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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 장편소설‘오키나와 스파이’
일본군이 조선인 포함 20명의 주민 학살한
‘구메지마 주민 학살 사건’최초로 그려 김숨 작가.ⓒ백다흠.모요사 제공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다.찾아내서 죽이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그렇다면 이제부터 중요한 건 '정말 스파이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다.'누구를 희생양으로 지목할 것인가'가 생존의 문제가 된다.1945년 일본 오키나와인들이 맞닥뜨린 현실이었다.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중 유일하게 미군과 일본군이 지상전을 벌인 곳이다.스파이 공포증이 이들을 덮쳤다.“미군 삐라를 줍는 사람,미군에게 겁탈당한 여자,야구 우비 중비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사람.오키나와 말을 해도,섬 사투리를 써도 스파이다.군인들보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스파이다.”
김숨의 장편소설‘오키나와 스파이’속 오키나와 아이들이 스파이 놀이를 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이 문장은 누구라도 살해당할 수 있었던 당시의 엄혹한 분위기 그 자체다.소설의 배경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면적 63.5㎢의 작은 섬 구메지마(久米島).군인의 숫자로만 따져도 압도적 우위였던 미군의 상륙작전으로 두려움에 떨던 오키나와의 스파이 공포는 구메지마까지 흘러들었다‘만나면 모두 형제’라는 의미의 방언‘이차리바초데(イチャリバチョデ)’가 존재했을 정도로 서로에게 따스했던 오키나와는 더 이상 없다.“다정하고 순박한 웃음을 잃고 돌덩이가 돼가고 있는 섬사람들”뿐이다.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 학살한 실화에서 시작
오키나와 스파이·김숨 지음·모요사 발행·396쪽·1만9,000원‘오키나와 스파이’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일본군이 죄 없는 오키나와 주민 20명을 스파이로 몰아 마구잡이로 죽인‘구메지마 수비대 주민 학살 사건’을 소설화했다.오키나와 전투 자체가 이 지역을 방패 삼아 일본 본토를 지키려는 작전이었기에 애초에 일본군에게 오키나와인은‘우리’가 아니었다.오키나와는 문화도,주민들의 외모도 일본과는 다른 '류큐 왕국'이 일본에 편입된 지역이다.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니기에 스파이 공포가 유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오키나와에서 식민지 출신 조선인이 스파이 혐의를 쓴 건 비극적이나 당연한 귀착이었다.소설 속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조선인 고물상과 그의 가족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판은 한결같이 호의적이었다.그렇지만 “너하고 조선인 고물상하고 둘 중 하나가 미군 스파이라고 쳐.둘 중 누가 스파이일 것 같아”라는 질문에 대한 오키나와인들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소설은 조선인 고물상과 일본인 아내,아직 이름조차 없는 한 살 남짓 젖먹이를 포함한 아이 다섯 명이 학살되는 장면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조선인 고물상의 죽음을 묘사하는 문장은 무시무시한 폭력의 현장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땅이 미쳐서는 조선인 고물상의 살을 할퀴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돌멩이도 미쳐서는 송곳니가 돼 그의 살을 찌른다.아주 작은 돌멩이도 송곳니가 된다.풀포기가 칼이 돼 그의 살을 벤다.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성난 낫이 돼 그의 얼굴 위에서 춤을 춘다.”
김숨이 길어낸 무구한 희생의 얼굴들
일본 오키나와 숲의 풍경.게티이미지뱅크소설가 김숨의 시선은 어디까지 닿을까.1970년대 중동에서 달러를 벌고 돌아온 아버지들,조선소 하루살이 노동자,
야구 우비 중비폭력 피해 여성 같은 인물들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야구 우비 중비고려인,
야구 우비 중비동물을 거쳐 오키나와인에 이르기까지.“기법의 다채로움과 시선의 깊이”(박혜경 문학평론가)를 끊임없이 움켜쥐어온 그가 한국인들에겐‘가해자’로만 보였던 오키나와인들 사이에서 역사의 질곡에 희생당한 무구한 얼굴들을 길어냈다.소설에서도,현실에서도 조선인들과 함께 오키나와 주민 13명이 스파이로 몰려 죽었고,이들을 죽인 건‘인간 사냥꾼’이 된,어제까지만 해도 친근했던 동네 소년들이었다.
조선인 고물상 가족 이야기도 실화다.조선인 구중회의 일가족 7명의 학살 기록을 처음으로 접하고 김 작가는 “‘소설화할 수 없는,하고 싶지 않은’기록으로 오래 남겨 뒀다.그는 태평양 전쟁 말기 조선인 위안부와 군 시설이 존재했던 흔적을 찾으려 떠난 오키나와에서 이 학살을 다시 마주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구메지마 수비대 주민 학살 사건’을 소설로 쓴 건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이 작품이 최초다.그러나 김 작가는 말했다.“나는 여전히‘무엇에 대해,누구에 대해’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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