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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그대로 방치하면
실업·복지수당 늘고 범죄도 쑥
유전자가 발병위험 높이지만
어릴적 학대 등 경험 더 영향
정신치료 약 처방만으론 한계
경도·중등도 우울증 환자에겐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효과적
지난 10일 대전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이 교사에게 살해당한 사건은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가해 교사는 5년 전부터 재발과 악화를 반복하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6개월 휴직서를 냈으나 의사로부터 '정상 근무가 가능하다'는 진단서를 받고 20여 일 만에 조기 복귀한 지 40여 일 만에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한 개인의 정신질환이 적절하게 진단되지 않고 치료되지 않을 때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기는지 여실히 보여준 비극이었다.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사회적 낙인이 찍힐까봐 정신질환을 쉬쉬하는 태도다.시한폭탄이 한국 사회 곳곳에 깔려 있는 셈이다.
우리보다 먼저 정신질환에 대해 국가적으로 대응한 나라가 있다.영국이다.이미 19세기에 '정신건강법'을 만들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와 치료 체계를 확립했다.2008년에 도입한 '심리치료 접근성 향상 서비스(IAPT)'는 매우 선진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다.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일반적인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인지행동치료(CBT)에 기반을 둔 심리치료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클라크·리처드 레이어드 지음
솝희 옮김,아몬드 펴냄,2만7000원
신간 '심리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는 IAPT를 설계하고 정착시킨 두 주인공이 쓴 책이다.영국의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 런던정경대 명예교수와 데이비드 클라크 옥스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공저다.정신질환에 대한 폭넓은 탐구와 치료법,IAPT 탄생 계기와 근거·성취를 책 한 권에 담았다.IAPT가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2013년에는 40만명이 치료받았고,선택 게임 만들기치료받은 사람의 절반가량이 건강을 회복했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한 현대인의 질병으로 여겨진다.영국에선 성인 5명 중 1명,아동·청소년의 경우 10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더구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고 있다.
무엇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걸까.저자들은 "1960년대부터 모든 정신질환에서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졌다"고 지적한다.유전자가 저절로 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발병 위험성을 상당히 높인다는 것이다.근거는 쌍둥이 연구다.쌍생아 중 한 명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을 때 나머지 쌍생아도 양극성 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일란성은 55%지만 이란성은 단 7%다.우울증의 경우도 일란성 쌍생아는 43%,이란성 쌍생아는 28%로 유사성이 나타났다.
물론 취약한 유전자 자체로는 정신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최종 결과는 역시 경험에 달렸다.경험은 유전자 스위치를 끄거나 켤 수 있다.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거나 부모가 별거나 이혼으로 가정불화를 겪었다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별거나 이혼이 과거보다 늘었다고 해서 과거 드물던 시절보다 아이에게 상처를 덜 입힌다는 증거는 없다고 저자는 꼬집는다.초경쟁사회와 실직,돈 문제도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1998년 아일랜드공화국군의 한 분파가 북아일랜드 오마의 붐비는 쇼핑 거리에 폭탄을 터뜨려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그런데 계속해서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겪은 것은 그 가운데 일부였다.똑같은 경험을 했어도 일부는 회복하고,일부는 회복하지 못한다.그 차이는 평소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자기에게 너무 몰두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정신질환자를 그대로 방치했을 때 사회가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을 계산한다.실업과 복지수당 증가,범죄 증가,포커 높은 순서정신질환에 따른 신체적 의료서비스 증가로 인한 복지 비용 증가를 따진다.결론은 이들에 대한 치료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지독하게 비싸다는 것이다.또한 국민의 정신건강은 경제성장과도 직결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을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약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항우울제를 사용해 회복한 이후의 재발률은 자발적 회복 후 재발률과 거의 같거나 더 나쁘다고 한다.지속적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이 때문에 경도와 중등도 우울증 환자에게는 항우울제 처방을 권장하지 말 것을 저자들은 주장한다.오직 심리치료만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모든 치료법 중에서 인지행동치료 효과성이 과학적으로 잘 입증돼 있다.이 치료는 '생각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치료사와 함께 몇 주 몇 달 동안 생각 패턴을 바꿔 행동을 바꾸는 치료법이다.불교를 바탕으로 존 카밧진 교수가 만든 마음 챙김 명상법 'MBSR'도 폭넓게 활용된다.
한국 사회는 높은 자살률과 여러 중독 문제,불안과 우울증으로 병들어가고 있다.정신 건강의 총체적 위기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정신질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 정부도 작년부터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시작해 불안·우울을 앓는 국민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불교계는 5분 선 명상을 보급하고,토토 경부선초등학교에 명상 시간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상태다.마음 건강을 되찾는 일은 더 이상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21세기 국가의 핵심 과제가 됐다.
[이향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