도 고구마를‘사쓰마의 토란’이란 뜻의 사쓰마이모(薩摩芋)라 부른다.
고구마는 우리나라엔 뒤늦게(18세기 말엽) 들어왔다.1763년(영조 39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부산 영도와 제주도에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처음에는‘달달한 마’같다고 해서 감저(甘藷)라 불렀다.밭 면적을 차지하지 않아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고 병충해나 가뭄에도 강하니 구황작물로 딱 들어맞았다.다만 온화한 남쪽에서만 잘 자라,추운 북쪽 지방에선 추위에 강한 감자를 심었다.
고구마는 조리도 쉽다.생으로도 먹고 삶거나 구워 먹으면 더욱 단맛이 살아난다.중국요리 바쓰(맛탕)에 주재료로 쓴다.우리나라에선 직접 음식에 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전분으로 함흥냉면 면발을 만들거나 당면의 주재료로 쓴다.채를 썰어 닭갈비에 넣기도 한다.잉여 농산물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엔 말린 고구마로 죽을 끓여 겨울을 대비하기도 했다.통영에서 향토 음식으로 인기 있는 빼떼기죽은 고구마를 말려서 만든 것이다.
카사바는 남미에서 함께 전래한 고구마처럼 생겼지만 맛이나 식감이 좀 다르다.이 역시 스페인이 가져다 전파했다.처음엔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지금은 튀겨낸 칩으로 즐겨 먹는다.아프리카와 남미 일부 국가에서 주식처럼 먹는다.독성이 있어 가공이 불편한 단점이 있지만 녹말이 풍부해 식품업계에선 다양하게 사용한다.우리에게는 좀 낯선 식재료지만,실제 그런 것도 아니다.카사바로 만든 게 대만식 버블티 안에 든 타피오카 펄이다.카사바 전분을 타피오카라고 부르는데 이것으로 펄을 만든다.카사바는 또 희석식 소주의 주정을 만들 때도 쓴다.알고 보면 우리는 카사바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었다.카사바와 헷갈리기 쉬운 야콘은 우리나라에선 야콘 냉면으로 잘 알려졌다.고구마에 비해 좀 더 담백하고 아삭한 식감이 난다.이 역시 고구마나 감자,카사바처럼 중남미에서 왔다.(아메리카 대륙은 땅속 세계가 유난히 발달한 모양이다) 조선 후기에 들여왔으니 의외로 전래 역사가 오래됐다.
무왕의 서동요로 잘 알려진 마는 토종 작물이다.아삭한 식감에 살짝 달짝지근한 향을 낸다.자르면 미끈거리는 점액질(뮤신)이 흘러나와 호불호가 갈린다.국내에선 마즙과 같이 주스나 차 등 음료로 즐겨 먹는다.녹말을 분해하는 디아스타아제와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함유되어 위장에서 편하게 소화되고,비타민 B군과 칼륨·인 등의 무기질이 풍부하다.
연꽃의 줄기인 연근(蓮根)은 이름에 뿌리 근을 쓰지만 뿌리가 아니라 감자처럼 덩이줄기다.뿌리는 밑에 따로 있다.연밥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본에선 중요한 식재료로 즐겨 쓴다.국내에선 마차 바퀴 모양으로 썰어서 조려낸 도시락 반찬이 그나마 익숙하다.기본적으로 살짝 단맛을 내는 데다가 아삭한 식감이 좋아 튀겨도 맛이 좋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더덕장어구이 = 청룡집.지리산 남원에는 예로부터 더덕 요리가 발달했다.거기다 섬진강 뱀장어가 가세했다.더덕장어구이.남원 식정동에는 아예 더덕 장어 거리가 있다.고추장 베이스 소스 장어를 돌판에 구워내고 그 위에 생 더덕을 가득 썰어 덮어준다.요천 변에 업력 수십 년 이상 노포들이 거리를 이루고 있다.그중 청룡집이 대표 격이다.전북 남원시 요천로 2266.
◇소고기뭇국 = 우일뭉티기.대구식 뭉티기를 하는 집.뭉티기란 기름만 제거한 소의 생고기를 말한다.당일 도축분만 쓰는 까닭에 차지고 존득한 맛이 일품이다.이 집에선 뭉티기나 식사(점심)를 주문하면 소고기뭇국을 내준다.소고기와 무만 넣고 끓여낸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시원한 무즙이 배어 나와 국물을 온통 지배한다.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16.
◇우엉김밥 = 보배김밥.경주 성동시장에서 휴가 성수기에 하루 400∼500줄 판다는 그 집이다.주메뉴는 우엉김밥.달콤 짭조름하게 조려낸 우엉을 김밥에 듬뿍 넣어주고 아예 따로 수북이 더 얹어준다.경주의 대부분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고소한 참기름이 김밥의 맛을 완성한다.우엉만 따로 사 갈 수도 있다.경북 경주시 원화로281번길 11 성동시장.
◇고구마빵 = 피낭시에.고구마빵을 처음 만들어 판 곳이다.해남은 국내 고구마 최대 산지 중 하나로 황토에서 자란 고구마가 유명하다.영락없는 고구마 모양의 빵에는 실제 달콤한 고구마 소가 한가득 들었다.모양만으로도 손이 가는데 맛을 보면 그 손을 멈출 수가 없다.늦게 가면 떨어지고 없다.전남 해남군 해남읍 읍내길 8.
◇닭갈비 = 비와별 닭갈비.닭갈비의 본향 춘천에서 1997년 영업을 시작한 이 집(구 우성닭갈비)은 철판 닭갈비 식당이다.닭다리 살을 쓰고 고구마채,양배추,깻잎,가래떡까지 철판 냄비에 넣고 지져대면서 먹는 푸짐한 양식이다.칼칼하면서도 꽤 부드러운 끝 맛이 인상적이다.고구마의 달콤한 맛이 매운맛을 가시게 한다.강원 춘천시 애막골길11번길 38.
◇당근김치 = 아리랑.러시아 출신 동포(고려인)가 운영하는 집으로 양꼬치(샤실리크) 등 러시아 음식과 고려인들이 발전시킨 음식을 맛볼 수 있다.꼭 맛을 봐야 할 것은 고려인식 김치인‘마르코프차(Морковь+菜)’다.배추와 무를 구할 수 없던 고려인들이 당근으로 담근 김치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표준이 됐다.서울 중구 장충단로 221 명봉빌딩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