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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의 후폭풍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미국 국내 정치에서도 강렬한 파열음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지만,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는 건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다.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한 데 이어 이번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까지 꺼내들었다.물론 지난 임기 때도 코로나19에 대한 적극적 대응 미비와 중국에 대한 특혜 논란을 이유로 세계보건기구 탈퇴 의사를 밝혔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WHO 탈퇴에는 1년이 소요돼 불발로 그쳤다.그 기간이 도래하기 전에 바이든 대통령에게 백악관을 내줘 탈퇴가 백지화됐었다.하지만 이번엔 그 경험을 교훈 삼아 임기 초에 탈퇴 선언을 한 만큼 탈퇴가 현실화할 개연성이 크다.미국이 WHO를 탈퇴하는 건 세계에는 불행한 일이겠으나,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다.우리 외교력의 확대 기회가 될 수 있어서다.
미국이 세계보건기구를 떠나는 여파를 확인하려면,우선 WHO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세계보건기구는 대표적인 다자주의(多者主義) 협의체다.약소국을 포괄하는 국제 질서라는 건 미국이 수립한 국제연합(UN)과 같은 협의체 등장 전에는 낯선 개념이었다.물론 이런 체계에서도 유엔안보리 같은 핵심 기구의 이사직은 강대국에만 배분되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긴 한다.하지만 세계 혹은 인류가 공유하는 문제를 다자가 협력해서 해결한다는 방법론을 도입하고 유지해 온 건 미국의 기여 덕분이었다.
냉전에도 지속된 WHO 협력체계
세계보건기구 역시 이 맥락 위에 서 있다.인류가 당면한 각종 보건 문제를 양자 관계 혹은 소규모 강대국 간 협의가 아닌 인류 전체의 협력으로 풀어내자는 게 기구의 핵심 목표다.그렇게 이룬 대표적인 성과가 천연두의 박멸이다.만약 세계보건기구가 없었다면,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뉜 세계는 각자 천연두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제3세계는 냉전기 미·소 세력권 다툼으로 인해 어느 쪽의 도움도 받지 못해 천연두가 계속 창궐했을 개연성이 크다.우리가 코로나19 대유행도 겪었듯,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 변이(變異)는 곧 선진국에도 여파를 미치는 인류 모두의 문제가 된다.냉전 기 미·소 양국이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협력하지 않았더라면,천연두는 아직 남아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WHO 재정의 20% 분담
미국이 이런 질서에서 이탈한다는 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첫 번째는 세계보건기구의 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세계보건기구는 195개의 가입국이 균등기여를 하는 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에 비례해서 회비를 납부한다.미국은 WHO 재정의 약 20%를 분담 중이니,미국이 탈퇴하는 즉시 세계보건기구는 20% 예산 삭감과 동일한 타격을 입게 된다.이를 기구에 남은 회원국이 각자 더 갹출하는 방식으로 메울지,슬롯 공짜사업 자체를 축소하는 식으로 대응할지는 알 수 없으나,개발도상국은 어찌 됐든 타격을 입는다.
두 번째는 장기적으로 볼 때,다자협력 체계의 붕괴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공공재 공급에 대한 집단행동의 딜레마를 연구한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Mancur L.Olson)은 공공재 공급 시 무임승차(free-rider)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보건은 과제 달성 시 모두가 혜택을 보는 대표적 공공재이다.그런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대놓고 무임승차 혹은 적극적 방임을 표방한다면 어떨까.신망 있던 계주가 빠져나간 계(契)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그런데 이런 위기 상황이 대체 어떻게 우리나라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까.
보건 역량 최상위권 한국,'보건외교' 펼쳐야
보건 분야의 다자협력이 위태로워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다.수십 년 전 우리가 '불주사'를 맞아야 했던 이유는 주삿바늘을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폐기할 여력이 없어,바늘을 화염소독으로 재활용해야 했던 탓이 크다.채변 봉투로 전교생에게 기생충 검사를 하고,가을마다 구충제를 먹어야 했던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다.여전히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국가들은 WHO와 같은 국제기구가 내미는 손길이 절실하고,이런 지원이 부족해지면 보건 위기를 경험할 위험이 커진다.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전통적인 양자 간 외교다.우리나라가 이들 국가에 직접적으로 보건 협력과 지원을 제공하자는 거다.
우리는 과거 보건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경험이 아직 잊히지 않은 과거로 존재하고 있고,원랜디 도박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기초적 보건용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 역량을 풍부하게 갖춘 몇 안 되는 나라다.코로나19 시기 콧대 높던 유럽 선진국들이 '마스크 쟁탈전'을 벌이던 이유를 떠올려보라.제조업 토대가 붕괴된 이들 국가는 기초적 보건용품을 자국 내에서 제조할 역량이 없다.반면에 우리는 이를 직접 생산할 역량이 있는 데다,더 고부가가치 영역의 의약품이나 백신 역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정책 실현 경험부터 시작해 기초적 보건용품,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의약품과 백신까지 모든 걸 올인원(all-in-one)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는 드문 국가다.국제 보건 역량 부문에선 우리가 압도적 경쟁력이 있다.
그렇다고 마냥 인류애적 긍휼함만으로 지원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보건 위기를 겪는 개발도상국은 대부분 천연자원이나 식량자원 같은,우리가 철저히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들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
미국의 제3세계 원조가 실질로는 공산화를 막기 위한 지원이었듯,우리 역시 인도적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양국의 이해를 일치시킬 수 있다.보건 협력이란 대의를 표방하면서도 외교적으로 그리고 자원확보 차원에서 실리를 취할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고리대금업에 준하는 수준으로 개발 이익을 갈취하는 중국식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과는 다른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이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잖은가.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만,우리나라는 이미 체급이 잔뜩 커진 선진국이 됐다.이제는 자국 내 복지나 분배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수박게임 링크거시적 안목에서 투자적 성격으로 국제원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트럼프의 세계보건기구 탈퇴에 윤리적 비난만 퍼부을 게 아니라,사이버 도박 처벌우리의 외교적 이익을 냉철하게 계산하고 다음 수를 고민하는 게 훨씬 성숙한 태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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