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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간 형벌 면하는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헌재 "넓은 친족 관계에 일률적 형 면제 문제"
방송인 박수홍씨 가족 분쟁으로 다시금 주목
"달라진 시대상 반영한 결과…신속히 개정해야"
[서울=뉴시스] 이종희 장한지 기자 = 친족간 사기,소나벨횡령 등 재산 관련 범죄에 처벌을 면제해 주는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조항이 71년 만에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이 나왔다.
과거 한 집에서 모여 살며 경제 공동체를 형성해 온 가족관계에선 재산범죄에 대해 용서나 화해가 쉬웠지만,이제 가족들이 따로 살며 개별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시대상을 반영해 국가가 개입해 재산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헌재는 27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이날 친족상도례 조항의 입법 취지는 인정하면서도 넓은 범위의 친족 관계에서 벌어진 재산범죄에 대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했다.
친족상도례 조항은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정하고 있다.
헌재는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소추 내지 처벌에 관한 특례의 필요성은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넓은 범위의 친족간 관계의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경우에 따라서는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되어 본래의 제도적 취지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일률적으로 법 적용이 되다 보니 실제 가까운 친족에게 재산범죄를 당하더라도 재판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특히 피해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나 미성년자 등의 경우라면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실제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중 한 명은 지적장애인으로,아버지의 사망 이후 작은아버지 부부와 동거하며 그동안 모은 재산을 빼앗겼지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또한 친족상도례 조항은 이득액이 50억원이 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죄,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한 공갈이나 흉기를 든 특수절도 범죄 등도 형을 면제하도록 하는데,이 같은 범죄로 가족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도 제시했다.
헌재도 이같이 친족간 재산범죄로 인해 획일적으로 '형의 면제' 규정이 적용됨에 따라 적절한 형벌권 행사 요구가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형사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바,이는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입법 개선 시한을 2025년 12월31일로 정하고 법 개정 때까지 법 조항 적용을 중지하도록 했다.
한편 헌재는 같은 날 친족이 저지른 재산 범죄에 대해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한 형법 328조 2항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친족간 유대감 및 교류가 과거보다 줄어든 현실을 고려하면,소나벨범죄 문제에 대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는 법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이에 정치권이나 학계에서도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에는 방송인 박수홍씨의 '출연료 횡령' 사건이 계기가 됐다.
박씨는 수익을 일정 비율로 분배하기로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은 친형 부부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이런 가운데 박씨 부친이 본인이 횡령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박씨 친형이 처벌되지 않도록 부친이 죄를 뒤집어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박씨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헌재 판단은) 가족이기 때문에 어떤 형을 면제하거나 비난 가능성을 적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취지"라며 진행 중인 재판 양형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친족간 범죄로 재산 관련 분쟁이 늘어나는 것도 친족상도례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진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헌재의 판단에 대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법 개정도 이 같은 취지를 존중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다른 국가들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법 개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고치느냐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HB 법률사무소)는 "시대 상황에 맞게 친족간 재산범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 것"이라며 "친족 간에도 재산범죄로 인한 피해가 있으면 헌법에 의해 보장된 재판절차진술권 등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소원을 대리한 임복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단을 환영한다"며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미성년자나 장애를 가지신 분들에 대해 친족상도례 조항으로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