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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전문’나일 무어스 박사와 함께 찾은 화성습지
유엔기관 “8㎞내 철새도래지 없어야” 했는데…
“신공항 정말로 필요한지부터 따져 물어야”
바다는 멀어졌지만,물은 여전히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다.지난 21일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성호의 잔잔한 수면 위로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갑작스레 몰아쳤다.한 무리의 민물도요가 수면 위에서 휴식을 취하다 한꺼번에 날아오른 것이다.근처에 흰꼬리수리 한 마리는 얼음 조각 위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끼익 끼익’울어대는 큰부리큰기러기들의 울음을 들은 흰꼬리수리가 바쁘게 날개를 파닥였다.“유조(어린 새)예요.아주 배가 고픈 것 같네요.” 철새 이동 전문가인 나일 무어스 박사가 단안망원경을 주시하며 말했다.
영국 출신인 무어스 박사는 1990년부터 동아시아 철새와 습지보호 운동가로 활동해왔다.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다 1998년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국내 환경단체들과 함께 갯벌·조류 연구를 진행했고,2004년 야생조류 보전단체‘새와생명의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과거 남양만이라 불렸던 이곳은 지난 1991년부터 진행된 간척사업으로 현재는‘화성습지’로 불린다.서신면 궁평항으로부터 북쪽으로 우정읍 매향리로 이어지는 9.8㎞의 방조제가 생긴 뒤 호수,갯벌,습지,농경지로 거듭났다.대규모 간척사업으로 한때 생태교란을 겪기도 했지만,현재는 해마다 물새 15만마리가 도래하고 국제적 멸종위기 습지생물 16종이 서식하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습지”로 평가받고 있다.철새보호기구인‘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은 2018년 이곳을‘철새이동경로’로 등재했고,해양수산부는 2021년 매향리 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그러나 화성습지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수원 군공항 이전·경기국제공항 건설 등 신공항 건설의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 울음소리 들리시죠.화성호에서 잠들었던 기러기들이 이제 낟알을 주워 먹을 수 있는 농경지로 이동할 겁니다.”
이날 아침 7시 일출이 막 시작된 화성방조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무어스 박사는 경기도가 경기국제공항 후보지 3곳 중 하나로 선정한 화성습지를 손으로 가리켰다.만약 이곳에 공항을 짓는다면,“몸집이 크고 무리를 이뤄 이동하는 큰기러기가 빈번히 날아오르는 습지 안에 지어지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습지보호지역인 매향리 갯벌과도 2㎞ 거리라고 한다.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제시하는‘조류충돌 예방 지침’에 어긋난다.국제민간항공기구는 항공사·공항·조류충돌 위험을 비롯한 항공 분야 전반에 대한 지침을 발행하는 유엔 기관으로,우리나라도 1952년 가입한 이후 이들이 제시하는 규정에 준해 관련 법들을 만들어왔다.이 기구는 현재까지 기록된 항공기 조류충돌 사례의 95%가 지상에서 약 610m 이하에서 발생한다며,이를 고려해 공항 반경 13㎞ 내에서는 위험 식별·방지를 위한‘야생동물 관리 위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또‘조류 위험 방지를 위한 토지이용 지침’으로 공항에서 8㎞ 이내에 철새도래지(Bird Sanctuary)이나 사냥터가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우리나라 국토교통부 고시도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이 있는데도 화성습지에 신공항 건설이 거론되는 데 대해 무어스 박사는 답답함을 표했다.그는 “화성습지는 한국을 찾는 도요새,기러기들의 가장 중요한 서식지”라며 “아직‘람사르 습지’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이미 람사르협약의 지정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말했다.람사르협약은 특정 종의 물새 개체 수 평균 1%가 도래하거나 물새 2만 마리가 찾는 곳을 지정하고 보호한다.화성습지는 이미 정부가 지정한 습지보호구역이고 국제적으로도 람사르협약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라,이곳에 공항을 짓겠다는 계획 자체가 국제민간항공기구 지침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토토 사이트 축구 차 무식현재는 매향리 갯벌에서 가장 많이 관찰된다.정한철 화성습지세계유산등재" style="text-align: center;">
안타깝게도 신공항 건설 예정지가 철새도래지와 겹치는 문제는 화성습지만의 상황이 아니다.정부는 2021년 제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온라인 배팅 토토 배팅 사이트현재 전북 새만금,부산 가덕도 등 전국 곳곳에 5~10개의 신공항 건설을 추진 중이다.새만금신공항 예정지는 대규모 철새 서식지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습지 보호구역과 인접해 있다.가덕도도 한반도와 일본 서남부를 오가는 철새들의 주요 경로로 꼽힌다.
그동안 철새 모니터링 등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신공항 건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온 무어스 박사는 “철새의 생태를 이해하면 철새도래지에 공항을 짓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한국을 찾는 시기에 따라 조류의 이동 반경은 달라질 수 있어요.예컨대 맨 처음 온 기러기가 가까운 지역의 먹이를 소비하고 나면 뒤에 오는 기러기들은 더 멀리 이동합니다.” 그나마 기러기의 이동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가창오리는 더 큰 무리를 이루고 강한 이동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충돌 위험성이 더 크다”고도 했다.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항공기 엔진에서는 가창오리의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그렇다면 가창오리의 생태를 사전에 조사했더라면 참사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까?공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결과들이 제시하듯 조류충돌을‘저감’하기 위한 여러 조처들을 충실하게 하면 안 되는 걸까?무어스 박사는 그것이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무안공항뿐 아니라 지금 거론되는 신공항들이 지어지게 되면,철새를 비롯해 항공기에도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겁니다.그렇다면,예방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곳이 조류충돌 위험성이 높은지 낮은지 혹은 애초에 이곳에 공항이 정말로 필요한지부터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지숙 기자
“그 어떤 나라도 생물다양성이 우수한 이런 곳에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지 않습니다.”
나일 무어스 박사는 경기국제공항과 관련 있는 화성습지에 대해서뿐 아니라 전북 새만금신공항,부산 가덕도신공항 등 다른 여러 지역의 신공항 건설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새만금신공항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재판에 참석해 조류충돌의 위험성,수라갯벌의 생물다양성 등에 대해 증언했고,최근 다른 동료들과 함께 국제 학술지에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게재했다.가덕도신공항 예정지의 조류충돌 위험성 보고서를 작성해 공항 건설이 시민 안전과 생물다양성에 미칠 악영향을 알리기도 했다.
정부는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2021~2025)을 통해 전국 곳곳에 신공항을 최대 10개까지 짓는 것을 추진 또는 검토 중이다.이중 가덕도신공항과 새만금신공항,제주제2공항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고,새만금,가덕도 등 일부는 빠른 진행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받았다.이에 각 지역 시민·환경단체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신공항 예정지의 시민단체들이 모인‘전국신공항백지화연대’도 최근 출범했다.이들은 지난 24일 토론회를 열고 “우리나라 공항 건설에서 항공기 조류충돌 위험성이 부실하게 측정되고 있다”며 “국민 안전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신공항 건설 계획은 전면 재검토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거센 반대에도 신공항 건설이 계속 추진되는 데 대해,무어스 박사는 한국 정부가 자연 관련 정책에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정부는 “이미‘제5차 생물다양성전략’을 통해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고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로 약속한 바 있”는데,이는 “단순히‘자연을 보호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을 통해 국제사회에 제출한 구체적 목표”라는 것이다.국토의 육지·해안,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정하는 국제협약을 따르겠다면서도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에 공항을 저렇게 많이 짓겠다는 것은,명백한 모순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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